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뻤다.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들른 커피숍에서 우연히 받은 종이 한 장. 그림도 아닌, 그저 글씨였지만 그 글씨는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 적힌 ‘캘리그라피 수강 신청받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서야 나는 ‘캘리그라피’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배고픈 대학생에게는 수강료가 사치였다. 교통비와 점심값에 맞춰진 용돈으로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여야 했던 그 시절, 캘리그라피는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꿈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잊혀졌던 캘리그라피는 이사 온 새로운 동네에서 다시 나를 찾아왔다.
사촌이 사는 동해로 여행을 갔을 때, 한 커피숍에서 만난 양말인형이 눈길을 끌었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나는 인형에 대해 묻자, 사장님은 직접 책을 꺼내어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신는 양말로 만든 인형이에요. 이 책 보고 연습했어요.” 사진을 찍어두고, 아이가 고른 인형 두 개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서점에 들러 양말인형 책도 구입했다.
하지만 독학은 쉽지 않았다. 수업을 받을 곳을 찾던 중, 이사 온 동네에서 ‘풀잎문화센터’라는 곳을 발견했다. 전단지를 이리저리 살피다 ‘양말인형 수업’에 눈길이 멈췄고, 마치 이끌리듯 수강료를 지불했다. 처음엔 기초 바느질부터,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인형을 만들며 차츰 실력을 키웠고, 중급반을 거쳐 마침내 자격증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 뒤편에 전시된 양말인형 작품 하나가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지금껏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퀄리티였다. 수업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흔쾌히 가능하다고 하셨고, 나는 12개의 작품을 만들며 1년간 양말인형 강사증을 준비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꿈을 이뤄가던 중, 선생님이 캘리그라피 수업도 진행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문득 15년 전, 커피숍에서 마주했던 예쁜 글씨가 떠올랐다. 그 글씨를 이제 내가 배울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줄긋기부터 시작된 캘리그라피 수업은 명상처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고, 육아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3개월 후 허리디스크로 인해 수업을 멈춰야 했다. 그렇게 또다시 짧은 인연은 끝이 났다.
시간은 흘러 3년이 지나갔다.
매년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다양한 주민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 안에 캘리그라피 수업도 있었지만, 아이의 학업 스케줄과 겹쳐 매번 수강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아이가 3학년이 되어 방과후를 시작하며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수강신청일 아침부터 줄을 섰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드디어 다시 만난 캘리그라피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말했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캘리그라피를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기초 수업부터 시작해 매 시간 작품을 만들었다. 2시간 동안 몰입해서 완성한 작품들이 하나둘 집에 쌓일수록 뿌듯함도 함께 쌓였다. 그렇게 5개월간의 수업을 마치고 하반기에는 중급반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 딸아이는 묻는다.
“엄마, 오늘은 어떤 작품 만들었어?”
딸은 엄마가 즐거워하는 수업에 관심을 보이며 세상 예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준다.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나에게, 선생님은 크로스백을 선물로 주셨다. 캘리와 그림이 어우러진 그 가방은 내 열정의 상징이자 시간의 선물이었다. 방학과 수업이 겹쳤지만, 수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딸을 데리고 함께 수업에 참여했다.
엄마 옆에서 줄을 긋고 글씨를 따라쓰는 딸의 웃음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중급 수업이었기에 딸은 엄마를 도와주며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엄마와 딸은 함께 캘리그라피의 시간을 누렸다. 1년 동안 원없이 배웠고, 또 듣고 싶었지만 이번엔 신청 방법이 추첨제로 바뀌었다. 신청 후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감사하게도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수업은 쉬는 달 없이 6개월간 이어진다. 매주 화요일, 나는 힐링의 시간을 보낸다. 몰입하며 나를 다듬는 시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그리고 또 찾아온 아이의 여름방학.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이번에도 엄마랑 캘리그라피 수업 들을 수 있어?”
“응, 이번 방학에도 엄마랑 캘리그라피 배우러 가자.”
아이와 함께 수업 가는 발걸음이 솜털처럼 가볍다.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우리는 이제 모녀가 아니라 친구처럼 작품을 감상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만난 예쁜 글씨는 이제 내 삶의 한 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