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생일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날이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인생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날이기도 했다.
명절이나 생일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술이 빠지지 않았다. 그 술은 늘 축제를 한탄과 눈물, 분노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명절도, 생일도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매년 생각했다. 엄마는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가고, 달을 보고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부모님이 없는 생일 아침, 눈을 뜨면 언제나 상 위에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도대체 언제 일어나서 그것을 끓여놓고 간 걸까. 그 미역국 앞에서 늘 같은 궁금증이 인사처럼 떠올랐다.
곧이어 울리는 전화벨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함께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목소리에 녹아 있다. “동생들 깨우고, 밥상에 미역국 있으니까 같이 먹어.”
엄마는 “딸, 생일 축하해”라는 말도 조심스레 돌려 말한 뒤, 바쁜 일상 속으로 다시 사라진다. 식어버린 미역국에 밥솥에서 퍼낸 따뜻한 밥을 말아 한 입 넣으면, 엄마의 사랑이 그대로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나는 9살이었다.
2살, 4살 터울의 동생들과 함께 생일상을 맞이했다. 시끌벅적한 식탁은 겉보기에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부모님의 빈자리가 늘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외식이나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가끔 외식을 하게 되더라도, 아빠의 술이 늘 분위기를 망쳤다. 결국 아빠는 술을 더 마시기 위해 별 이유를 만들어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남은 엄마와 삼 남매는 생일의 기쁨 대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며 엄마의 신세한탄을 들어야 했다.
그런 생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생일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소중한 인생을 내게 내어준 엄마는 과연 지금의 나를 보고 행복하다고 느낄까. 그런 물음이 해마다 생일이면 마음속 깊이 올라왔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생일은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남편이 끓여주는 미역국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 위에서 따뜻한 밥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편안하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는 말의 의미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매년 생일이 되면 축하 문자와 용돈을 보내주신다. 단순하고도 분명한 마음 표현이 어쩌면 이렇게 쉬운 일이었구나 싶다. 그런 표현 하나조차 우리 부모님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는 동생들과 친구들이 보내는 생일 축하 문자, 그리고 마음 편히 웃으며 나누는 식사 한 끼가 내가 태어난 하루를 조금씩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이가 직접 꾸며준 생일 파티는 또 한 번 내 마음을 울린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테이프를 자르고 풍선을 불며 꾸며놓은 공간을 보며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진하게 느낀다.
퇴근 후, 남편의 손에 들린 케이크와 꽃다발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어린 시절, 생일이 고통이었던 나는 이제야 진짜 생일의 의미를 만난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가 되었기에,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는 책임감의 연속임을 안다. 하지만 그 책임감 속에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는다면, 아이는 부모라는 존재를 세상이 준 가장 큰 선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무더운 여름날, 나를 세상에 불러낸 엄마의 선택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엄마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내 삶을 통해 증명하고 싶다. 나는 나의 인생을 야무지고 건강하게, 그리고 사랑 가득하게 꾸려나갈 것이다. 엄마가 내게 보여준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하며 살아갈 것이다. 생일은 매년 온다. 하지만 이제 그날은 내게 상처의 기념일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 다짐의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