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것들의 마당이 여기 있다.

by 다다리딩

그것은 닭이었다.

아니 병아리였다. 아니 그 중간인가?


집으로 가는 도로 4차선 도로 위에 오묘한 형태의 그것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포기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그 동물은 '무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어떤 욕구나 의도가 보이지 않는 '무해한 표정'





"어머나 어째. 이 근처에 닭고기 공장 있다고 하더니, 차에 싣고 가다가 쟤만 떨어졌나 보다. 저러다 죽겠다."


"저렇게 어린 닭을 가공해서 먹는 거야?"


"저 닭은 뭐 먹여서 빨리 키운 닭이야. 그러니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정상적으로 자라면 병아리 즈음될 텐데, 빨리 커서 잡아먹어야 남는 장사니까 기업에서 약을 먹이든, 그런 사료를 먹이든 빨리 키운 거지. 그러니까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걷지도 못하고 저렇게 도로 위에 주저앉아있지. 쟤는 이런 상황이 처음일 것 아니야. 쯧쯧. 저러다 죽겠는데."


백미러로 보니 다른 차들이 그 무해한 닭 병아리를 피해 가느라 난리였다. 그 아이는 우두커니 앉아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자동차를 응시하고 있다. 일어날 힘도 없다는 듯이. 처음 만나는 자유라는 듯이. 움직일 의지도 생각도, 힘도 없는 듯했다.


그렇구나.


그렇게 경험치 없이 사육당하면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무해한 얼굴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얘, 우리가 데리고 가자."

"어?"

"저렇게 두면 죽을 텐데.... 차에 치이든, 짐승에게 먹히든. 일단 살리고 보자."


엄마의 급한 결단에도 불구하고 유턴이 가능한 곳은 상당히 멀었다. 나는 돌아가 보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 그 생명이 이미 끝나 있거나, 살린다고 한들,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였다. 차라리 우리가 마주치지 않았으면 편한 상황은 없었을 텐데.


유턴을 해서 돌아간 그곳에 무해한 병아리 닭의 생명은 끝나 있었다.


그날 밤 유난히 꽃샘추위가 몰아쳐 보일러를 돌렸다. 하필이면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삼계탕 거리를 장 봐온 날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그날 사온 닭을 냉장고에 넣었다. 막상 반찬이 없어 계란 프라이를 하려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간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아아 아!! 화장실에 귀신이 있어!!"


아이는 너무 급했지만 무서워서 도무지 볼일을 보지 못하고 마당에서 볼일을 보겠다며 차라리 마당의 어둠을 선택했다.


엄마와 나는 화장실 옆 붙어 있는 보일러 실로 향했다. 과연 그곳에서 기분 나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쉬쉬쉬.. 씨익익..

짐승의 숨 쉬는 소리였다.


"엄마! 뱀은 아니겠지? 쥐인가? 쥐가 이렇게 소리가 큰 가?"


엄마는 천장의 틈을 응시하며 그 소리의 정체를 살피느라 온 감각을 집중하는 듯했다. 한참만에 엄마의 결론은 '병든 고양이의 숨소리'였다.



우리 시골집 마당은 아주 능청스러운 길고양이들이 다 드나드는데, 마당에서 고기를 먹는 날이면 특히나 모두 모여들었다.


엄마는 그중 가여운 새끼 고양이가 못 먹는다며 따로 챙겨주곤 했는데, 내가 자세히 보니 그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가 아니었다. 얼굴이 상처인지, 때인지 새까만 검댕이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털은 윤기 없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이 과거에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에 시달렸었던 신경질적인 부장님이 떠올랐다. 누가 봐도 아픈 고양이인데, 엄마는 눈이 나빠 잘 안 보이는지 자꾸 가여운 새끼 고양이라고 우겼다.


그 병든 고양이는 자주 우리 집에 드나들었는데 추운 밤이면 보일러실에서 자는 듯했다. 아이들은 아주 숨소리가 나쁜 그 고양이가 마당에 있으면 자신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다가도 화장실에서 그 소리만 들리면 기겁하고 도망 나왔다.


"할머니, 이 집은 그냥 버려두고 우리 집으로 가요. 거기 아파트는 화장실에 이런 소리도 안 나고 무섭지도 않아요. 아픈 고양이들은 못 들어와요. 엘리베이터 탈 줄을 모르니까. 그리고 뱀이나 강아지도 막 들어오지 못하니까 우리 집으로 가요. 이 집은 그냥 고양이들 살게 해주자. 아니 부숴버릴까? 아파트에는 무서운 소리도 안 나. 바람 소리,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주 조용하니까 우리 따라 아파트 가요. 네? "



나는 아이의 말을 듣다가 우리집이 그렇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곳인가 새삼 돌이켜보았다. 그렇다. 생활소음은 있을지언정, 바람소리, 새소리, 짐승소리는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곳이지.



그때 앞산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집안까지 새어 들어왔다. 왜 밤바람 소리와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저토록 무서울까.

집까지 쳐들어온 산짐승 소리는 낯선 소리였다.


"고라니 울음소리네."


엄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들은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멧돼지나 고라니가 이 낡은 집까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불안해하며 말했다.



문득, 잊고 살았던 증조 외할머니의 마당이 생각났다. 아들 나이보다 한 두 살쯤 더 많았을 때, 나는 온갖 길 잃은 짐승들을 증조 외할머니의 집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라 키울 곳도 없고 부모님도 허락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아서 버려진 고양이, 다친 강아지, 학교 앞에서 한 허약한 병아리 등등 모든 것들의 생명을 그녀에게 맡겼다.

몸속 병균을 다 죽인다며 담배를 팍팍 피우던 증조 외할머니는 조용히 그 연약한 생명들을 거두어 키웠다. 금방 죽을 것 같은 생명들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갔고 더 자라 그들의 삶을 살아갔다.


이상하게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그녀의 마당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었는데, 지금 엄마의 시골집 마당이 그러했다. 결핍 가득한 그녀들의 마당은 적절한 위로를 선사했다. 엄마는 자신의 마당에 찾아오는 병들고 약한 것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충분히 쉬다가 가도록 무심히 모른 척했다.


그런 사람들의 자식이어서 연약했던 내가 단단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던 걸까?



오늘도 봄햇살 따뜻한 마당에 늙은 검정고양이 한 마리와, 병든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와 나란히 앉아 햇빛을 쐬고 있다. 길가던 개가 대문 밑으로 들어왔다가 우리를 보고 얼른 나갔다.


"들어와."


다정히 내가 말하자 멈칫하던 개가 고양이 두 마리를 훑더니 그냥 나가 버린다.


온갖 연약한 것들이 모인 것 같은 마당.


오늘도 시골집에 앉아, 비루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달아간다.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일까, 너무 감상적인 나도 이제 더 이상 싫어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살게 됐다는 증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