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도, 제주도 아니고 상주에서 일 년 살이하는 이유

시골학교가 주는 선물에 혹 했습니다.

by 다다리딩

아이가 7살이 되면 공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제대로 놀아보자고 맘 먹었었다. (사실 휴직 내기 전에 막상 고민이 너무너무 많았지만, -특히 돈 문제- 놀아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듦)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드는 동남아의 해변가에서 일 년살 이를 할까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단 하나. 아들들이 일 년에 한 번 가는 보홀을 특히나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닥치지 방향을 틀었다. 성실한 아들이 군소리 없이 어린이집을 다니긴 하지만 '하루 종일 교실에서 앉아서 하는 공부(오리고 붙이고 그리고 쓰는 활동)가 재미없긴 하다'는 말에 용기가 생겼다.


'어차피 학교 가면 계속해야 하는 공부들이야. 미리 한다고 다른 아이들만큼 시킨다고 아이들이 행복할까? 내가 키워보니 우리 아이들은 딱히 공부에 흥미가 없어.



일단 책은 좋아하지만 억지로 하거나 남들처럼 하라고 하는 틀은 진짜 싫어하지.



그러니 맘껏 놀자. 그래, 내가 엄마가 된 특혜를 제대로 봐야겠어. 그 특혜는 다름 아닌 두 번째 유년. 아이들과 다시 한번 유년기를 제대로 보내고 싶었다. 상처 많고 후회 많은 그 시절을 내 의지로 밝고 재밌게 만들 수 있는 기회!'

그렇다.


나는 아이들의 성향을 이유로

내가 제대로 놀 수 있으면서도 함께 행복할 선택을 하기로 했다.



속초? 그것에서 일 년을 살아볼까?

속초는 시댁도 있고, 아빠의 세컨드 하우스도 있어서 일 년 살이의 제일 유력한 후보지였다. 코로나 청정지역에 해당하고 시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겨놓고 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주거비용을 들이지 않고 아빠의 집을 랜트하면 될 듯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국공립 어린이집도 있고, 바다, 산, 계곡, 카페와 맛집 그 모든 것이 한 방에 해결되는 곳이었다.


고민하고 있던 중 신축 아파트였던 아빠 집에 아침에 방문했는데 집에 들어가 20분도 안 됐을 무렵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너무 크다고.


우린 잠시 방문한 것이고 방금 들어와 지금 앉아서 차 마시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으나 막무가내로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황당한 것은 우리가 집에 있지도 않은 기간 동안에도 계속 아이들이 뛰는 소음에 시달렸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브랜드 아파트는 부실공사 인지 화장실(밑인지 위인지 모를) 가래 뱉는 소리, 소변보는 소리.... 심지어 안방에서 코 고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소오름)


그 사건에서 속초는 내 마음의 1순위에서 지워졌다.


아파트 말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또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니 돈을 아끼면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없어져버렸다. 속초의 자연환경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이런 층간소음에 시달릴 수 없었다. 우리는 충분히 그동안 고층 아파트에 살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아랫층 분들이 좋은 분이셔서 내가 오히려 먼저 아이들을 혼냈지만...정말 아이들을 조용히 걷게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제주도를 가지. 그리하여 제주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일 년 살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제주도 일 년 살기!


이왕 돈 들고, 집 구할 거면 제주도로 가자!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면 매일 드라이브를 떠나야지. 카페 투어를 하면서 글도 쓰고, 제주도 구석구석 다 걸어봐야지! 아이들이 하원 할 때 차에 피크닉 바구니를 싣고 집으로 오다, 멋진 일몰을 마주하게 되면 자리 깔고 자녁도 먹고 와야지, 이런저런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마침 일 년 살이 떠난 사람들이 주위에 꽤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꽤나 만족스럽다고 한다. 인스타 인친들, 블로그 이웃들의 제주 라이프 글을 꼼꼼히 읽으며 머릿속으로는 이미 마당이 있는 멋진 전원주택을 구하고, 조금만 걸으면 제주도의 바다로 이어지는 주거지를 그리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아이와 이주한 분들 글을 보니, 여느 지방과 다르게 다양하게 배울 것들 천지였다. 돈만 있으면 아이들이 스킨스쿠버, 펜싱, 영어 등 손쉽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들 또래를 둔 인친님의 제주 라이프를 보며 더 열망이 커졌다.



그런데 정작 제주가 고향인 친구는 내 의견에 결사반대였다.


"너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꿈꾸면서 오는데, 일단 아이들 편의시설 하다못해 병원, 약국 가까우려면 네 상상 속의 바닷가 말고 제주시내에 살아야 해.


그리고 좋은 교육받게 하고 싶으면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그대로 있으면 되지 왜 굳이 제주에 오니? 더 돈 까먹는 짓인데? 휴직하고 오는 거라 네가 벌어놓은 돈 앉은자리에서 까먹기 좋지~.


제주도 나름 넓어서 카페 투어 하려면 차량 유지비, 식비 꽤 들 거고, 너는 특히나 일가친척이 여기 하나도 없는데 급히 아이들이 아프거나, 네가 아프거나 이러면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거야? 그렇다고 네가 여기 와서 특별히 커뮤니티 단체에 속해서 활동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만의 하나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남편도 급히 올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라면 네 친정도 시골이고 부모님 댁도 있으니까 거기서 살 것 같아. 제주는 정 오고 싶으면 일주일이나 한 달로 충분해. 여기 전세 개념이 아니고 1년 '연세'라서 돈 많이 든다.

