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벚꽃엔딩

by 다다리딩


벚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벚꽃뿐만 아니라 봄의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려주기를 기다렸다. 시골의 봄 햇살은 순식간에 뜨거워지지만 그 뜨거워지는 발화점이 되기 전까진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서늘함이 있기 때문이다. 3월 말까지 바람은 차가웠다. 주말마다 어떤 계시라도 있는 듯 서글픈 봄비가 내렸다. 시골집의 서늘한 냉기가 우리를 아랫목에만 있게 만들었다.


그러다 벚꽃 망울이 드. 디. 어. 터지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났다. 제법 봄햇살이 우리 집 마당을 뜨뜻하게 기분 좋은 딱 그만큼의 온도로 덥혔다.


돌이켜보면,

벚꽃 시즌의 학교는 늘 시험 출제 기간이거나 셤 기간이라 여유가 없었다. 바쁜 시기임에도 그 찰나를 놓칠 수 없어 부득불 시간을 내기 일쑤다. 하지만 도시에 살면서 벚꽃 명소를 찾아다니는 일은 여간 진 빠지는 일이 아니었다. 막히는 차들과, 넘처나는 인파들 속에서 아이들을 챙기느라 늘 피로감을 느껴 꽃 터널을 지날 때면 '꽃이고 뭐고 다신 꽃구경 나오나 봐라'란 맘이 불쑥 생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이 피기 시작할 3월 말 즈음이 되면 마음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들썩이는 마음과 달리 쾌적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아파트 생활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봄에 대한 간절함을 갈구할 틈을 주지 않았다. 도시에서 벚꽃시즌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꽃놀이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는 빡빡한 일정과 즐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여러 가지 이유, 아쉬움보다 그런 틈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 허탈한 상실감 등등 봄의 애상감과 맞물려 서글픈 감정을 주로 가졌던 듯하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 내려와 평일의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만큼 이제껏 번번이 누리지 못했던 그 찰나의 꽃놀이를 최대한 즐기고자 마음 먹었다. 그냥 그럴 수 있을 때 그러고 싶었다. 그리하여 매일매일을 걸었다. 매일매일 같은 길을 걸었지만 꽃들은 날마다 무성해졌고 어떤 날은 꽃비로 흩날렸고, 또 어떤 날은 눈부시게 풍성해서 '절정'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오롯이 느꼈다.


같은 곳을 매일 걷는데, 매일매일 매시간 매 초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아름답다 느낀 이유는 내가 매일 이렇게 봄의 벚꽃 그늘 아래를 걷고 싶어 했음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떤 날은 친구와 김천역에서 만났다.
10여 년도 더 전에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상주로 오려면 새마을호를 타고 김천까지 와서 상주로 오는 버스나 무궁화호로 환승해야 했었다. 우리 집이 김천까지만 됐어도 주말을 집 오는데 이리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아도 될 텐데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40대에 다시 찾은 김천역은 김천구미역에 밀려 놀랄 정도로 한적해졌고 쇠락의 길을 걷는 서글픔 한 줌을 지니고 있었다.


김천역에서 만난 친구와 sns에서 본 벚꽃 명소, 연화지를 찾아 거닐었다. 연화지는 상춘객들로 붐비는 유원지의 요소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파아란 하늘과 연못을 빙 둘러 심은 벚꽃나무, 꽃놀이 나온 중년층과 학생들.
아마도 이 유원지 꽃길이 마음에 쏙 들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너무 많은 소란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자 또 봄비가 내렸고,

종일 내린 거센 비에

꽃이 다 졌다.

무겁고 잔인했을 빗방울에도 산 벚꽃송이들은 지지 않았다.

같은 지역인데도 꽃들은 같은 때 같이 지지 않았다.


꽃송이가 남은 순서대로 상주에 뒤늦게 피는 벚꽃 나무들을 만나러 다녔다.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 샛길, 외서의 도로변, 갑장산 아래의 꽃그늘, 집 앞의 산 벚꽃.

꽃들은 뜨거워지는 순서대로 폈다가 졌다.
어김없었다.
피고 지는 순서는 햇빛의 농도 짙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가와 일치했다.

꽃잎이 다 떨어지고 듬성듬성 상춘객들의 마음도 시들해질 무렵
산 아래 한 두 그루 벚꽃의 꽃송이가 무성해졌다.

그제야 나는 '나돌아 댕김'을 그만두었다.
집 마당에서 믹스 커피를 두 개 넣은 찐한 우리 할머니식 커피를 타서 책상에 앉았다.
한두 그루의 벚꽃 나무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도 늦게 데워져 늦게 피는 꽃과 같았다. 젊은 시절을 왜 열심히 살지 않았냐고, 왜 열심히 공부하거나 뭔가를 이루지 않았냐고 자책해봤자 부질없었다. 늦어도 꽃이 폈으면 됐다.

복닥거림 없이 평온한 시간 속에서
혼자서 빛나고 있는 나무 한 그루 그대로를 어여쁘게 바라보아 줄 수 있는 시선을
마흔 넘어 가졌고, 고비고비 잘 넘기며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으러 다녔던 밋밋한 삶을 긍정할 여유도 생겼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무리지어 피지 않아도 때를 기다려 꽃을 피워낸 한 그루 꽃나무가 그저 대견하다.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무리 지어 피는 벚꽃의 성대한 우아함과는 비할 바 안 되는
고고하고 빈약하기에 오히려 소중한, 꽃송이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마당에 앉아 꽃나무 한 그루를 한참 보고 있자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파랑새 동화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만족한다.
마음이 다 하도록, 미련 없이 꽃을 즐겼다.

벚꽃시즌이 끝나간다.
잘 가, 벚꽃 정령. 이제 북쪽으로 더더 올라가렴.
그러다 또 내년에 만나.
난 그 한 시절을 다복하게 보내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