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입니다
출근하는 머리가 멍하다. 쓰고 싶은 글도 있었고, 해야할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막히는 출근길 신호를 기다리며 집에서 텀블러에 담아온 믹스 커피를 들이키며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가늠해 본다. 아마도 쪽지는 잔득 와 있을 것이고, 부재중 전화도 몇 통 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업무 담당자는 왜 맨날 일찍 퇴근하냐고 투덜거리기도 할 것이고, 육아 시간을 쓸 바에 그냥 육아 휴직을 쓰지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를 낳고 더 열정적으로 수업하고 꼼꼼하게 일하려고 노력하며 성장하는데 관리자는 도끼눈을 하고 나이든 교사, 아줌마 교사는 설렁설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퇴근하려는 나에게 신규 교사가 말했다. 교감 선생님이 학교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젊은 선생님들만 모아서 독서 클럽을 만들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고. 후배들을 잘 가르칠 만한 교사가 없다고. 그 말에 나이든 교감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나이든 교사는 다 나태하고 엉망이라는 편견이 있음을 읽어 낸다. 매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커피 마시며 수다 떨며 스트레스를 잠깐의 웃음으로 날리는 동안에도 나는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르며 일을 하고 있다. 사소하지만 무시못할 잡무들이 쌓여 있다. 그러다 수업에 들어가 아이들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면 행복해진다.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 이육사의 광야는 알면 알수록 놀랍다. 하고 싶은 의도가 이토록 뚜렷하고 강하게 말할 수 있는 그 기개가 부럽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엄청난 상상력, 이 땅의 신성함이 지금 나의 삶의 터전이 이곳임을 감사하게 만든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나의 가난한 노래는 지금 여기, 시를 뿌리고 있는 것일까, 나를 만나는 인연이 모두 소중하고, 행복하길. 선한 영향력으로 한뼘은 따뜻한 이 곳이 되길. 나는 가난한 나의 노래의 씨를 뿌리고 있는데,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알아주지 않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억울함이 가슴에 차 오를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빈둥거리며 나태하게 나이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나의 수업, 나의 일, 나의 아이들, 나의 학생들, 나의 동료들...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구요,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스스로 웃고 만다. 누구에게, 무엇을 알아봐 달라고 외친단 말인가. 모두들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 외치고 있는 이 바닥에서. 스스로 우스워지고 만다.
다만, 내가 육아시간을 쓴다고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지 않기 위해 더 애를 쓴다. 아이 키운다는 핑계로 설렁설렁 일한다는 말은 나와 아이들에게 치욕적인 말이 될 것이므로 더 공을 들여 일을 한다. 그래봤자 많은 사람들은 좀 더 일찍 퇴근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눈알이 빠지게 생활기록부를 점검하고, 정정대장을 점검하고, 누락된 사항에 대해 담임들에게 쪽지를 보내고, 내일 수업 준비를 하고, 모든 아이들의 과목특기사항을 1500바이트 적어주고.... 퇴근한다. 머리가 멍하고 몸이 아프지만 오늘은 마음이 조금 더 아프다. 아이들 하원을 하고 조그만 손을 붙잡고 집으로 와 저녁 준비를 하러 오늘도 단 10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했다. 쓸쓸한 마음에 이 한 줄이 떠오른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