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가 열어준 큰 세상

by 고니비니SN

대학교 2학년 때, 아빠의 권유로 운전면허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 아빠는 “1종 면허를 따면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나서야 당당히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자격증 땄으니 약속대로 차 사주세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는 너무 달랐다.

“자동차는 네가 돈 벌어서 사든가, 결혼해서 남편한테 사달라고 해.”

그 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차도 없는 면허증을 왜 따야 했냐며, 아빠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얻은 운전면허는 장롱 속으로 들어갔고, 두 번의 갱신만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돌아온 친구가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한참 백화점 구경을 마치고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나는 차가 내 쪽으로 자꾸 붙는 느낌을 받았고, 이내 ‘쾅’ 하는 충격음과 함께 문이 심하게 찌그러졌다. 문은 내 옆구리 바로 옆까지 밀려 들어왔다.

친구는 곧장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순간 모든 게 얼어붙었다. 급하게 사고 수습을 마치고 친구 집에 들렀을 때, 친구 엄마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친구 엄마는 내 상태부터 걱정했고, 다행히 몸은 이상이 없었다. 친구는 내 덕분에 크게 혼나지 않고 위기를 넘겼다. 그날 사고는 몸보다 마음에 더 깊은 흔적을 남겼다. 운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트라우마’가 되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결혼 후 남편 차가 생겼다.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아보려 했다. 하지만 계속 왼쪽으로 쏠리는 핸들 조작에, 남편은 조심스레 말했다.

“당분간은 운전하지 말자. 아직은 좀 위험한 것 같아.”

나도 동의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뇌리에 깊이 남아 운전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전은 나와 멀어졌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까지 도보 20분이 넘는 길을 걸으며 책을 실은 카트를 끌고 오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4살 아이의 걸음으로 도서관을 다녀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여름의 땡볕과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은 매번 우리의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던 중 친구가 둘째를 출산하며 작은 차가 불편해 새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나에게 기존에 쓰던 ‘모닝’을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가장 원하던 차 사이즈였다. 하지만 망설임이 컸다. 보험료, 유지비, 주유비 등 적지 않은 비용이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과연 내가 다시 운전할 수 있을까’란 물음이 계속 맴돌았다.

고민 끝에, 결국 친구에게 차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1년 동안 남편의 출퇴근용으로만 쓰였다.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는 게 두려워 운전대를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그 상황에 현타가 왔다. 더는 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중앙선 쪽으로 기울었다. 초보 운전자에게 가장 큰 벽인 주차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도서관, 병원, 학교, 마트를 반복해서 연습했다. 차선까지 외우고, 네비게이션 없이 머릿속으로 길을 정리하며 조금씩 나아갔다.


그렇게 반복된 연습 끝에, 나는 마침내 아이와 함께 원하는 곳으로 차를 몰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이 내게 허락한 새로운 세상은 예상보다 크고 넓었다. 체력의 여유가 생기자 마음도 편해졌다. 그 에너지를 아이에게 더 쏟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멀리, 더 자주, 더 다양한 경험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동네 밖을 자유롭게 나서지는 못하지만 지금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한다.


무엇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시작해야 내가 원하는 세상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낸 아주 작은 용기 하나가 장롱 속 면허를 꺼내게 했고, 마침내 나의 일상도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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