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되짚어도, 나는...

오래되고 잊혀졌던 편지

by 다다리딩

심플한 삶.


깔끔하게 내일의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 오늘 서랍정리를 했다.

정리하다 십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는, 그렇다고 한 번도 제대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상자를 찾아냈다. 네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주섬주섬 챙겨 구석에 넣어두었던 상자.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읽어야지 했던 제자들의 편지.



추억 상자에 담긴 기억의 단편


스승의 날이면 아이들은 고맙다는 말대신 축하한다는 말을 건내기 시작했다. 누굴위한, 무엇을 위한 축하인지도 아리송하고 부담스럽기 이를 데 없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돈 걷지 말고, 선물도 사지 말라고 부탁하고 부탁했다. 진짜 마음을 표시하고 싶으면 손편지를 달라고. 다른 선물은 잊혀지고 부담스럽지만 너희들이 손으로 꾸욱꾸욱 눌러쓴 편지들은 언제나 감동이니 꼭 받고 싶은 선물이라고. 단, 쓰고싶고 얘기나누고 싶은 아이만 진심으로 써주면 고맙겠다고.


"나만 아무것도 못받고 파티도 안해주면 초라하지않냐고? 에이 괜찮아, 너희들 편지 받잖아. 그럼 내가 젤 편지 많이 받은 샘일걸? 편지가 얼마나 마음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선물인데."

"편지 잘 못 쓴다고? 에이, 마음을 전하는 건데 잘하고 못하고가 어딨어. 읽기 능력자인 샘이 너희들 잘 표현하지 못한 숨은 맘 요리조리 잘 살펴 읽어주마."



그래서 해마다 우리 반은 그날은 더 조용하고 아이들은 더 이쁜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했었다. 학생과 선생님의 본모습 그대로. 그리고 때때로 눈 마주치면 그들은 수줍게 웃어주곤 바로 쑥스러운 표정으로 책을 보곤 했었다.

그리고 내 책상에는 손 편지들이 차곡차곡 기분 좋게 쌓여갔고, 그 안에 어떤 내용들이 있을지 궁금해 하며 편지 봉투를 조심스레 열며 두근두근거렸었다.

그렇게 편지는 쌓여갔고, 나는 해마다 고이 상자에 그것들을 담아 보관했었다. 그리고 가끔 사람에 지쳐 도망가고 싶을 때, 자신감이 사라져 내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느껴져 칭찬이 필요할 때, 외롭고 쓸쓸한 일요일 새벽에 그 조각들을 꺼내 읽었다. 아마도 아주 나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나면 나는 이 편지들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할 것 같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상자들을 학교별, 년도별로 네이밍해 보관했었다.

그러나 절대 한 번도 열지 않은 상자가 있다. 나의 아픈 첫 편지 상자. 그 어떤 네이밍도 붙어 있지 않아 버릴건가 싶어 아주 우연히 열자, 그 상자에 담긴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에 과거 그 때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잊고 싶었었는데...나는.


손이 느렸던 그 아이는 아주 바른 글씨로 두어 줄 썼지만 진짜 한자 한자 허투루 쓰지 않았을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그런 아이었다. 하나를 하는데도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했던 아이. 그래서 때론 답답했지만 놀랄만큼 정직했던 아이.

나를 매일 잠 못들게 만들었던 장난꾸러기 삼인방도 이 날이면 성실한 눈치빠른 모범생이었었지....

상자를 열자마자, 글씨를 보자마자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잊고 싶었던 아이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정말 다 잊고 싶었는데.

아니다.아니다.

아이들을 잊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 부족하고 어려, 나무라고 싶었던 '나'를 무진장 시시때때로 지우고 싶었던 것이었다.


밤새 게임하다 와 무기력하게 앉아 자기 바빴던 아이, 오토바이 타고 질주하다 사고나 입원했던 아이, 새벽에 술 마시고 싸우다 경찰서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연락오게 했던 아이, 뚱뚱한 아이를 못생겼다고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교칙을 피해가며 괴롭혔던 아이.

