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을 하며 평일은 아이들이 유치원 간 사이의 황금시간을 활용해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나 운동, 친구 만나기를 했다면 주말은 응당 아이들에게 힘쓰기 작전에 돌입한다.
토요일이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집에서 푹 쉬며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느긋하게 보내고 싶은데 아이들은 놀 것이 너무 많다. 조용히 앉아 책 읽고 공부하기엔 마음 쓰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처마 밑으로 떨어져 땅이 패이는 것, 마당에 새들이 자꾸 오는 이유를 찾기 위해 땅을 파헤쳐보니 굼벵이나 애벌레가 나오는 것,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떠 와 자신 몫의 작물에게 물을 주는 것. 새소리, 물소리, 사람 소리, 아이들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거리를 찾았다. 주말이면 느긋하게 쉴 시간이 아니라 더 마음껏 몰입해서 놀 시간이 열린 것이다.
한 번은 그런 에너지가 겁나 버거워 산책 대신 드라이브 가자고, 마당에서 노는 대신 텔레비전 보자고 했더니 아들은 냉큼 이렇게 받아쳤다.
"엄마, 그렇게 지낼 것 같으면 왜 시골에 왔어? 그렇게 주말을 보내면 여기 올 이유가 없잖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도롱뇽 알 찾으러 다니고, 산책도 다니고, 같이 요리도 하고 실컷 놀기에 힘쓸 수밖에.
그러다 좀 지겨워지면 주말이지만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가 생긴 순간부터 주말의 여행은 좀 꺼림칙하다. 유명한 곳,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늘 불안함을 끌어안게 된다. 그리하여 주말에 떠나는 여행은 늘 우리만 아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별달리 볼 것이 없지만 내 피크닉 설렉션에 아이들은 환호한다. 사람은 반나절 놀아도 한 명도 지나가지 않는다. 멀리 농사짓는 농부만 보일 뿐이다. 아이들은 냇가에 돌을 던지거나, 산길을 걸으며 내가 보지 못한 미물들을 발견해낸다.
주말의 놀이에 힘쓰기가 끝날 무렵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온 감각이 열려있고 작은 것들도 귀히 볼 줄 아는 여유와 마음을 지녔을 때,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느라 배울 수많은 지식에 치여 가까이할 기회가 영영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아이들은 자연을 벗 삼아 자라면서 더없이 건강해져 갔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도 더없이 너그러워졌다.
문득 잊었던 미혼 시절의 내 다짐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낳으면 학교 가기 전에 마음껏 시간을 보내야지. 틈나는대로 여행을 떠나야지.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립하고 어른이 되어 독립하도록 내 소중한 삶의 한 조각들을 모두 공유해주어야지. 그들이 힘들 때 보석처럼 꺼내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도록.'
잊지 않고 그 다짐들을 실천했구나 싶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생각한대로의 아들 7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일요일 저녁,
비가 오자 아들이 나가 얼른 마당의 수선화 위로 우산을 씌웠다. 처마 끝 유독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자리에 위치한 수선화였다.
"엄마, 수선화가 비 맞으면 아플까봐 내가 우산 씌워주고 왔어."
정말 완벽했다.
건강하고 다정한 아이를 키우는 나의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