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친구

삶이 행복하지 않을 때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

by 다다리딩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알았다.

그녀가 '자발적 추방자'에 속한다는 것을.


한 다발의 아름다운 꽃송이로 살기보다, 담벼락에 사랑하는 이들과 자유롭게 피어나는 들꽃 같은 삶을 살기 원하는 부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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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살다가, 합리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이라는 것을. 삶을 군중에 휩쓸리지 않고 가능한 선택 안에 스스로 책임을 지며 외로움 한 덩이를 이고 사는 삶의 진정성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도 나를 보며 자신과 어느 정도 비슷한 '자발적 추방자'의 모습을 발견한 듯했다.


수줍음이 있는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언제나 그녀였다. 그녀는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 대신 빠르게 친구가 되는 법을 택했다. 빠르게 친구가 되는 법은 자신의 삶 한 조각을 들려주는 것이다.

공부하러 들린 카페에서 우연처럼 만났고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다 마신 커피를 리필해가며 리는 핑퐁을 치듯, 하나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왜 이런 시골로 왔어요?

나야, 여기에 비어 있는 친정집이 있으니 아이들과 내밀한 시간도 보내고, 나도 충전하며 삶을 더 행복하게 꾸미려고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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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도 간단히 요약하지만 이번에 캐나다 영주권이 나왔는데, 잠시 들린 시댁에서 코로나 때문에 더 머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참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어서, 다음에 우리는 또 만나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캐나다에서 해야 할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해야 했고, 영어수업도 들어야 했으며, 나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해야 해서 만나서 수다 떨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카페에서 만나면 눈인사만 하고 커피를 한 잔 내려 (그 카페는 무인카페이므로) 자기 자리로 가서 공부를 한다. 그 카페는 주로 우리만 있었고, 간혹 사람들이 온다 해도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카페에서 서로의 공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커피를 한 번 더 리필해서 서로의 인생 한 조각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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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 카페는 월요일마다 휴무였는데, 그녀가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이 시골에서 좀 더 벗어나 구석구석 보석 같은 곳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월요일에 데이트를 신청했다. 무인카페 말고 분위기와 커피맛이 좋은 것을 알려주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싶었다.

그녀의 아이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한국에서 보낸 반년 동안의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적한 산사를 걸을 때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목소리에서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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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월요일마다 밥 친구 할까요?"


"매일 수업 듣고 공부하시는 것 안 하셔도 돼요?"


"주말에 힘들게 하죠, 뭐! 너무 좋은 데요. 왜 우리 남편은 여기서 자랐으면서 이런 곳을 몰랐을까요?"


"음, 여기서 사실 땐 이런 작은 반짝임들이 지나치게 초라하고 답답하게 느껴지셨을 테니까요. 비슷한 나무들과 시냇가, 절이잖아요."


이 동네에서 수재였던 그녀의 남편은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진 시골 부모님의 자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만나 결혼하고, 다시 한번 인생을 사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된다는 격려를 그녀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안정적인 직장과 명예를 뒤로하고 그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퇴사했다. 그리고 이민을 가 마흔 중반의 나이에 초밥집에서 시급을 받으며 롤을 만다고 했다. 시댁 부모님은 '너희가 행복하면 됐다'며 지지해주시지만 친정 부모님은 '캐나다 말고, 그냥 여기서 살자'라고 말씀하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서울의 좋은 집과 직장 대신 캐나다의 반 지하방을 선택한 것에 미련이 없다고 했다. 계속 이렇게 시급제로 살 것이 아니니까. 그녀는 여러모로 단단했다.


그녀를 보면 이 시가 늘 떠올랐다. 마샤 메데이로스의 시, '천천히 죽어 가는 사람'.


-우리, 서서히 죽는 죽음을 경계하자.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는 행위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필요로 함을 기억하면서.


내가 본 그녀는 단지 숨 쉬는 행위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학군에서 살 수 있는 삶과 유명 영어 인기강사, 대학 강사의 지위를 던지고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도 물리치고 캐나다로 떠난 이유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를 읽다 로렌스가 말했다는 이 구절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만 자유롭다. 그 자유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 뛰어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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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마다, 만나요.

카페가 쉬는 날

이렇게 잠깐 머무는 시골에서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나는 마흔의 나이에 새로 사귄 친구가 마치 초등학생의 사귐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동안 오랜 추억이 있단 이유로 유지하려고 애썼던 인연들이 떠올랐다. 한 때 친구였던 사이들을. 각기 살기 바빴지만 잘해주고 싶었고 잘해주면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누구누구의 '하녀', '시녀' 같은 하찮은 별명뿐이었던 시절을. 왜 호의는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지 못하고 상하관계로 곧잘 삐긋거리고 마는 것일까. 너무나 애써서 가끔은 속이 상하고 지우고 싶었던 인연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그들이 나오는 악몽을 꾸곤 했다. 그들 중 몇몇이 아직 가까이 연락하면 만날 수 있는 것도 알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커피 한 잔, 단 1분의 시간을 기울이는 것도 싫다. 내 마음이 다한 까닭이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의 인연이 끝나면 그땐 더 좋은 인연이 찾아올 때가 된거라고. 그 말이 오랜 애씀의 씁쓸한 마무리를 비교적 잘 치유해주었다.


오랜만에 '친구'라는 단어에 설레는 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