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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un 20. 2016

한가로이 거닐기

하루를, 소신대로.

주말, 찾아 찾아간 카페.



날씨에 따라 로스팅 한다해서.

일본식 식빵을 구워 당일 판매한다해서.

동네 길가에 차를 구겨놓듯 주차하며 마음이 급해졌다. 정오가 되기 전에 빨리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



그런데 막상 커피와 빵을 먹었을 때, 기대만큼의 특별함은 없었지만 밋밋하고 평범한 그 맛에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편안해서였나보다.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주인도, 주말의 늘어진 시간들도.


그러다 쥔장이  소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창업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사전조사도 없이 카페를 하게됐고, 자신의 소신만 있으면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조그만 공간을 구석구석 채워나갔을 때, 그 때.


소신. 나는 그 의미를 곱씹다, 새삼 말이 가진 의미의 다양한 함의에 놀란다. 소신은 자신만의 철학과, 주관, 신념, 가치관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집에  와서 망설이던 소설을 밤새워 읽었다.


요즘 핫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

그녀의 이야기는 담담하고 정갈하지만 읽고나면 감정이 질척거려 감당하기 힘들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적당히 달래주는, 적당히 현실을 견딜 힘을 주는 책만 의도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그밖의 깊이와 파장은 거부하며 적당히 잘 살기로 각오한 가벼운 사람처럼. 그런데 그 밤 나는 그 틀에서 걸어나와보기로 다짐했다. '소신'이라는 단어가 주문을 건듯. 그리고 역시나 담담히 읽어나가다 감정이 울려 결국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전철에서 주책맞게 울어버렸다. 소설 속 '동호'가 자꾸만 생각을 휘저어서. 동호의 엄마가, 작은 형이, 정대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휘젓는다. 내 뭉퉁한 마음을. 뚝뚝.

나는 인상을 쓰지 않고 책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는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곳은 도시니까. 다들 고개숙여 핸드폰을 보고 있 것이다.





28년 동안  우리는 친구였다. 비밀을 나눠가졌지만 그 아인 내가 아니었다. 너무나 다른,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멀리 떨어져 지낸 어느날 문득, 이번에 만나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보석같은 나의 친구.



친구는 여기서만 갈 수 있는 카페에 가자며 6월 대낮 땡빛 아래 한참을 걸었다. 프렌차이즈 커피점들이 주욱 늘어선 거리를 걷고 걸었다. 일 년 전, 음악이 참 좋았던 카페가 그 사이 사라져 또 걸었다. 그 곳은 어디로 소멸했을까...


친구는 비릿한 걸 못 견뎌하면서도 바닷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이였을 때 우리가 처음 같은 반이 되어 만났던 그 대로 복스럽고 맑은 기운이 그대로 어려 있다. 사랑스러운 얼굴 그대로.


그리고 못 만난 동안,

새로이 생긴 비밀들을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먹을 꽉쥐고 이야기했다.

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손을 쥐어준다.


아주 멀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떠나온 듯,

우리는 먼 산 허리를 맴도는 구름을 각자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공간에 있는 지금이 행복해서, 다르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며 닮아간 우리 모습이 뿌듯해서 행복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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