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봄나물 엄청 맛있을 때다. 시간 있을 때 논둑에 나가서 쑥이랑 냉이 좀 캐와. 애들 저녁에 쑥국 좀 끓여주게."
"엄마가 뭘 모르는데, 애들은 쑥국 싫어해."
"그럼 냉잇국 끓여주지. 시원한 멸치육수에다가 시골 된장 풀어서 냉이랑 넣고 끓이면 애들이 얼마나 잘 먹는데."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작년에도 끓여줬는데 무슨 소리야. 무엇보다 강한 겨울을 이겨낸 초봄의 뿌리식물이 얼마나 강한 생명의 힘이 응축되어 있는 줄 아니? 향긋하고 맛 좋고 몸에도 좋은 봄나물을 우리 손주들한테 듬뿍듬뿍 먹여야지. 갓 지은 쌀밥이랑 된장국만 있으면 두 그릇씩 뚝딱하는 녀석들인데 뭘 싫어해!"
"봄 햇볕에 딸 얼굴 타면 기미 생긴단 말이야. 마트 가서 사서 올게."
"네가 직접 캐서 먹어봐라. 얼마나 향이 좋고 맛있는가. 마트서 파는 거랑은 또 맛이 다른데."
이리하여 나는 아이들을 등원시켜 놓고 대문 밖 산을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엄마가 챙겨준 나물 채취용 칼과 검정 봉지를 들고 황급히 문밖을 나섰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체육 대신 봄이면 쑥을 캐서 선생님께 상납하며 자랐지만, 아직도 풀밭에서 어떤 것이 쑥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냉이는 뭔가? 뿌리를 봐야 알 것도 같다.
논둑을 걷다가 예전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원도 산골 출신인데 일가족이 직접 채취한 버섯을 먹고 잤는데 식용버섯과 굉장히 유사한 독버섯이라 가족들 모두 죽고 버섯을 싫어하는 그 분만 살아남아 친척집을 전전하며 공부해 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직접 채취하는 건 질색팔색이다.
모든 걸 의심하며 마트 신봉자로서 차에 시동을 걸어 집에서 가까운 하나로마트에 가서 냉이 한 봉지를 4천 원 좀 덜 주고 샀다.
엄마는 눈을 곱게 흘기며 국을 끓였다.
다음날은 상주 시내 카페 투어를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노닥거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 입구에서 나물 캐는 동네 할머니를 만났다. 슬금슬금 다가가 여쭤보았다.
"할머니, 저는 영 냉이가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자꾸 엄마가 냉이를 캐오래요."
"요래 요래 생긴 게 냉이라. 요래 요래 캐면 시간 보내기도 좋고 맛도 좋고 좋지. 얼렁 요 옆에 앉아서 캐."
"어제도 나와 계시던데 맨날 이렇게 많이 캐서 누가 다 먹어요?"
"딸 집에도 보내주고, 남는 건 장날에 가서 팔고."
"버스비도 안 나오겠어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도 장에 잘 안 나가던데. 전날 장에 갔더니 썰렁하더라고요."
"버스비는 공짜니께. 그래도 앉아서 사람덜 구경하고 그러면 재밌지. 시간 보내기도 좋고."
시간 보내기도 좋고, 채집의 재미도 있으며 소일거리가 있음에 감사한 봄이라고 말씀을 하시던 동네 할머니는 마른 흙 같기도 하고, 나무껍질 같기도 한 손으로 검은 봉지에 담긴 냉이를 들고 아래 냇가로 가서 씻어 주셨다. 그냥 주셔도 되는데,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그녀를 따라 냇가에 앉아 같이 씻었다. 내미는 4천 원을 절대 안 받겠다는데 고이 그 옆에 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왔다. 4천 원의 나물값은 이 따가운 봄빛나절의 노동치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값싸다.
엄마는 날이 따뜻해져 냉이가 억세 지긴 했지만 역시 향이 일품이고 맛도 너무 좋다고 만족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된장을 푼 맑은 냉잇국은 향긋했다.
냉잇국이 이렇게나 달큼했었던가.
마당에서 키운 텃밭 채소로 차린 밥상과 간식거리
다음 날 아침 내가 아랫목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아들 둘은 기상해서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텃밭 채소들을 솎아 왔다. 둘째는 가위를 가지고 잎만 잘랐다며 나보고 많이 먹으라고 했다.아이들은 그동안 비가 안 왔으니 밭에 물을 줘야 한다며 집 앞 맑은 개울에서 물을 길어와 자기 밭에 물을 주며 작고 여린 생명에게 무한한 격려를 던져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양파야, 무럭무럭 자라서 예쁘고 뽀얗게 돼라."
