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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ul 11. 2016

칭다오,  그날의 그림

13개월 아들과 떠난 두번 째 해외여행

방금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반나절 관광하고 나니 벌써 어제의 일이 됐다. 피곤했는지 택시 안에서 심하게 잠투정을 하던 아들이 침대에서 금방 잠들자 나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사람처럼 허둥댄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자유 앞에서 짐을 다시 정리했다가, 내일 입을 옷을 꺼내봤다가. 그러다 관두고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 욕조에 물을 받는다.


아, 얼마만에 몸을 담그는지.

따뜻함이 그동안 여유없었던, 특히나 스스로에게 더 보듬어주지 못했던 나를 위로한다.  언제나 허둥대며 아이 씻기고 입히고 그의 불편함을 살피느라 나를 잠시 접어두고 살았다.


 아로마 오일을 뜨거운 물에 떨어트리고 잠시 몸을 담그니.. 떠오르는 몇 가지   

잔상들.


그것들이 멤돌아 잠이 오지 않는다.





하나. 칭다오의 맥주박물관의 keep going.


순전히 이곳을 간 것은 남편을 위함이었다. 퇴근 길 어떻게서든 일찍 집에 오려는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술 약속도 마다하고 냉장고에서 칭다오 맥주를 반주 삼아 직장 얘기를 하는 그에게 진짜 맛있는 맥주 맛을 선물하고 싶어서.


방금 생산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남편 . 그리고 아직 모유수유 중이라 맥주를 못 마셔 아쉬운 나. 우리가 소란함에 주의를 빼앗긴 사이 땅콩 안주를 얼른 입에 넣은 아들이 공장 견학을 시작했다.



사실 별 재미도 없던 이 곳에서 내 시선을 사로 잡았던 건 거대한 기계 앞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맥주들 앞에서 너무나 무료하게 앉아 있는 직원이었다. 부지런한 기계 앞에 한 두명씩 배치된 사람들. 채플린의 타임이 또다른 의미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keep  going.


코너를 돌때마다 보였던 안내판이 나에게 계속 나아가라고, 현재를 계속 진행하라고 격려하는 듯한 응원에 괜히 힘이 났다.


그래, 좀더  씩씩하게.

나만의 길을 더 힘차게. 눈치 보지 말고. 


맥주 공장을 돌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자꾸  내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둘. 오래된 식당, 춘화루의 탕수육과 그녀.


'그'인지 '그녀'인지 가늠하느라 조그맣게 실눈을 뜨고 자세히, 그러나 힐끔힐끔 살폈다. 나의 관심은 탕수육보다 내 아들 앞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라고 확신이 든 것은 아들이 기다란 젓가락을 뺏어가 다시 안 주려고 안간힘을 쓸 때 그녀가 그 큰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뺏어 나에게 주었을 때였다.

너무나 가녀린 몸과 작은 체구, 짧은 머리와 힘있는 음성.  아마도 그녀에겐 동생들이 꽤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밥 먹는 내내 아들 앞에 서서 그가 숫가락을 떨어뜨릴 때마다 얼른 주어 주었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누 그녀는 답답한듯 중국어로 열심히 뭔가를 말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서둘러 나가려는 나를 가만히 잡고 머리며 팔에 아기가 붙여놓은 밥 풀을 떼주었다.


'그녀'임에 틀림없다. 어여쁜 그녀.




셋,  길을 잃었을 때 우리가 마주한 거리.


 찌모루 시장에 굳이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궁금도 하다고 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길을 잃고 이렇게 된 거 그냥 걸음마하는 아들 뒤를 마냥 천천히  뒤따르다 걷게된 길.



궁금해 문 열린 어느 집 앞을 기웃기웃.

그러다 내가 본 것은,


세 평도 안될 곳에 가득차 있는 어둠이었다. 빼곡한 잡동사니 비집고 완벽하게 내려앉은 무거운 어둠 속에서 아줌마는 부지런히 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둠에 아주  익숙한듯. 길거리엔 이렇게나 햇빛이 쏟아지는데 그 작고 쾌쾌한 공간에는 깜깜한 밤같이 가득  스며있었다.

그녀의 집 앞 낡은 벽, 분홍색 종이에 쓰인 한자를 더듬더듬 읽어보니, 철거통보.

나는 그녀의 생활에 감히 여행자의 카메라를 댈수 없어, 조용히 지나쳐 걸었다.


그리고 곧이어 큰 길을 건너니 산보다 더 거대한 빌딩 숲이 있었다.




넷, 조바심을 버리고 그냥 그렇게.


찌모루 시장은 다섯시면 문을 닫는단다. 아무것도 보지못한 우리가 숙소로 돌아가려할 때 아들은 자기가 놀 곳을 찾았다.

  이름 모를 광장에서 딱 자기 수준에 맞는 대륙의 강아지와 한 시간을 넘게 놀았고 남편과 나는 돈 주고는 가지않을 취향의 커피숍에 앉아 아들이  놀이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가 강아지와 노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길가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했다. 그 모습이 그냥 중국스러웠다. 해가 지고 공기가 밤으로 변할 준비를 하며 선선해졌다.  그제서야 놀이를 마친 아들이 미련없이 돌아왔다.


여행을 오면 꼭 봐야하는 것들, 먹어야하는 것들의 목록을 접어두는 것이 나에겐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그런데 지금 눈 앞의 여유로움이, 모두 소중하게 빛났다. 아이의 마음에 시간을 맞추기, 나는 이렇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고 있구나.




칭다오 사람들은 참 신기했다.

말을 걸어 왔을 때 외국인인 내가 못 알아들어도  끊임없이 중국말로 질문하고,  다른 질문도 계속 했다.

나는 처음엔 머뭇거리다 계속되는 질문에 추측으로  영어나 한국말로 대답했다.

근데 왜 통하는거 같지?타인에 대한 관심이 남아 있는 그 정겨움에 이 도시가 좋아졌다.

그리고, 첫날 칭다오의 잔상들을 끄적이다보니 잠이 온다. 아마 나는 잊고 싶지 않아 잠이 안왔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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