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엄마와 카페 투어

다시 엄마곁으로 돌아온 이유

by 다다리딩

"나 빵 먹을 테니까 너만 음료수 시켜."


엄마는 텀블러에 마실 것이 있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자신의 음료 대신 빵만 시키라고.


빠듯한 공무원 월급에 아이 셋을 키우면서, 그리고 종종 경제적인 사고를 치면서 엄마는 음식을 넉넉히 시키는 법이 없었다. 너무 속상했고, 또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조건 카페나 식당에 가면 음식을 넉넉히 시키고 반드시 1인당 1 음료 주문하는 것은 사장님에 대한 예의로, 그동안 미안함의 보상으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쪼그마하 아들들을 데리고 다녀도 아이 몫의 음료를 주문해주거나 케이크를 더 시키거나, 식사일 경우 아이가 너무 어려 사이드 메뉴일지언정 1인분의 음식은 반드시 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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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외식하거나,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을 때 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과 주인 눈치를 보느라 조마조마했던 조바심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내 삶에 각인되어 있다. 너무 아꼈던 엄마의 모습은 어쩌면 내 자존감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엄마! 요즘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우리같이 먹고살만한 사람들이 제 몫의 음식을 넉넉히 시켜줘야 좀 살만한 세상이 되는 거야."


나는 엄마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카페인이 없는 음료를 선택해 내 맘대로 주문한다. 엄마는 집에서 커피를 갈아 마시면 되지 굳이 페까지 왔다며 돈 아껴 쓰라고 한 마디 하시지만, 평생 아낀 엄마가 부자가 된 것은 아니므로 그 말은 살짝 접어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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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카페 투어가 나를 들뜨게 한다. 카페의 분위기를 슬쩍 둘러본 뒤 엄마는 살짝 감탄한다. 생활의 발명가답게, 그 카페에서 공간을 활용한 방법을 살핀 뒤, 집의 가구 배치나 공간 활요을 이런 식으로 하면 더 좋겠다고 한 마디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다.


엄마는 핸드폰을 들어 주식시황을 면밀히 검토한다. 카페인 안 들어간 차를 마시며 제때 못 팔아서 손해 본 종목을 말하기도 하고 나에게 사면 좋은 종목을 권하기도 한다. 나는 한 귀로 들었다 흘려버린다. 어른들 말 들어 나쁠 것 없다고 하지만 엄마의 주식 이야기는 반드시 거른다. 단 한 번도 이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엄마가 권한 종목을 샀다가 15년째 찾지 못하는 돈이 꽤 되며,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상장 폐지될지도 모르는 주식 종목들. 엄마는 그렇게 권했다가 자신이 권한 것도 깜박 잊어버린다.


"엄만 진짜 주식 못하는 것 같아."


"내가? 하하하하, 맞아, 맞아."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벌 때도 있으니까. 재밌어."


엄마는 하루 종일 주식 공부도 한다. 유명 투자자의 유튜브도 보고 증권사 보고서도 보고 유료 강의도 듣는다. 그렇지만 엄마는 돈 번만큼 반드시 잃는 패턴을 몇십 년째 유지 중이다.


"엄마! 주식 그만 보고 이것도 좀 먹어봐. 이 카페 시그니처 메뉴래."


엄마 앞으로 수프와 갓 구워진 크로와상을 내민다. 엄마는 수프를 한 입 먹더니 호들갑스럽게 너무 짜서 놀랐다고 토끼눈을 한다.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이지 짰다. 따뜻한 물을 달라고 해서 섞을까도 고민했지만 내 성격상 귀찮기도 하고, 괜히 기분 잡칠까 봐 참고 만다.


지나치게 눈치 보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고, 참고, 이런 성격의 반은 양육자의 잘못이란 생각이 들어 슬며시 엄마한테 나 왜 이렇게 키웠어?라고 투정 부리고 싶어 진다.


그렇지만 아들 둘을 낳아 키워보니 이제는 안다. 아이 셋을 주말마다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누리게 해 준 경험들이 얼마나 엄마로서 고되고 힘든 일인가를. 워킹맘이었으면서 손수 간식을 만들어주고 매끼 풍족하고 건강하게 밥상을 피곤한 기색 없이 차려주는 일이 얼마나 고귀한 희생이었는가를. 유난히 약하고 아팠던 나를 평일마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제대로 된 병원이 있는 도시로 데려가 치료받게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고 하면서 맘 졸이는 일이었는가를. 너무나 잘 안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커서 물리적 거리에 더해 심리적 거리도 멀어질 무렵, 나는 결혼했고 하필이면 일 년의 반 이상을 대서양 어딘가를 떠도는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아들 둘을 낳으면서 일도 했다. 왜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 이해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엄마에 대한 서운 함대 신 엄마를 이해하게 됐을 때, 원망보다 연민의 마음이 더 커졌었다.


내가 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려는 다짐은 자주 흔들렸었는데, 같이 근무하는 부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엄청난 일 중독이었잖아. 한창 일에 빠져 살다가 우리 엄마가 저렇게 되신 거야. 퇴근 후에 집으로 가서 언니랑 교대하고 엄마를 돌봐야 하고, 방학 땐 전적으로 내가 돌봐야 하고. 그러다 보니 엄마가 좀 더 건강할 때 같이 많이 좀 다니고 시간 보낼걸 이런 후회가 들더라고. 선생님이 아이들과, 부모님과 더 늦게 전에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중에 만약 부모님이 아프시게 됐을 때 가슴 치면서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러니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미련 없이 부모님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와. 언제든 돌아올 직장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일에서 너무 즐거움을 찾지 마. 내가 일에 홀딱 빠져 살아봐서 알아."


그렇다. 그 부장님은 내가 신규 발령 때 엄청나게 일을 열심히, 잘하시는 선생님이셨는데 다시 15년 만에 만났을 때 분위기가 좀 달라지신 면이 있었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짠 수프를 돈 아깝다고 우리 둘은 딸딸 긁어먹었다. 그런 모습에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이렇게 시골로 다시 돌아와서 일 년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은 아이들에게 맘껏 자연을 누리게 하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사실 무엇보다 엄마랑 더 늦게 전에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유가 커. 엄마랑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집도 다니고. 그러니까 자꾸 집에서 청소하고 채마밭 가꾼다고 바쁘니까 안 나간다는 말 하지 마. 난 정말 엄마랑 추억 더 많이 만들고 싶어. 엄마 딸이라 너무 행복하니까."



무뚝뚝함의 끝판왕 첫째 딸의 쑥스럽기 그지없는 고백에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두 눈이 쌜쭉샐쭉 춤추며 웃는 눈꼬리가 되었다. 사랑과 관심을 받아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 나는 이런 엄마의 모습이 너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