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May 21. 2021

다정하고 즐거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동네에 작은 빵집에서 구수한 빵을 사서 먹고, 카페에 가서 글을 써야지'


골프가 끝나면 이제 아이들이 올 시간은 3시간 남짓 남는다. 밥 먹는 시간을 아끼고 한적한 카페에 가서 집중해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글도 쓰고 싶어 마음이 달아올랐다.



금방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될 것이고,

아이들이 오면 밥 차려 먹이고 씻기고 책 좀 같이 보고 하면 어마어마한 피곤과 함께 밤이 찾아올 것이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하기엔 아이들이 아직 어리므로, 낮의 시간에 엄청 바삐 움직여야 나의 성장 욕구가 만족될 것이므로.


 뭔가 에너지가 많은 40대의 두 아들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분주하다.

아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을 하원하러 가는 휴직중인  일상


 해아 할 일이 많아서 바쁜 마음으로 찾은 빵가게 입구에서 허리가 90도로 굽다시피 한 할머니가 스윽 나보다 한 발 앞서 문을 여셨다. 저절로 손이 앞으로 모아지고 공손해지는 자태셨다. 종거렸던 마음도 저절로 가라앉았다.





할머니는 손에 쥔 검은 봉지를 계산대에 던지다시피 하시며 "뭐 할라고 빵을 봉지봉지 싸 넣어? 나는 봉지 아까우니께 한꺼번에 검은 봉지에 넣어줘."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셨다.


"그럼요. 요즘 비닐봉지가 엄청난 환경 문제가 된대요. 할머니 멋지시네요."


할머니는 다정한 빵가게 주인에게 냅다 이렇게 소리치신다. "전에 이 빵 사서 묵었는데 맛이 지랄~ 뭔 빵을 이렇게 만든대? 속에 씹을 거 하나도 없고 쓰고."


할머니의 독설을 오롯이 받고 있는 것은 '쑥 빵'이었다.

제철 쑥을 깨끗이 씻어내, 쑥 함량을 높여 만든 유기농 식빵. 조금 늦게 빵을 사러 온 날에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제 로컬 재료를 아낌없이  쓴 인기 제품이자 봄 시즌 상품 '쑥 식빵'


나는 할머니 씀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쑥 식빵은 맛이 없었다. 빵이 맛있어야지 건강하다니, 정체성을 잃은 빵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도 나랑 같은 생각이셨다.


할머니는 옆에 선 나를 향해

 "넌 이거 먹어라. 맛이 아주 지랄이다."

라고 외치셨다.


참았던 웃음이 터지며,  대꾸했다.

"제 스타일도 아니에요. 쑥 식빵."


할머니는 빵을 4개나 고르셨다. 다정한 빵집 아저씨 추천으로 블루베리 잼과 밤이 들어간 식빵, 구덕한 치즈가 듬뿍 들어간 부드운 빵 위로 달콤한 소브르가 올라간 빵, 설탕 대신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이 들어간 빵, 이렇게 많이.


"할머니, 빵을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드세요?"


"뭐 심심하니까 빵만 먹지.

굴 같은 집에서 앉아서 심심하니까 자꾸 먹는 재미밖에 없지. 돌아 댕기 지를 못 허니까 심심해 죽겠어.  다 못 먹으면 놔두고 심심하고 재미없을 때마다 꺼내 먹어야지."



유쾌하고 개구졌던 할머니의 대답에 갑자기 마음이 저렸다. 재미없는 일상에 유기농 씁쓸한 쑥 식빵은 정말이지 할머니 마음에 차지 않으셨을 것이다. 입안을 잠시라도 즐겁게 하는 빵만이 할머니 일상의 구원이었을지도.




 엄마는 로나가 지속되자 시골에서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지겨워하시는 듯했다. 그 어떤 말에도 시큰둥했다. 카페에 가자는 말에도, 드라이브를 가자는 말에도, 쇼핑을 하자는 말에도, 뭘 배우자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으셨다.


"이 나이에 뭐."

"뭐, 보고 그러던지."

"이제 해봤자지 뭐."

"글쎄. 뭐 그닥. 됐어."


삶에 흥미를 잃은 사람처럼 60대를 지겨워하기 시작하셨다. 60-70대에 유튜브로서, 작가로서 삶을 시작한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하며 엄마에게 동기유발을 하려고 했지만 엄마의 눈동자는 공허하고 깊었다. 깊은 우울이 찾아올까 덜컥 두려워졌다.


싫다던 엄마 손을 이끌고 주말에 한 번 미술 수업을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 스타일이 아니라며 나 혼자 하라고 했는데,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으면 나와 같이 그냥 시간을 좀  보내달라고 돈 냈으니 그냥 나가기만 해 보자며 엄마와 같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갤러리 카페에서 지역 작가님의 작품을 보며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그림으로 나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첫 수업에서는 엄마 스타일이 아니라며 투덜 대고,

 째 수업에서는 작게 그리는 그림이 어렵다고 토로하고,

세 번째 수업에서는 선생님께 색을 내는 법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

네 번째 수업이 끝나고는 엄만 안 되는 부분을 집에서 반복해서 연습하셨다.


그리고는 다음 수업도 신청하라고 하셨다. 재밌다고.


 

엄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밝아지셨다. 시간이 잘 간다며 엄마의 마당을 그리기도 하셨고 나와 카페에 가면 카페의 풍경을 스케치하기도 하셨다.


나는 사실 그림이 크게 재밌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웃으니까 좋았고 덩달아 재밌어졌다. 엄마가 그림을 그릴 때 '이 나이에 해봤자 내가 뭘.' 이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미국이 사랑하는 화가 '모지스 할머니'가 떠올랐다. 구도도 맞지 않고 원근법도 조금 이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그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작가가 누구일지 몹시도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 작가가 노화로 더 이상 일도, 자수도 할 수 없었던 75세에 그림을 시작한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림이 더욱더 좋아졌다.


  어쩌면 엄마도, 나도 모지스 할머니처럼 남은 생을 살면서 즐겁고 좋아하는 뭔가를 하나 간직한 채 텔레비전만 보며 지겨운 하루를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도 그만두고, 찾아올 이도 없어지는 노년이 다가올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심연에 빠지지 않고 우울을 헤매지 않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자격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국가적인 해결을 기대하기엔 생이 어쩌면 짧을지도 모른다. 국가가 노년들의 삶이 행복하게 만들기엔 수많은 탁상공론이 활개 칠 테니 나 스스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 옹골차게 하루를 보낼 즐거운 일들을 지금부터 심어놔야겠다.


나이가 들어서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괴팍하고 질투심 많은 어른이 되기보다, 즐겁고 다정해서 이웃에게도 즐거움을 전할 수 있는 그런 할니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걸 부지런히 탐구해놔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 미숙한 나와, 너, 우리의 사랑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