시간을 선물하는 아빠

by 고니비니SN

아이가 두 살이던 해, 남편이 말했다.

“매년 아이의 사진으로 성장앨범을 만들어주고 싶어. 먼 훗날 아이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어.”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대단한 유산이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실현 가능성조차 반신반의했다.
왜냐하면 남편은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연애기간 내내 찍은 커플사진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고, 누구나 한 번쯤은 맞춘다는 커플티도 없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일을 꾸준히 해내는 데 약한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해마다 아이의 성장앨범을 만들겠다고? 내가 웃은 건 당연했다.


그런데 아이가 세 살이 되던 겨울, 남편의 저녁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핸드폰에서 사진을 옮겨오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손, 진지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는 눈에는 생소한 열의가 가득했다.


“사진은 왜 필요한 거야?”
아이를 재운 후 물은 내 질문에, 남편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매년 성장앨범을 선물해 준다고.”

그렇게 며칠, 아니 몇 주를 밤마다 이어진 작업 끝에 남편은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고, 표지를 만들어 ‘스냅스’라는 사진 인화 업체에 앨범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택배 상자 안에는 아주 두껍고 묵직한 첫 성장앨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앨범을 펼치자, 아이의 두 살이 파노라마처럼 내 앞에 펼쳐졌다.

이유식을 먹다가 엉망이 된 옷, 엄마 아빠를 향해 해맑게 달려오는 모습,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여행…

우리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한 장 한 장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라 ‘기억’이었고, ‘시간’이었고, ‘감정’이었다.


남편은 이어서, 만들지 못했던 첫 번째 해의 앨범도 완성시켰다. 이 세상에 처음 온 아이의 모습부터 돌잔치까지의 모습과 부모가 처음인 우리의 모습이 어설펐다.


"여보, 우리도 이때는 참 젊었네."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 시절 속에서 성장한 우리는 조금씩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해 앨범은 우리에게는 선물이고, 아이에겐 ‘자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사실 첫 앨범은 어설펐다. 아이의 얼굴이 반쯤 잘리고, 글씨는 너무 커서 페이지를 덮을 지경이었다. 완벽주의 성향의 나는 그에게 잔소리처럼 말했다.


“이왕 할 거면, 구도를 좀 맞춰봐.”

하지만 1권으로 끝날 것 같았던 ‘유산 프로젝트’는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해, 또 그다음 해…

지금, 그렇게 쌓인 앨범은 어느덧 열 권이 되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남편은 이 앨범을 만들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앨범을 알게 되었다. 세 살이 되어 처음 1살 때 사진을 마주한 날,

자신을 손으로 집으며 해맑게 웃던 아이가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그 옆에서 장면 하나하나에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도 점차 성장하면서 궁금한 것들을 질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 사진은 몇 살 때야?”
“이 친구랑 또 놀 수 있어?”
“나는 왜 여기서 울고 있어?”

이야기를 들으며 집중하는 아이의 눈빛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신기함과 사랑받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 후로 아이는 손님이 오면 언제나 자랑스럽게 자신의 앨범을 꺼냈다.


“이건 아빠가 매년 나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사진을 넘기며 하나하나 설명하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아빠의 사랑을 되새기는 의식처럼 보였다.

남편은 아이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단한 자존감’을 선물하고 있었다.

돈보다 더 귀한 유산을 남기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은 아이의 웃음 속에, 그리고 아이의 말속에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매년 초가 되면 남편이 나에게 말한다.
“여보, 올해도 사진 많이 부탁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응, 내가 많이 찍어놓을게. 올해도 빈이의 예쁜 추억 많이 만들자.”


우리는 바란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단단하게 혼자 설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제나 따듯한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꾸준하지 못한 남편이 스스로를 이겨내고 만들어낸 열 권의 성장앨범 속에는 단지 사진이 아닌, 사랑의 시간들이 쌓여 있었다. 아이만을 위한 유산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엄마인 나에게도 다시 처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성장앨범이 한 권씩 늘어날수록, 나는 더 자주 서재로 달려가 앨범을 꺼내 든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이의 아기시절을 다시 한번 만나는 시간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행복을 전해받는다.
사진 속 1살의 아이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리는 남편의 사랑 안에서, 오늘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배운다. 그 모습을 오늘도 내 곁에 꺼내 보여준 남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당연한 것들 속에 숨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