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없는 시골에서 행복합니다.

by 다다리딩


어떻게 지내냐고 누군가 안부를 묻는다면, 도시의 집을 비워두고 시작한 시골 생활에 대해 내가 느꼈던 생각들로 둘러 둘러 대답해보려고 한다.



네가 있는 곳 너무 좋아 보여.
초대해주라. 연가 내고 애들이랑 갈게.


sns에 시골 생활의 기록을 남기면 도시 생활자로 평생을 산 지인들은 종종 자신들의 생각대로 낭만적인 시골 라이프를 떠올린다. 이럴땐 일부러 바쁜 시간을 내서 이 곳으로 온 친구들이 실망하지 않을까란 조바심이 반가움보다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다 할 코스를 짤 만큼 볼만한 것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자로서 세계 아름다운 곳을 다녀보고 이슈가 되는 것이면 강박처럼 다녔던 전적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겐 이 곳이 너무 초라해 보일 것임이 명명백백하므로. 왜냐하면 나도 그녀와 결이 비슷했으니까.


내가 시골생활을 즐기는 방법은 대략 이러하다.


딱히 유명하지 않은 곳에, 어쩌면 단 한 번도 인스타그램이나 여느 sns에 사진이 올려진 적 없는 밋밋한 나무 아래서 오후 4시의 햇빛을 오롯이 감상하는 것.



쇠락해가는 지방 소도시의 모습을 애잔한 마음으로 산책하는 것. 그 애잔함을 마음 한편에 짊어지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운동하러 나가다 나조차도 이름을 모르는 낯익은 동네 논둑에 뜬금없이 피어난 꽃나무 한 그루의 고고하고 이질적인 아름다움에 마구 감탄을 하는 것.



축사 앞에 피어난 유채꽃이 축사의 냄새도 잊게 만들 만큼 자신의 자리를 빛내는 모습에 넋을 잃고 사진을 찍게 되는 것. 그리고 참지 못하고 소고기를 사 먹으러 정육점으로 가게 되는 일상을 어떻게 일정으로 짤수 있을까.


너무나 바쁜 일상에서 특별히 시간을 내서 특별한 시골의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정말 특별할 게 없는 시골이야. 네가 온다면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풍경을 공유하려고 아이스커피를 타서 밋밋한 장소(너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골의 한가운데)에서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바라보며 '아, 좋다'라는 감탄사만 연발하며 지내도 좋다면 언제든지 와도 좋아. 어쩌면 너무나 바쁜 너에게 이런 삶도 필요할 수 있으니까."


망설이던 지인은 선뜻 오지 못했다. 굳이 이런 평범한 시간과 풍경을 공유하러 오지 않아도 널린 풍경이니까.


시골을 어슬렁 거리며 생각한다. 내가 이런 밋밋하고 나른한 풍경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건 도시에서의 삶을 살다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정말이지 이 곳을 떠나기 전 나는 이런 변화라곤, 신박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곳 풍경을 지겨워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이 곳의 구태의연한 모습에 대해 지겹다 못해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돌아온 고향의 풍경은 매 순간 귀했다. 이런 풍경을 귀히 여길 수 있는 안목과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동안 내가 무척이나 열심히, 제대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만, 어른 아니네.
이 꽃 이름도 모르고 나무 이름도 잘 모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만 어른이네. 내가 물으면 꽃 이름을 얼른 말해주거든.

아들은 하원 길에 무성해진 둑길에 무더기로 무작위로 순서 없이 피어나는 들꽃들을 귀히 여겼다. 귀하게 여기는 만큼 꼭 이름을 물었는데, 나는 한 번도 그 꽃 이름을 궁금해해보지 않고 살았음을 새삼 느꼈다. 아들의 핀잔을 받고서야 어쩌면 우리 엄마 아빠가 무던히도 알려주었을 텐데 건성으로 듣고 넘겼음을 자각했다.



길 위에 핀 봄꽃들을 굳이 알아야 할 만큼 나는 꽃들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살았다. 꽃들이 내 인생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으므로. 꽃과 나무의 이름을 몰라도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수많은 생활규칙과 지식들이 넘쳐났으므로. 아무도 나에게 꽃 이름을 모른다고 무시하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나는 꽃과 나무 이름을 외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고 나는 아들이 귀히 여기는 식물들의 이름을 찾아보게 되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된다. 먼 미래에 이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아들과 이렇게 매일의 산책을 하며 풀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시간은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엄마, 친구들이 나 되게 부러워해.
엄마 일 안 하고 맨날 나랑 놀아준다고.
엄마 계속 돈 안 벌어도 돼. 내가 비싼 거 안 사고 심부름해서 돈 벌어올게.

겨우 월급 없이 산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남편은 내 마음이 쪼달리고 내가 쓸데없이 돈 아낀다고 궁상떨까 봐 내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통장에 입금해준다. 내 비자금 조금이랑 합쳐서 금세 통장엔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매달 찰랑찰랑 담겨있다.



지쳐서, 아이들과 행복한 일 년을 보내고 싶어서, 부모님도 챙기고, 글도 쓰고 싶어서 휴직을 한다고 했지만 나는 남이 준 돈은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성격을 가졌다. 일찍 돈을 벌면서 강박처럼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 쓰는데 마음이 편했다. 남편이 얼마를 벌어오든, 그것은 남편의 돈이란 확고한 선이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나 고생하는 남편의 돈을 허투루 쓰기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즘 나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 쓰는 재미에 그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돈으로 아이들과 매일매일 여행을 다니는 기분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나면 퇴근 후 아이들에게 갈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글을 쓸 시간은 더 부족했다. 육아가 힘들어서 화가 났다기보다, 일이 힘들어서 자꾸 눈물이 났다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쓸 수 없음에 병이 났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복직할 일이지만 든든한 지원과 함께 시간을 선물 받았다. 그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는데 집중하고 있다. 끊임없이 삶의 기쁨을 느끼고 감사해하며 매 순간 감탄하며 지내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참으로 감탄할 일도 많았고,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하니 사심 없이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채운 에너지로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과도 마찬가지. 삶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또 빠르게 나이 들고 잊힐 것이다. 선대의 고인들이 그러했듯. 내가 유명한 사람은 못될지언정 나를 알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다정한 추억을 함께 하고 싶다.


참으로 잘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