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긴급 돌봄이 안정되게 운영되던 어린이집과 다르게 더 챙겨줘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휴직을 고이고이 아껴두었었는데 올해 휴직 카드를 미리 뽑아 쓴 데는 순전히 '아날로그 라이프'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의 자유놀이의 폭이 줄어드니 더더욱 그런 맘이 강하게들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오롯이 '놀 권리'를, 아이들의 당연한 권한인 놀이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나에겐 어른이 되어 일에 치이거나 상실감을 느낄 때 두 눈을 감는 버릇이 있다. 그때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은 내가 어렸을 때 가족들이 자주 갔던 한적한 시골 냇가다.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반짝이고, 그다지 쾌적하지 않은 끈적이는 더운 날씨에도 냇가 위를 떠도는 바람 한 줌은 소중한 쾌적함을 잠깐 선사해주기도 했던 그 장면이떠오르면 다시 시작할 힘이 곧 생기곤 했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 얹은 듯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에는 아빠의 낡은 '포니 자동차'를 떠올렸다. 하필이면 나와 같은 반 반장 아빠한테서 중고로 산 자동차여서 좀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 자동차 덕에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 국도 지도' 책자를 보며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었다.
길을 잃어 불영계곡 어느 국도에서 길을 잃었을 때, 주유소를 막 짓고 있는 휴게소 주인의 따뜻한 배려로 어둠 속에서 빛바랜 붉은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천둥 같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잤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계곡 물소리가 그렇게 위협적이고 거칠다는 걸 처음 안 그때 잠이 오지 않고, 칠흑 같은 어둠에 몸서리 떨었지만 나는 그 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이었지만, 아빠가 자주 길을 잃어 헤매서 엄마랑 싸우는 빈도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을 싣고 떠났던 그 한 시절이 나의 숨 막히는 도시 생활에 숨 길을 터 주었다.
어른이 되어가며 '타인과의 교류'에 부딪히고, '능력 부족'이란 자괴감에 부딪히고, '세상과 연결고리'에 좌절할 때마다 유년 시절 한 바닥 실컷 놀았던 추억은 문제들을 부딪치며 다듬어갈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 어떤 부딪힘도 없이 커 갈 수 없음을 알기에, 여러 관계의 부딪힘 속에서 다듬어지며 성장해 갈 것임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 잠시 만나는 자연 말고 매일 만나는 '시골 라이프'를 선물로 주고 싶었다.
나도 '돈을 벌어야 하는 부담감', 아들들도 그 나이에 응당 해내야 하는 '유년기 투두 리스트'를 접고 한 시절을 아날로그로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아날로그 한 시절이 내게 그러했듯 아이들에게도 단단한 힘, 숨길이 되어줄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아날로그 라이프는 한가로울 것 같았는데 전혀 한가롭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니 여유로웠으나 아이들은 끊임없이 놀이거리를 찾아냈고 논다고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 밥상을 차리기 위해 텃밭 채소를 솎아 온다. 봄이라 씨 뿌렸던 채소들이 금방 자랐고 자기들이 키운 채소는 더더 잘 먹었다.
늦은 시간 퇴근해 아이들을 하원하고 집에 갈 때면 늘 찾았던 우리들의 스트레스 해소구였던 편의점이 이 동네에 없으니 불필요한 소비가 줄었다.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으니 아이들은 과자를 찾지 않았다.
도시에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던 아이들은 시골의 밤을 오롯이 즐기고는 스르륵 잠들었다.
아침이면 마당에서 아침을 꼭 먹고 싶어 했다. 밥을 먹으며 어제와는 어떻게 나무와 산들이 달라졌는지 나름 열심히 관찰한 바를 서로 다투어 말하기 바빴다.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이런 얼굴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런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보기 위해 장난감도 사주고 여행도 데려가 주고 했는데 그럼에도 그때뿐 자주 볼 수 없었다.
매일 만나는 자연 속 시골 라이프는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생기를 선사해주었다.
마당에서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의 별보기. 마당에 불 피워 가마솥에 닭과 약재를 넣고 푹 고아서 백숙 만들어 먹기. 학교 운동장에서 끊임없이 흙 놀이하며 놀기. 동네 개들 안부 살피며 인사하기.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장화 신고 마당에 나가 뛰어 놀기.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놀이 대장이었다. 흙으로 폭탄 제조해서 던지고 놀고, 돌다리를 수도 없이 건너다니기도 했다. 개울이 있으면 한정 없이 돌 던지며 시간을 보냈고, 나뭇가지로 고기를 잡아 올린다고 낚시 흉내 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70여 년 된 이 낡은 집이 좋다고 단 한 번도 도시의 집으로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에게 엉겨 붙을 겨를이 없었고, 텔레비전 켜달라고 조를 겨를 도 없었다. 티브이의 광고를 보지 않으니 뭘 사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뭇가지로 총을 만들어 왔고, 집안의 크고 작은 농기구들이 아이들의 놀잇감이었다. 그렇게 하루 밤이 금방 찾아오니 오롯이 하루를 즐기기 바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아날로그 시골 라이프를 통해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고 자기 놀이에도 결단력있는 모습을 보일때가 많아 자연이 아이를 키우고 있구나란 감탄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이렇게 아날로그 라이프를 즐기다 보니 나야말로 육아가 편해지고 일도 쉬니 폭식도 사라졌고, 단 음식만 광적으로 찾던 감정적 불편함도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선물하려던 시골 라이프는 사실 무엇보다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아이를 낳고 키우며 잠시 접어뒀던 꿈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기때문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사이 차를 타고 7킬로미터 떨어진 시내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신다. 그리고 집중해서 글을 쓰고 책도 읽는다. 무신론자지만 늘 궁금증이 있었던 신약 통독도 하고, 책에 밑줄도 그으며 차분차분 그 의미를 오롯이 즐기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내가 어느 정도 살이 쪘고 건강이 나빠졌는지도 비로소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건강한 먹거리와 마음 챙김으로 스트레스성 폭식이 사라졌다. 운동도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고 보낸 하루의 끝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한다.
작가가 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음에, 우리가 손쉽게 시골 라이프를 시도할 수 있었음에. 부모님과 동생들이 내 옆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음에. 우리 아이들이 무사히 하루를 즐길 수 있음에. 먼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오늘도 무사히 있음에. 내 통장이 부족하지 않은 돈이 즐길 여유를 주고 있음에. 이 시골에서도 좋은 인연들이 생기고 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