교실에서 담배피다 걸려 학부모 소환했던 날, 복도에 온갖 욕들을 도배했던 아이, 수업 시간 음담패설로 날 시험했던 아이, 강도죄로 잡혀 학교에 못 나오던 아이, 수업시 간에 핸드폰 했다고 지적하자 욕하고 뛰쳐나가 장기결석 했던 아이...

그 아이들과 상담하고 나면 난 언제나 기진맥진한 상태로 울면서 퇴근했었다. 어떤 날은 그 아이의 인생이 너무 가여워서, 어떤 날은 감당하지 못할 충격적인 사생활의 비밀을 들어서. 하지만 대부분은 나를 향한 아이들의 날선 칼에 찔려 상쳐받은 내가 불쌍해서였었다. 왜 애들은 그렇게 심한 말로 나를 좌절하게 만들까. 애쓰고 애썼는데, 다독이고 격려했는데 나는 아이들 주위를 맴돌고만 있는 힘빠지는 기분. 그 때의 난 선생님이 되고도 학교가기가 너무 두려웠던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 반에 열 명이 보통 자퇴한다는 그 곳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다른 반과 똑같이 9명의 자퇴생이 생기던 날 날아갔다.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들이키고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내 울고는 내신을 내 다른 학교로 도망가듯 가버렸다.

아이들에게서 한 두 번 편지와 문자가 오다말았고 그렇게 흐지부지 세월따라 잊혀졌다. 나는 그 때 무력했던 나를 너무나 지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 나은 교사가 되고 싶어 애쓰며 살았다.


그 중 한 아이의 편지가 그 상자에서 나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 내 기억 속의 그 아이는 매일 날 울게 만들었던 육두문자의 선두주자이자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던 만만치 않았던 아이였다. 나에게 융통성을 좀 가지고 살라고 말했던 그 아이가 내게 그냥 편지를 썼었던 적이 있었네.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게 했던 그 아이는 삐뚤삐뚤 멋부리지 않은 순수한 글씨로, 학교 오는 게 좋아졌다고. 쑥스럽게도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말을 썼었다. 내 뒷통수에 '시발년'을 날리던, 그 아이가. 길가다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그 아이가.


나는 왜 아이들 편지에 말 안들어 죄송하다라는 말을 적게 행동했을까?

그럴 수 있는 나이었는데. 당연히 그러는 게 애들인데.

나는 왜 아이들이 편지에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하단 말을 쓰게끔 실망한 표정을 쉽게 드러냈을까.

실수를 통해 성장할 나이였는데.

그때의 나는 왜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아이들이 적게끔 힘든 얼굴로 일했을까?

그 때의 나는 왜 상처받았다고 도망치기 바빴을까?

왜 떠나간 아이들과 남은 아이들에게 더 깊은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아프기만 했던 그 해의 기억 속에 분명 많이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도 있었을 텐데 어쩌다 묻히고 나는 그 시절을 외면하고 살아왔을까?

왜 요동치는 그들의 마음을 가만가만 들어주고 토닥토닥 헤아려만 주지 못했을까? 왜 사랑이 필요했을 그들에게 가르침만 주려고 설쳐댔을까?

왜 나는, 난 좀 어른이니 더 상처받아도 돼. 그들은 약하니 그렇게 상처내는 법밖에 몰라서 일거야.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을테니라고 져주지 못했을까.

좀 더 넓은 테두리로 그들을 보듬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왜 그리도 사랑을 아껴두었던 것일까? 넘치게 주어도 되었을 것을 왜그리도 인색한 어른이었을까?



아마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그 때의 아이들에게 내가 사랑이 부족해 미안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항상 사랑이 넘쳐 내가 더 많이 사랑해 후회한 적보다 상처 받을까 두려워 마음을 아꼈던 때가 절절이 후회되기 마련인듯 하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새로 적힐듯하다.

고마워, 부족했던 나 받아줘서.

어디서든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길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