그런데 내가 전에 너네 시골 가보니까, 아이들 살기 좋던데? 옆에 학교도 있고 너 친구들이랑 동생도 거기에 있으니까 힘들 때 도움 청할 수도 있고, 만날 사람들도 있으니까 덜 힘들 걸?"






그리하여 귀 얇고, 지갑도 얇은 나는 제주 라이프에 대한 환상을 손쉽게 접는다.




상주, 낡아가는 경북 소도시 라이프


'그래. 일단, 내가 익숙한 곳에서 일 년을 살아보는 거야. 그러면서 경북지역을 싹 훑어보자!'


도시의 집을 전세 놓고 상주의 전원주택에 전세로 들어오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예상대로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상주의 전원주택은 매매만 남았고, 전세는커녕 월세조차 놓지 않으려고 했다. 아파트 전세는 간혹 한 채씩 나왔으나 굳이 아들 둘을 데리고 또 아파트에서 스트레스받기는 싫었고, 무엇보다 매매가가 2억 3천이라면 전세가가 2억 2천이라 만의 하나 전세돈 돌려받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친구 어머니집은 월세 60만원이라고 했으나 10층 아파트라 딱히 끌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모님이 상주에 기거하실 때마다 사용하는 낡은 70년 된 전원주택(이라기보다 시골집이 더 어울리는..)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 어떤 가구도 못 들여서 책상은 마당 데크에 놓고, 옷가지만 가지고 트렁크에는 아이들 책만 가득 넣어서.

그렇게 해서 굳이 굳이 낡은 도시,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줄어들고 있는 이 조용한 소도시로 최종 낙점한 데에는 단순히 돈이 적게 들어서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도시의 집을 처분하면 충분히 다른 지역 살이가 가능하니까.)



굳이 도시의 집을 비워두고 시골의 낡은 집에서 바가지로 물퍼서 샤워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내려온 이유는, 이 집에서 도보로 10분(아이들 걸음으로) 근처에 있는 시골학교이기 때문이다.


교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부모님은 본인의 손자를 보시고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너는 이 학교에 다니면 정말 딱이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말 그대로 이 작은 학교는 '자유롭게' , '놀 권리'를 확보해주는 곳이었다.


사라져 가는 시골의 아이들을 (정말 시골은 아이 키우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며 부모들의 일자리도 부족하다) 붙잡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학교가 주는 특별한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단 3명 정도가 이 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시내에서 스쿨버스를 이용해 오는데, (정확하진 않다. 내가 한 달 동안 이 마을에 살며 파악한 바로는...) 굳이 이 학교에 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곳의 작은 학교는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가르침을 주려고 애쓰지 않는 듯하다. 아이들 병설유치원 입학식에서 나는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에게 전혀 거리 감 없이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충격을 받았다. 어른으로서의 권위보다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우리 아이들 담임선생님도 그러하신 듯했다.


한달 동안 이 곳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진짜였어

진짜로 공부를 안 시키는 학교(유치원)가 있었어!"


둘째도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노는 것도, 책 읽는 것도 다 공부라고 했잖아! 우리는 열심히 노는 공부를 배우고 있어!"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가 좋았는지, 일 아침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려고 애썼고,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스쿨버스에 타고 가는 모습을 배웅하고 마지막으로 하교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좀 있어 보이는 멋있는 전원주택에 살면서 사진도 좀 찍고, 인스타 감성 좀 뽐내고 싶었는데, 시골집이라 망했어! 사진 찍어봤자 시골집이야!'라고 자책한다.


보통 SNS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새로운 경험'과 '영향력'을 염탐하게 되는데 나의 이 초라한 시골라이프는 볼것많은 그 세상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북 상주 라이프'를 선택함을 마구 칭찬한다.



시골학교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에 무척이나 만족하기 때문이다.



'놀 권리'를 제도권 안에서 보장해주고 장려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공교육 안에서 충분히 놀아도 괜찮아, 우리 학교에서는 사교육 없는 학교를 위해 4시 반까지 모두 돌봐주고, 예체능 방과후 활동도 다 무료로 하고, 놀이터도 다 같이 만들고 목공 수업, 댄스 수업 다 해~ 그러니까 이 시골로 와서 맘 편히 놀아. 편안히 너희들 생각을 말해도 괜찮아. 우리는 너희 생각을 존중하니까' 라는 '안심'을 이 작은 시골학교가 우리에게 선물로 줬다.


이런 생각을 자녀교육관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켠에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았는데, 또 워킹맘으로서 학교에 가면 어차피 퇴근 전까지 학원을 보내야 하니 학원을 세팅해 놔야하는 피곤함에 내 결심이 곧잘 흔들렸는데, 이 시골학교는 우리에게 편안함을 선물해줬다.

이런 편안함과 지원은 오로지 시골의 학교라서 가능한 일인 듯 했다. 시골 학교의 이런 특색이 우리를 이 곳으로 불렀다.



그 선물에 홀랑 넘어가 내려왔고,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니까 나는 좋다. 옆집 아이가 어떤 학원을 다니나, 우리 아이만 학원 안 보내고 한글 모르는데 어쩌나 싶은 두려움은 접어두고 오롯이 아이들의 말과 생기 어린 행동에 집중할 수 있어서. 우리 애만 노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노니까. 그래도 아이들은 잘 자랄 테니까.


"엄마! 나 내년에도 여기서 학교 다니는 거다. 친구들에게 선물도 다 해주고 싶고, 좋은 거 다 주고 싶어. 너무너무 좋아."


아이는 일 년으로 만족 못할 모양이다. 일단 이 자유로움을 맛보았으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우리는 백 평 남짓 작은 시골집에서 오늘도 하루를 오롯이 행복하게 보내는 평안을 선물 받았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