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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09. 2016

어느 평범한 날의 커피 한 잔

추억 단상

오랜만에 데이트.

아기는 재웠고 부모님이 봐주시기로 해서
안심도 되고.


이제 이 곳에도 제법 
프렌차이즈 커피점이 생겼지


와보고 싶었던

'커피가게'로 망설임 없이 향한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그렇게 아줌마가 된 사이,

소녀들의 아지트였던 이곳은

간판도  바껴있었다.





시골마을.

중소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나 한적한

나의 고향에,

마땅히 갈곳없어 수능을 보고
소개팅을 하거나, 새내기 티를 내려고

부지런히 다녔었던 이 카페.


그린힐이었을 때부터 커피가게로 바꼈을 때까지

우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대학생, 직장인, 엄마가 된 지금까지

고향에 오면 어김없이 이 곳에서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었지.

아마 직접그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그림들.

안온 사이 물건들도 그림들도

늘어가, 진짜 아지트 느낌이 난다.



그때보다 많아진 커피기구들,
소품들이

이 카페도 나이를 차곡차곡 먹어가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게 했다.

여전히 이 카페의 음악은
나무랄데 없이 좋다.


나에게 좋은 음악이란

추억이 많은 음악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때

파생되는 수 만가지 느낌과 공기의 투영.

그것이 녹아 있는 음악들.





주말이나, 명절이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곳에 오면

앉을 자리가 없어 시내를 몇바퀴

 돌다 오곤 했는데.



이 커피를 앞에 두고

나는 친구들과

대학생활, 선배들, 진로,
친구의 배신,
첫사랑이라 부르기엔 미묘한 짝사랑
시험, 합격, 발령, 첫 제자들과
  사회생활의 힘겨움.


항상 비슷한 패턴의 소개팅과 선.

결혼에 대한 고민
녹록지 않은 삶에 대해,


벗어나고 싶었던 모습과 달라지고 싶었던 삶.

도돌이표 실수로 지쳐 있는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질투하기도 하고


...

그랬었지.

음악을 듣는데 눈물이 핑돌았다.

울컥.



왜인지는 단정 짓기 힘든 감정들.


나도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저기 구석진 자리.

우리들이 서로 앉고 싶어했던 자리.


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고 ...


그렇게 채워나가며 성장했던

우리의 공간.

나의 미숙하
다소 오만했
젊은 시절을 함께해 줬던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지금 이 공간에

그대와 함께 있음이 감사하다.







잔을 비우고

일어서는데...

또 한동안 못오겠지
이곳은 비슷한 모습으로 날 반겨줄것이다.





우리가 좋아했던 떡볶이집, 분식점, 서점이

사라지고

남은 이 곳.

계속 있어줘야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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