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가령 손바닥만 한 시골에서 아이 셋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자전거 타고 나가 그림을 그리고 온다던지, 기분이 울적한 날엔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아파트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기분을 달랜다던지.
별관광지 없는 시골에서도 매일이 소풍이고 이벤트였다.
나도 그 엄마의 그 딸이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췄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찾으며 보냈다.
그중 하나가 인구밀도가 낮은 시골로 내려온 것이며,
알려지지 않거나 사람들은 가지 않는 노지 피크닉 장소로 드라이브 가는 것이었다.
시골로 내려와 일상적인 즐거움이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당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였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돌아올 즈음 바람이 불지 않은 비교적 따뜻한 저녁이면 딱 고기굽기 좋은 날이다. 동네 아저씨에게 믹스커피 한 잔 타드리고 얻은 고기구이 드럼통에 아빠 친구에게서 얻은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운다. 그 위에 철망을 올리고 장날 시장에 나가 정육점에서 산 생삼겹살이나 생목살을 올린다. 초벌을 한 고기를 다시 한번 구워내 소금을 살살 부리면 그 맛이 별미다. 이렇게 고기 구워 먹으려고 사람들이 캠핑도 가나 싶을 정도다.
고기 냄새를 맡은 동네 길냥이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어 저녁 식사를 하는 우리를 둘러싼다. 유독 고기 냄새만이 식욕을 강하게 자극하는지 꼭 고기 굽는 날만 다 모인다. 고양이들은 무심한 척 마당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멀리서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우리는 검정고양이, 병든 작은 고양이, 매일 우리 집 보일러실에 숨어드는 고양이, 살찐 얼룩이 고양이들을 구경하며 인원체크를 한다. 아이들은 고양이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이기도 하고, 일부러 더 맛있게 먹으며 약을 올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누군가 실수로 바닥에 고기를 떨어뜨리면 그들 중 가장 날렵한 고양이가 고기를 주워 제일 먼저 사라진다.
어떤 날은 준비가 귀찮아서 간소하게 카레라이스 한 그릇을 만든다. 대충 먹고 얼른 책 읽자고 구슬릴 셈이었다. 아이는 밖에서 굳이 먹어야겠다고 카레라이스 한 그릇을 쟁반에 올려 들고 마당의 식탁에 앉는다. 오늘은 좀 춥지 않으냐고 묻자 아이는 전혀 춥지 않다며 밖에서 저녁을 먹어야지 기분이 좋다고 답했다. 아이는 찬바람에 금방 식은 카레라이스를 야무지게 먹으며 비 온 후 산빛이 달라진 것을 또 야무지게 찾아낸다. 산에 연하게 분홍색이 된 것은 벚꽃이 틀림없다는 제법 옳은 추측도 해낸다.
또 어떤 날은 아이가 비가 와서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다. 배달이 되지 않는 동네인 데다 행여 배달이 된다고 해도 배달 주문 부탁하기 미안할 만큼 날이 궂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나도 너무 먹고 싶어 자주 가는 치킨집에 배달료는 더 드릴 테니 배달해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치킨집에서 우리 집은 왕복 15킬로미터 거리었다.
흔쾌히 오케이 해주셔서 우리는 비 오는 처마 밑 데크에 쪼로미 앉아 치킨을 기다렸다. 비가 많이 내릴수록 아저씨가 행여 못 오실까 봐 아이들은 마음을 졸였다. 짧은 순간에 "치킨 언제 와?"를 돌아서면 물어서 결국 진득이 기다리지 못한다고 아이들을 혼냈다. 치킨집 아저씨의 검은색 마티즈가 집 앞에서 경적을 한 번 눌렀다. 너무 감사해 캔커피를 건네자 아저씨는 마당 있는 시골집이 너무 이쁘다며, 배달 빨리 해주고 싶어 서둘렀단 감사한 말도 해주셨다.
그날 우리는 배달해 먹는 치킨 맛의 감격을 완연히 느끼며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치킨을 먹기 바빴다.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서 어른들은 부엌에서 밥과 김치, 김을 꺼내와 허기를 채웠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다 먹고 방으로 들어가자 남은 치킨을 깔끔히 마무리했다.
또 어떤 날은 채식이 당기는 날이 있었다. 3월 초에 뿌린 씨는 부지런히 자라 싹을 틔웠다. 새싹 비빔밥을 먹을 차례다. 제법 큰 상추는 옛날 된장에 참기름과 마늘, 깨소금을 넣고 만든 쌈장에 찍어 먹으면 꿀맛이다. 그 맛을 아는 어린 아들들은 주먹만 한 쌈을 싸서 입에 욱여넣는다. 쌈장을 많이 넣는 걸 보니 짠맛에 먹는 것도 같다. 텃밭 채소의 물 가득한 상큼함이 입안에 드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괜히 후식도 당기지만 참아본다.
그렇게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머리 위로 별들이 떠오른다. 산자락의 서늘한 밤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 먼저 밥그릇을 가지고 아랫목으로 뛰어 들어가면 정리는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유난히 마당에서의 저녁 식사를 즐거워했다.
나도 우리 엄마도, 우리 아빠도 저녁거리를 나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당에서의 피크닉이 아이들 인생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아이들과의 이런 추억이 우리들 인생에도 소중한 그림으로 남을 것임을 알기에 기꺼이 마당에서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왜 밥맛은 야외에서 먹으면 더 좋아지는 것일까?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좀 덜 먹으려고 애쓰는 마당에서의 피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