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마주한 나

by 고니비니SN

심장이 아팠다.

온 가족이 깊이 잠든 새벽, 심장을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통증에 눈이 번쩍 떠졌다. 태어나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여보, 나 심장이 아파. 무서워."

잠결에 나를 바라본 남편의 얼굴에도 금세 불안이 번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임신과 함께 시작된 몸의 이상이 고쳐지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를 불러왔다. 하혈, 치질, 허리디스크에 이어 이번엔 심장인가. 생명을 위협하는 기관이라는 생각이 드니 공포가 밀려왔다. 다행히 통증은 잠깐이었지만, 그날 이후 불안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어느 날 저녁, 그날보다 더 강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참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심장이 아픈데 참고 있었다고? 당장 병원부터 가.”

엄마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과 함께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초음파, CT, 심전도, 피검사까지 빠르게 이어졌다. 다음날 혼자서 결과를 들으러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두 손을 모으고 진료실로 들어섰다. 의사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협심증이 의심되긴 합니다. 다만 환자분은 아직 젊으시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시다면 지금 단계에서 약을 시작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장은 정밀 검사가 가능한 대학병원에서 한번 더 확인을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눈물이 또다시 떨어졌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 신에게 묻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협심증일 수도 있대. 대학병원 가보래… 나 어떡하지?"

"괜찮아. 일단 가서 검사받아보자. 아이 낳고 체력도 떨어졌고, 그동안 무리했잖아. 걱정 마. 잘 될 거야."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 놓이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버스 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다음날 남편과 함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설사로 대학병원에 간 것 외엔 처음 가보는 대학병원이었다. 심장내과 앞에서 기다리는데,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환자들이 60대 이상이었다. ‘왜 저 젊은 여자가 여기에 있을까’ 하는 시선이 피부에 와닿았다.

검사가 다시 이어졌고, 하루 동안 심전도 장치를 몸에 부착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움직일 때마다 기계가 신경 쓰였지만, 평소처럼 지내라는 말에 억지로 일상을 흉내 냈다. 다음날, 남편과 함께 결과를 들으러 갔다.

의사는 차분히 말했다.


“협심증과 유사한 증상이 일부 보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약을 드릴 정도는 아닙니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면, 당장은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최근 체력 저하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곧장 대답했다.


“육아가 힘들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노로바이러스에도 걸렸어요. 그때 이후 심장이 이상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아직 젊으셔서 약물 치료보다는 비약물적 관리가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불안하거나 힘드시면 신경정신과에 의뢰를 드릴 수도 있어요. 본인의 상태에 따라 결정하시면 됩니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약을 먹는다고 육아 스트레스가 사라질까? 치료를 받는다고 이 불안이 없어질까? 남편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했지만, 나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

아이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 수는 있을까?

나는 아이에게 전화 거는 방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병명은 없지만, 증상은 분명히 존재했기에 몇 달 동안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났다. 여름 저녁, 책을 읽고 있는데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몸에 힘이 빠졌고, 눈물이 났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와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고, 억울함이 밀려왔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나’였다. 아이보다, 남편보다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아이가 내게 안겼다. 심장은 곧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증상이 반복되었다. 결국 아이에게 책을 주러 온 사촌 형님 앞에서 나는 심장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대학병원에 근무했던 형님은 남편에게 단호히 말했다.


“지금 당장 병원 가야 해요. 이러다 진짜 큰일 납니다.”

남편은 한걸음에 달려왔고, 아이를 데리고 동네 내과로 향했다. 다음 날, 여동생과 함께 결과를 들으러 갔다. 나는 또다시 긴장했고,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 결과 전부 정상입니다. 심장도, 갑상선도, 혈당도 이상 없습니다. 위장 문제로 심장 주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심장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혹시 스트레스나 불안이 많으신가요?”

“네, 불안이 심한 편이에요.”

“그럼 마음을 조금 편히 가져보세요. 불안이 심장을 자극하고, 그 반응이 다시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일 수 있어요.”


나는 궁금한 점들을 쏟아냈고, 의사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해주었다. 안심이 되었지만, 해결된 것은 여전히 없었다. 원인이 없는 통증, 정체 없는 불안은 나를 계속 잡아끌었다.

‘혹시 아이가 하교할 때 내가 없으면 어떡하지?’

‘사람 없는 길에서 쓰러지면?’

그런 내 모습을 본 여동생이 말했다.


“언니, 내가 당분간 언니 집에 있을게. 아무 일 안 생겨. 맘 편히 가져.”

그 말에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 동생과 한 달을 함께 보내며, 나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보면 심장이 내게 가르쳐준 건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주한 것은 '나'였다. 내가 사라지면, 아이는 누가 키우지?


내가 없으니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었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이, 죽음 앞에 서보니 얼마나 덧없고 위태로운 착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나’라는 존재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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