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입니까?

- 내 인생의 모토는 언제나 '사랑'

by 다다리딩

사랑이 찾아왔다.

제대로 된 연애는 한 번도 못해본, 연애는 책으로 배운 여자. 그래서 남자 앞에서만 서면 꼿꼿한 선비같은 김 장군이 되고 말았던 나에게 '사랑'이 드.디.어. 왔다. 그런데 말이다 30년 만에 찾아온 '사랑'이란 놈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한국형 드라마처럼 운명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게 그냥그냥, 고만고만하게 스며 들었다.

'에이 잘생겼다고 하더니 평범하네'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후배였던 그와 헤어지던 그 때 .

우연히 식사하다 만나 합석하다 다들 기분 좋게 이야기하고 늦게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던 첫 만남. 나를 설레게 했던건 무엇이었을까.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나는 다시 한 번 뒤돌아봤고.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고. 그리고 그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두 눈이 감기게 웃고 있었는데. 모든게 소소했던 일상 그대로 고만고만한 하루였었는데 말이다. 그 모습이 어둠으로 어둡게어둡게 희미해지더니 내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스며들어 나의 연약한 심장은 아침이 되도록 뛰었다.


'꼭, 다시 한번 그를 만나고 싶다.'



나는 친구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고 졸랐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는 친구에게 그의 연락처를 내어 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구지가를 인용해 쪽지를 보내고 점심 시간마다 찾아가 어여 연락을 하라고 괴롭혔다. 결국 친구는 그에게 연락해 소개팅을 해주고 싶다고 했고 그는 그렇다면 그 때 만났던 키가 큰 누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결혼 전까지 그가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와 친구의 치밀한 물밑 작업이 있었다.



귀에 종소리가 들린다거나, 그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빛났다거나 하는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통속적인 징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만날 수록,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없었고, 내 앞에서 더 긴장했고, 멋있는 남자들과 다르게 자꾸 소극적이었다. 먼저 전화도 없었고 먼저 손도 잡지 않았고, 먼저 데이트 코스를 정하지도 않았다.


그를 만날 수록 그가 결혼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됐다는 것을 알았고, 그를 만날 수록 그와 결혼을 결심할 수 있을까 싶을 크고 작은 비밀들을 알게 되었다. 그 비밀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를 묻기도 전에 나는 그니까 괜찮다, 그라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 앞에서 나는 팔자에도 없는 적극적인 여자가 되었고,

자꾸 뒷걸음치는 남자 앞에서 현실의 그런 문제들은 이겨 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캔디형 여자가 되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게 아니라 남자가 목 매듯 밀어부쳐 성사되는 결혼이었지만

내 마음은 마구잡이로 이성을 밀쳐내고 멋대로 행동하더니, 결국 이성도 굴복시키고 말았다.



우리는 세 번을 헤어졌고, 세 번을 다시 만났다.


세 번째 헤어졌을 때 내가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데 그의 어머니는 '더 좋은 곳에 시집갈 수 있을 아이인데 왜 이렇게 없는 집에 와서 고생하려 하느냐'며 반대하셨다. 아니, 보통 좀 있는 집에서 반대하지 않나 싶었던 나는 나중에서야 사실은 집안의 기둥이었던, 가난한 집림을 일궈주는 아들을 보내기 싫어하셨던 어머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사실을 안 우리집에서도 모두가 크게 실망하며 더 자존심 상해 했던 건 사실이다. ' 어느 것 하나 너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반대라니. 우리도 싫다.' 식구들이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을 때 나의 마음도 접어야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떠나며 내 나이가 이미 서른 중반이지만, 고작 삼십대이기 때문에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마음을 다 잡으며 선 거리마다 우리의 추억을 내려 놓았다. 오슬로의 작은 성당에서 진짜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하늘이 나를 사랑해 더 나은 삶을 주시려 그러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촛불 하나를 밝히고 있었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말 안 되겠어요. 내가 달라질게요.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요."

..........






언젠가 산책을 하던 그와 내가 벗꽃이 떨어지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나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사랑. 언제나 나는 사랑하고 싶었어. 모자란 내 자신도 사랑하고, 주어진 삶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더 멋진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었어. 내가 머물렀던 자리, 만났던 사람들도 다 사랑하고 싶어서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한 번 뿐인 삶,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려 노력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사는 삶. 그게 내 최종 목표였어. 너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내심 그와 결혼하며 '결혼 잘했다'라는 말 듣길 기대했지만 막상 결혼을 할 때 '그가 집 해 왔어? 차는 뭐야? 연봉은?'이라는 걸 묻고는 어색한 듯 '축하해'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사실 실망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싶었지만 그 축하가 '질시와 부러움'에 국한된다면 가뿐히 무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결혼 후에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을만큼 인내심있게 나를 기다려주며..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남편이 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자 일상이 더 정갈해지고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만나기 이전보다 더 넉넉하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그득그득 차는 삶을 만난 것이다.



사람들은 참 쉽게 '이제 결혼해야지?', 결혼하면 '언제 아기 가져?' , 아기 낳고 나면, '둘째는? '....

끝도 없이 비슷한 질문들을 인사치레처럼 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서른이 넘으면서 자기 앞가림도 겨우 하는 사람들도 심각한 얼굴로 나를 보며 '좋은 남자 다 결혼하고 없다, 요즘 괜찮은 남자들은 젊은 여자들이 다 채가. 서둘러. 노력해야지.'라고 조언했었다. 사실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고 산다는 건 쉽지 않지만 소소한 하루를 살아가는 지금, 순간의 지나가는 말과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면의 진심을 읽어 내지 못했다면 내가 원했던 사랑하며 사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사랑 가득한 나의 조그만 집과 소소한 행복. 이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