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빛바란 카페

by 다다리딩

그 카페는 홍대의 어느 후미진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15년 전 그곳에서 소개팅을 했었다.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가물가물해도 처음 그 곳에 갔을 때 기분이 좋았던 기억은 뚜렷이 남아 있다. 좁은 골목을 돌았을 때 새하얀 2층집이 파란 하늘을 지고 있었고 커다른 창에 우아한 커튼이 살짝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하얀 카페 안에는 세련됨이 흘렀다. 음악도, 소품도, 사람들도. 깔끔하고 폭신한 의자에 앉아 고급스러운 꽃무늬 찻잔에 붉은 홍차를 따라 마시니 내가 어디 먼 곳으로 여행 온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그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디서 만날까요, 라고 만남의 선택권이 넘어 오면 나는 이내 이 곳이 떠올랐다. 사랑을 하고 싶었고 늘 외로웠던 나는 누군가 따뜻하고 멋진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곳에서 첫사랑과 재회했고, 탭댄스 동호회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여행에서 만난 언니의 청첩장을 받았고, 어쩌면 사귀게 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소개팅을 했었다.

그러다 나는 그 곳과 멀어졌다. 더이상 누군가를 소개받는 일이 덫 없어졌고, 낯선 사람들과 만남에 시간과 체력을 할애할 만큼 만남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어느날 약속도 없고, 할일도 없던 날 좋은 가을 날. 문득 그 카페가 궁금해졌다. 파란 하늘을 지고 있던 하얀 이층 카페는 많이 낡아 있었다. 홍대 주변에는 더 세련되고 멋진 카페가 많이 생겼고, 그런 카페들 사이에 밋밋하게 끼여있는 홍차 카페는 역시나, 내부에 들어갔을 때 더 낡아 있었다. 빛바란 커튼과 테이블보. 우아했던 소파는 세월의 멋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닳아 버려있었다. 낡고 촌스러워져버린 카페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예전 꽃무늬 찻잔에 붉은 홍차가 맑게 고여 있었지만 떫고 쓴 맛만 번졌다.

나는 젊은 날 참 작은 것에도 설레고 들떴었다. 좋은 곳에 가면 내 인생이 한뼘 멋있어진 것 같아 떨렸었다. 그래봤자 돌아갈 곳은 매번 변함없는 나의 조그만 자취방이었을텐데. 이제는 좋은 곳에 간다고 내 인생이 한 뼘 더 멋있었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뼘 정도의 기분전환의 양만큼 돈과 시간을 소비해봤자 한뼘 정도의 인생이 성장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소소한 추억만 쌓으며 아마도 그렇게 살다 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추억을 돌아봤을 때 이 카페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 설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안녕, 나의 조그만 추억이 담긴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