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미술 선생님의 갤러리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초록색 대문을 열고 우리 집에 들어서자 둘째 아들이 말했다.
"히잉, 우리 집 너무 늙어서 불쌍하다."
"우리 집이 불쌍해?"
"응. 너무 늙었잖아."
'낡다'의 개념을 모르는 다섯 살 아들은 오래되고 낡은 집의 초라함이 새삼 돋보였나 보다.
늙고 불쌍한 우리 집.
이 낡은 집의 역사는 70여 년 즈음됐을까?
너무 옛날 집이다. 어느 할아버지가 혼자의 힘으로 집을 지으셨다고 했다. 경주 불국사 문화재 보수팀으로도 일했었다는 돌쟁이 할아버지는 혼자 뚝딱뚝딱 지으셨단다.
아들이 시골집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어서 한 40년? 했는데, 이웃 할머니들의 말씀으로는 70년은 됐다고 하시니그런가 보다하고 있다.
70살 먹은 낡은 집에 우리가 들어와 살게 된 역사가 보태졌다.
엄마와 아빠는 이 낡은 집을 보고 홀딱 반해서 허물고 짓기보다 새로 보수하기로 했다. 전문 업체는 너무 작고 오래된 데다 벽도 바닥도 삐뚤삐뚤해서 고생만 하고 돈이 안 된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는 이한테 부탁해서 큰 공사는 하고 나머지는 가족들이 틈나는 대로 내려와 도배도 하고 공사도 했다.
이 집에 들인 우리 엄마의 정성은 실로 대단했는데, 폐타일을 얻어와 화장실이며오래된 부엌에 붙여서 우리는 엄마를 한국의 '가우디'라고 엄마의 성을 따, 상주의 '배우디'라며 놀리곤 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구들장 틈이 벌어져 연기가 새어 나오곤 했는데 엄마는 인터넷을 찾아보며 황토흙을 사서 바닥을 새로 메우고, 비가 새는 흙집의 부분도 직접 고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뉴스에서 무자격자가 보일러를 고쳐서 연기 중독으로 중태에 빠지거나 사망했던 사건을 떠올리며 으레 걱정의 잔소리를 보태 제발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당부했지만 엄마는 뭐든 손수 뚝딱뚝딱 집을 고쳐내셨다.
특히 돌 마당이었던 곳을 봄이면 매해 각종 모종을 사서 가꾸기 시작해 장미가 피는 시기가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담벼락 너머 기웃거리며 집 구경을 하고 가는 일이 흔했다.
엄마를 돕는다고 잡초를 뽑거나 나무 가지치기를 한 아빠는 정말 농사일에 관심도 없는 분이어서 나름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열심히 도왔지만 결말은 좋지 않았다. 아빠가 뽑아낸 것은 잡초가 아니라 소중히 아끼는 희귀한 꽃이었다면서, 곧 꽃이 필 건데 뽑았다며 엄마는 아빠를구박하기 일쑤였다. 엄마에겐 그 작은 정원의 생명들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때론 우리가 떠난 자리를 대신 채우기 위해 가꾸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무튼, 그 집은 우리 가족들의 노고가 담긴 낡은 집이었다. 다들 주말이면 시골로 내려와 장마철에 곰팡이가 핀 부분이나 허물어진 지붕을 엄마의 지시에 따라 보수하기 바빴다. (결론적으로는 우리는 거드는 시늉만 하고 엄마가 전적으로 다했지만)
낡은 농가에 담긴 가족들의 정성 때문에 우리가 그 집을 아낀 것은 아니었다. 그 집이 주는 작은 담안의 평화와 위안이 좋아서 우리는 시골 농가와 사랑에 빠졌다.
가령 매서운 봄바람 끝자락에 꿋꿋이 피어난 매화라던가, 5월의 초여름 햇살에 새빨갛게 익어버린 채 핀 돌담 장미라던가, 손바닥만 한 잔디밭 아래에 발견되는 놀랍도록 큰 벌레 유충들이라던가, 마치 자기 집이라 굳게 믿는 것처럼 텃세 부리는 길고양이들이라던가......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하게도 심란함을 잠재우는 힘을 가졌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우리들은 그곳에서 시골 피크닉을 온 듯 그 모든 것들을 즐겼다.
"주말에 엄마가 일도 있고 하니 아파트에 갔다 오자."
비어둔 집이 걱정되어 아들에게 말했더니 일곱 살 첫째는 이리 말한다.
"엄마! 한 번 이사 왔으면 그만이지. 왜 간다고 해?
우리는 내일 할 일이 많단 말이야. 유치원 끝나면 오는 길에 구름이 (교회 앞마당 큰 개)도 놀아줘야 하고, 곶감이(옆집 꼬마 개) 밥도 줘야 하고, 곧 다른 곳에 갈 하양이 두 마리(동네 아기 개지만 덩치는 산만한 개)랑도 놀아야 한다고."
다섯 살 둘째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우리가 버리고 온 집은 왜 가?"
봄햇살에 주근깨가 올라온 얼굴에 벌써 시골의 건강함이 가득 차 있는 아들들은 도시로 가는 것을 그다지 기꺼워하지 않는다. 스타필드에 가서 장난감 구경하자고 하니, 사줄 것도 아니면서 왜 차 타고 구경 가야 하냐고 셈 빠른 소리를 한다.
어찌어찌 구슬려 아무튼, 3시간 차를 타고 아파트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쾌적한 도시의 삶은 이런 맛이다. 가령 이렇게 배달의 민족으로 저녁을 간편하게 배달해 먹고,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지친 몸을 편하게 쉬도록 하는 것. (시골집에서는 치킨 배달도 왕복 15킬로미터 운전하고, 목욕할 땐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아야 하는데 마침 샤워기가 고장이라 바가지로 물을 퍼부어야 한다. 흐윽...)
반신욕을 끝내고 템퍼 침대에 누우니 세상 살 것 같이 쾌적하다. 자다가 등 뜨거워 눈이 번쩍 뜨이는 아랫목이랑 다르게.
집으로 올라오려 준비하다 만난 동네 어르신이 한 말씀이 떠올랐다. 여기 아이 키우기 정말 좋으니까 서글프게 옛날 집에 있지 말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 하나 사라고. 마침 싸게 나왔다고. 또 쾌적함에 맛들리니 전원주택 살까 싶어 부동산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에라, 그냥 살자 싶었다.
아들들이 시골집을 사랑하는 것은, 낡고 오래된 것들을 사랑하는 나의 취향을 닮아서이고, 나의 이런 취향은 우리 엄마를 닮아서겠지.
50년대생인 우리 아빠마저 살기 불편하다고 신축 아파트를 사서 여길 떠나셨는데, 그 빈 둥지에 꾸역꾸역 들어와 바가지로 물을 퍼부으며 샤워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시골 DNA을 지닌 우리는 일요일이면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돌담 초록 대문 집으로. 아들 말대로 늙어서 불쌍한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