"우리 엄마 파 좋아하니까 엄마한테 주게 잘 자라야 해. 물 많이 먹으면 몸에 좋다니까 많이 마셔!"
아들들은 할머니로부터 모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 심고 물을 준다. 그렇게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시간을 들여 보살펴주고, 알아간다. 한낱 밥상에 오를 풀떼기에도 이렇게 무한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명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방관자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갈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아침마다 소일거리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손바닥 만한 텃밭을 가꾸는 일에도 무한한 정성이 깃들어 있구나.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느 시기에 씨를 뿌리고 어떻게 솎아 줘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게 아이를 키우는 일과 비슷하구나.
왜 마트에서 파는 것과 직접 캐거나 길러 먹는 식물의 맛은 다를까? 애정의 정도일까?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함이 깃듦일까? '
온 식구들이 밥을 먹고 텃밭으로 나간 이른 아침 시간에도 나는 정말 농사는 재미없다며 책을 한 권 꺼내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골 라이프는, 그냥 이런 거다.
게으르고 게으르게 자연을 보고 생각하고 쓰고 그 아름다움을 오롯이 즐기는 거.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느끼는 것보다 시시각각 자연이 주는 그 보호막 안에 기꺼이 들어가 지친 삶을 쉬리는 것.
텃밭 생활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신성하고 거룩한 노동에 동참할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빠를 빼다 박았는데, 내 편인 줄 알았던 아빠가 나를 보고 핀잔을 준다.
"너 밭에 물도 안 줘, 잡초도 안 뽑아. 딱히 뭘 배우지도 않아. 휴직하고 집에서 딱히 뭐 하는 거 같지 않은데 그냥 복직해서 돈 벌어라."
나는 아빠 앞에서 입을 삐죽이며 이렇게 대꾸한다.
"아빠 뭘 모르시네. 백수가 젤 바쁜 거 알아? 대학 졸업하고 바로 돈 벌고, 마흔 줄에 애 키우고, 정신없이 일하고 그러다가 이제 좀 느긋하게 쉴 황금 같은 시간이 생겼는데 하는 게 없다니! 책 읽고 글 쓰고 산책하고 지역 소상공인들 위해 소비하면서 지내잖아! 내가 즐기려고 얼마나 비자금을 열심히 모았는데! 다 쓸 때까지 나 복직 못 해!"
아빠는 내가 일찍 철든 딸인 거 뻔히 알면서 마흔 넘어 왜 저러냐는 얼굴로 보며 나가셨다.
아빠 엄마 더 나이 들기 전에, 우리 아들들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친구 사귀느라 바빠지기 전에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 그냥 나는 빈둥거리며 삶을 재발견하기 위해 이러고 있다는 큰 뜻을 부모님은 아마도 모르시겠지? 아들들도? 나만 아는 삶의 재미. 아직은 책임감 무겁고 인내하는 농사일보다 그냥 시골을 즐기고만 싶다.
내일도 느긋하게 어렸을 때 추억 가득한 곳을 어슬렁 거리며 사진 찍을 거고, 부모님과 맛있는 거 사 먹고 등산도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많이 많이 놀아주려고 나는 시골로 온 건데. 농사짓기는 정말 내 적성에 안 맞아서 싫은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나도 농사짓기의 재미를 알아가는 거 아니야 혼자 생각에 잠겼을 때 이웃에서 표고버섯 키우는 나무와 병아리를 주신다고 하셨다. 옆집에선 곶감이를(하얀 강아지)를 데려가 키우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달뜬 마음으로 야단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 강아지도 키우고, 병아리도 키우고, 버섯도 키우고 싶은 모양이다.
"엄마, 유튜브 보면 요즘 강아지나 병아리 어떻게 하면 잘 키우는지 다 나와 있대. 우리가 맨날 씻겨주고 밥도 먹이고 병원도 데려가고 잠도 재울게. 농사도 잘 짓고. 다 할 수 있어."
간절한 눈빛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들 나이에 손바닥만 한 병아리를 수없이 하늘나라로 보내봤고, 가엾은 강아지를 키우다 감당 못해 누군가에게 대신 키워달라고 부탁한 경험이 있으며, 농사짓는다고 시시때때로 부모님 댁에 가서 일손을 돕기 바빴던 친구들을 둔 나는 어떤 식으로든 생명을 자신이 없다. 밭일로 류마티스관절염을 앓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고 자란터라 농사에 정말 낭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