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집을 버리고 시골행

우리 집은 그냥 버리고 가요!

by 다다리딩

"여기 아파트가 더 좋은데, 어디로 가는 거야?"


"여기 우리 집은 그냥 버리고 상주로 가요. 거기는 곶감이라는 강아지도 있고 마당도 있어요."


이웃이 묻는 말에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 들뜸과 당당함이 묻어났다. 아들 둘은 엄마가 굳이 시골에서 살아야겠다고 말하니까 주말에만 가서 놀면 되지 왜 이사까지 가야 하냐고 대답했으면서 막상 짐을 싸면서 들떠 있었다.


다섯 살, 일곱 살 나이에도 일상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니까. 하지만 마흔을 넘긴 엄마는 안다.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에 도달하면 그곳의 삶 역시 일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여기가 아닌 거기를 선택한 이유를 이제는 딱 꼬집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출근해서 짬도 없이 일을 하면서 내년 봄은 시골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었다. 그리고 가을 즈음 시골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마침 다니고 싶은 유치원 바로 옆 전원주택단지가 전세로 나왔는데 그때까지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다짐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사이 집주인 마음이 바뀌었다. 전세는 절대로 놓지 않고 매매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전세든 월세든 나오면 꼭 연락해달라고 공인중개사에 부탁을 했지만 전화 한 통 받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엄마! 주말에만 시골 같은 데에서 놀면 되지. 꼭 이사까지 가야 해?"


일곱 살 아들이 가장 현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자연 속에서 놀 때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면서 어린 나이에 도시생활이 주는 편리함과 쾌적함을 이미 알아버린 말투다. 무모한 상상력만 펼치다 마흔이 된 엄마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코로나로 여행길마저 막혀버린 지금을 좀 더 실하게 보내고 싶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자기 길을 찾아 가느라 바쁘기 전에 여유롭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응석을 부린다.


"매일 같이 일출과 일몰을 보는 거 너무 좋잖아. 책에서만 봤던 거 말고 진짜 자연을 찾아가 보는 거야. 우리는 타고난 모험가잖아?"


일곱 살 첫째가 못 이기는 척, 대답해준다.


"알았어. 뭐 어쩔 수 없지. 엄마가 좋다면 그렇게 해. 나도 사실 매일 놀면 좋아. 신나게 놀지 뭐."


일하는 것도 즐겁고 도시 생활도 사랑하는 나의 일상


떠나기 전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들, 내가 감수해야 할 손해 가 자꾸만 떠올랐다. 결국 집은 못 구했고, 집의 짐들은 감당이 안 되고, 시골의 부모님 세컨드 하우스는 지어진 지 40년도 더 된 그야말로 불편함 끝판왕인 시골 농가이고. 가 휴직하면 남아 있는 육아시간도 좀 아깝고, 월급은 더 아깝고. 이 집은 팔아야 하는데, 시골로 갔다가 올라왔을 때 무섭게 오르는 수도권 집값에 살 곳을 못 구하는 건 아닌가, 아이들 학교 입학은 어쩔 것이며, 내가 아끼는 친구들과 동료들과의 힐링타임은...? 내 최애 동생과의 공동육아는? 일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아무것도 결정 못하고 있을 때에도 눈을 뜨면 시골의 새소리와 상쾌한 공기, 아이들의 생기도는 얼굴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떠나왔다.


우리에게 안락함을 줬던 많은 취향들을 버리고, 옷가지와 트렁크에 읽을 책만 담아서.


집을 못 구해서, 손바닥만 한 시골집에 짐을 못 넣어서, 경기도의 한 아파트를 비워두고 시골로 일 년 살이를 떠났다. 노동을 안 하는 만큼 적게 쓰고, 자연 속의 무한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그토록 많은 소유물 중에서 내 것을 챙겨보니 가방 두 개로 오케이였다. 더 이상은 아마 시골집에서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집을 나오면서 빗길을 헤쳐 시골로 향하면서도 계속 아쉬웠다. 길 건너면 있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슬리퍼 신고 스타필드 갈 수 있는 편의성이. 쾌적한 신축 아파트가 주는 편의성과 깔끔한 생활이. 그동안 정들었던 이웃들이. 계속 아쉬워서 지금 내가 잘하는 짓인가, 어쩌자는 건가 뒤돌아보았다.


그래도 뭐 결론은 없다.



누구나 살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우리는 늘 선택이란 이름 앞에 고민하고 서성인다. 다만 후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되돌아볼 수 있도록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오히려 떠나는 지금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시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이다. 운전하는 내내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가장 바보 같은 선택이라도 낙제는 없다. 두 번의 똑같은 하루는 없으니 그냥 하루하루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 '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들었다. 아파트에서 멀어질수록, 비가 거세게 내릴수록 후회도 옅어졌다.


20210104_151923.jpg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두 번은 없다', 쉼보르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