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Jul 30. 2019

잠깐의 만남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길.

우리, 얼굴 보며 살아요. 얼굴 보며 마음 살피는 거, 중요하잖아요.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도, 나도.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었지만 업무를 하지 않아도 일은 많았다. 그동안 방기했던 집안일을 하며 생각했다. 이 많은 잡동사니들을 사느라 월급을 소비했고 이 잡동사니들을 치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데, 이 것들을 정리하려고 또다른 잡동사니를 살 궁리를 하는 것이 내 인생이구나. 산만하고 방만한 삶의 더미를 짐처럼 지고 살고 있는 나.


 남편이 통영으로 입항한다고, 멀기도 하고 본인 업무도 많아 바쁘니 안 오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구나, 방학이긴 하지만 너무 머니까, 또 그가 바빠서 챙겨줄 여유가 없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가지말아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입항 전날 친정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이 남편 생일이라고.


 남편은 가족끼리 생일을 챙겨줄 여유가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아프고, 아버지는 생계로 바빴다. 조금 더 잘 살아보려고 욕심을 부린 어머니는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친구도 잃고, 재산도 잃었다. 그리고 덤으로 건강도 잃었다.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몰라서, 가족을 위해서 한 일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본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하고 잊으려 애썼지만, 어머니는 마른 살구처럼 그렇게 몸도 정신도 말라갔다.

 남편은 사채업자들을 피해 새벽에 등교했고 소란스런 교실에 앉아서도 그들이 빚을 갚으라고 들이닥칠까봐 늘 마음 졸였다고 한다. 해사고에 입학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순전히 학비, 기숙사비 모두 무료이기 때문이었다. 속초에서 부산까지 이불보따리를 짊어지고 가 짧은 입학식을 끝내고 기숙사로 갔을 때, 남편은 너무 서러웠다고 한다. 모두 부모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고 없는 텅빈 기숙사에서 남편은 슈퍼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먹으며  서러움을 삭이고 삭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자식들 입학식, 졸업식은 챙기며 살아야겠다고. 가난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단단해졌다. 부모에게 집도 사드리고 차도 사드리고 빚도 갚았다. 그렇게 세상물정 잘 알려고 애쓰며 남편은 어른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다.


 가끔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인지, 연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가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늘 충만한 사랑에 호젓하게 만족하며 살기 바라는 마음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그가 나를 많이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그를 많이 편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사랑일까, 연민일까. 그 두개의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나는 이 남자에게만은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진다. 그리하여 나는 이 남자의 생일을 챙길겸 도크 들어가기 전에 응원도 해줄겸 통영으로 가게 되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고속터미널로 가서, 통영으로... 첫째 아기를 데리고. 


 다섯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남편이 근무하는 배에 오른 건 두시 반이었다. 하역작업을 하느라 남편은 마중나오지 못했고 한 손에는 짐을,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운동안한 다리가 티나게 후들거렸다. 아이를 내리는 순간, 허리도 삐끗했다. 절망스런 마음으로 그의 방에 들어가 사가지고 온 음식들을 꺼내놓았다. 식은 만두, 빵, 충무김밥.

 그의 책상에 배우 하정우가 쓴 책이 올려져있다. 걷는 사람, 하정우. 그는 배 안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으리라. 그래도 걷고 싶을 것이다. 땅을 딛고 하늘과 구름을 머리에 이고 양 손으로 허공을 가르며, 직진으로 직선으로. 갇힌 공간에서 6개월째 승선중인 그는 마음으로 자연 속을 걸었으리라.

 배위의 사람들은 도크작업을 준비하고, 선박 검사를 준비하며 많이 지쳐있었다. 다들 진이 빠진 얼굴이었다. 지난 번 하선했던 일항사도 다시 승선해 있었다. 육지의 기운을 잠시 받고 온 그가 그나마 조금 생기가 돌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방으로 온 남편은 식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보고를 받았고 무전에 귀기울였다. 아이가 잠들어서야 방으로 돌아와 그래도, 와줘서 너무 좋다고. 힘이 난다고 말하더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입을 벌리고 자는 그를 보며 그동안 하고 얼굴 마주보고 말 싶었던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무화되어 사라짐을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순해지고 힘듦이 사라질 수 있다니.

 그동안 내가 마음에 지고 있었던 걱정과 한탄이 그의 노고 앞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험한 작업하는 그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너무 사소한 걱정거리 그물망에 마음이 걸리게 살지 말자.

 아이는 버스 안에서 창밖의 무리 속에 아빠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흰 안전모, 주황색 작업복, 검게 탄 얼굴들 속에서 찾은 아빠에게 수도 없이 인사를 한다.


 어쩌면 얼굴을 자주 보고 살기위해 결혼을 했나보다.

 얼굴을 보며 안색을 살피고 마음을 살피고, 도닥이며 살려고. 매일 그렇게 얼굴을 보기 위해 결혼을 했나보다. 그런데 같이 있어도 쓸쓸함과 차오르는 허무함 같은 감정도 어찌하지 못할 때 그 감정에 함몰돼 얼굴보며 마음 살피기에도 소홀해지는 것 아닐까. 가끔 보는 그의 얼굴이 신기하리만큼 나에게 힘과 안식을 주는 것은 분명 그를 아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먼 거리지만 오길 잘했다. 남편은 계속 괜찮다고, 잘지낸다고 카톡을 보내왔지만, 사실은 굉장히 지쳐있었고 외로워하고 있었다.  문자나 목소리가 전하지 못했던  부분, 당신의 얼굴. 우리 한달에 한 번이지만 힘들어도 꼭꼭 얼굴 보며 지내요.


매거진의 이전글 안부 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