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Jul 30. 2016

칭다오에서 맞이 하는 두번 째 아침과 밤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 그의 속도에 발 맞추는 일

여행을 오면 잠이 없어지는 나는 무조건, 새벽 텅빈 거리를 걸으며 그 곳 공기를 기억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도 후각으로 가끔, 무료한 날, 추억이 필요한 날, 잠깐 머물렀던 새벽 공기를 꺼내어 기억하고 되새겨 보기위해.


아들과 남편은 늘어지게 계속 자고 있었으므로 과감히, 재빠르게 숙소를 나와 무조건 걸었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무조건. 십여 분을 걷다보니 공원으로 보이는 곳이 나왔고, 나무 사이로 흔히 사진으로 봐왔던 빨간 조형물이 보였다. 그렇게 5.4광장에 도착.

이른 아침부터 광장은 주말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붐볐고 공원 구석에선 운동하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악기 연주하는 사람,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부지런히 준비한 일과를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늘 밑 의자에서 아직은 발성히 상당히 미숙한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며 아들이 지금 일어나 날 찾지 않을까 자꾸 걱정이 됐지만 그냥 가만히 계속 앉아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이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급히 마시며 숙소로 돌아오니 아들은 계속 자고 있었다. 조금 더 여유를 부려볼 배짱이 아직은 부족한 초보  엄마인가보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데 아이를 기다린다는 것.


 조바심이 나지만  새로운 환경에 투정  부리지 않는 대견한 아이를 위해 감내해야할 사항이다.    그렇게 한 낮이 되서야 아이는 일어났고 인근 쇼핑몰에서 한참 걸음마 연습을 하느라 계획했던 일정은 또 한번 접어야했다. 걸음마 하느라 신이 난 아들을 보며 아이를 배려하지 않은 애당초 계획은 무리수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곳까지 와서 굳이 이럴 필요 있느냐, 아이 안고 가면될 것을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너무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인사하는 아기 앞에서 또 한번 '아무렴 어때, 다음에 또 오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둥글궁글해 졌다. 꺄르륵 웃음 소리가 더 믹스몰에 울려퍼졌다.



 예전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먹고 치우지 않고 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본적이 있었다. 한가득 쌓여있는 쟁반과 그릇을 보며 심하다 싶었는데, 여기서 보니 푸드코트에는 빈그릇을 치워주는 사람이 있어 자리가 비면 말끔히 청소해주는 것이었다. 나만의 환경과 문화에서 판단하는 잣대. 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합리적이고 옳다고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마주할 때 머리가 띵하곤  한다. 그 벽을 깨부수며 나는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여기서만 올 수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커피로 추억을 하나 더 쌓기로 했다. 북카페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옆서를 써서 벽에 붙이거나 우표를 붙여 보내고자 하는 날짜가 적힌 칸에 넣어두었다.



아들은 이 카페의 조용한 적막감을 향해 혀를 굴려 "까르르륵, 또르르륵" 소리를 냈다. 일제히 사람들의 표정에 웃음이 올랐다 사라졌고 우리는 아기를 조용히 시키느라 진땀이 났다. 남편은 카페를 나오며 손에 작은 기념품을 주었다.


그리고 행복을 주겠다는 결혼 전 그의 다짐은 엽서에서도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미 충분해, 네가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가 나에게 행복을 줘.' 라고.




 관광을 제대로 못한 우리는 돈이 많이 남아 근처 양광백화점에 가보기로 했다. 택시는 너무 가까운 거리라 승차를 거부했고 우리는 지도를 보며 걷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우리의 지도를 보더니 친절히 버스정류장까지 안내해주고 같이 타고 내릴 때를 알려주었다. 작은 친절함이 이 곳을 더 친숙하고 좋은 곳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백화점 입구에서 마침 어린 아이들 패션쇼 같은 행사가 있었다. 짙은 화장, 화려한 옷차림 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아이들의 손짓, 포즈와 눈빛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교태스러워였다. 긴장된 채 무대 뒷편에서 종종거리던 꼬마가 무대 위에 오르자 너무나 훌륭하고 진짜 모델같은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어른 흉내였다. 무대를 내려왔을 때 그녀는 뭐가 못마땅했는지 가족들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백화점 입구에는 트로피와 선물이 높다랗게 쌓여있었다.




 "어휴, 얼른 나가지. 혼이 쏙 빠지겠어."

이상한 나라에서 쏙 빠져나오자 평범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서둘러 미식거리로 이동을 해, 추천 음식인 조개볶음과 새우땅콩 볶음, 마튀김을 시키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 남자애들이 히죽거리며 웃길래 엿봤더니 다른 테이블에 앉은 예쁜 여자애들 몰카찍고 있더이다. 들뜬 청춘이여, 하하.

 그리고 그 옆의 또다른 청춘.

아직 여드름이 듬성듬성 있는 애띤 얼굴의  웨이터는 아주 재빠르고 눈치 있게 테이블을 오가며 일한다. 외국인 손님에겐 핸드폰으로 중국어 번역기를 사용해 음식 설명도 해주면서.

  







 언제부터인가 남들의 이야기와, 사정, 사생활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해결하고 조언해주기에 나는 너무 여유가 없어졌었다. 아마도 직업 때문일 것이다. 여러 사람에게 마음 써야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쓰고 그들 사이에 생긴 일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하루종일 사람들의 일에 부대끼고 나면 사람들 말 소리가 너무 싫어지는 일이 자주 생겼었다. 타인의 일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아 여러번 울기도 했었다.


 야밤의 우쓰광장엔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색색 분필로 바닥에 써 내려가는 사람, 손을 잃은 사람이 쓴 붓글씨, 휠체어 탄 사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사실 제일 놀라운 것은 그들의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수많은 군중들이었다. 한참을 심각하 얼굴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 내가 잊고 있던 여유와 동정심.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허리가 아파 벤치에 누워 멀리서 무등을 타고 있는 아들과 남편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내 눈에 빛나는 그들을 보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벤치 옆에 정차했다. 오토바이에 맨 수레엔 쓰레기 봉지가 쌓여 있었고 엄마가 잔디밭 쓰레기를 수거하러 간 사이, 빛나는  아이의 눈동자가 나와 부딪혔다. 아이를 향해 미소를 보내자 그는 쑥스러운듯 하늘을 바라봤다. 나도 하늘을 올러다봤다. 별도 구름도 없는 까만 어둠을 응시하자, 뭔가 보인 듯도 했다.





 그리고 아침,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왔다. 관광을 많이 못해 여전히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있으니 다시 이 곳에 와야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아들은 그새 중국 아이와 어울려 부채를 주고 받으며 뛰어 다녔다.


역시 돌쟁이 아들과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마음을 비우고 널널해진다면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내게 초등학교 이전 여행은 기억도 잘 못한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삶에서 기억되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그냥 행복한 느낌, 좋았던 기분, 이런 것들로 남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아이 때문에 못하고 있다'란 육아에서 벗어나 내 숨구멍을 뚫어 놓으니 산 것 같다. 그렇기에  여행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편함에도 불구하고 그 편함보다 불편한 여행을 택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칭다오, 그날의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