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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09. 2016

마지막 인사는 담담하게.

엄마와 여행 3

"엄마 괜찮아?"


 똑같은 물음을 자꾸 던지고 엄마는 괜찮다는 답변을 계속 반복한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길 바라는 마음은 외할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향해 있다.  


 괌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엄마는 명랑하게 웃었었다. 

"물고기들이 자꾸 발가락을 물려고 하는데 기분이 이상해. 검은 색 물고기가 왜 자기 영역 침범했냐는 듯 막 달려들더라.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인가봐. 하하하."

 엄마의 웃음 소리가 해질녁 이라나한에 울려 퍼졌다. 이곳의 청명한 바람과 엄마의 웃음 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는 다시 저렇게 웃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혼자 죽음을 맞이 하셨다.

 

 그리고 그 죽음은 동네 사람이 요 근래 외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고해 경찰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렇게 쓸쓸하고 씁쓸하게, 한 때 가장 가까웠지만 이제는 애증으로 멀어진 가족들이 가장 마지막에 타인에 의해서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생각하던 외할아버지의 마지막은 항상 비극적이었다. 건강식과 소식을 하셔서 투명한 피부를 가진 외할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길에 낮게 혼잣말을  하셨다.

 "에휴. 큰 일이야. 갈수록 젊어지고 어려져. 자식들은 다 늙고 병들어 제대로 된 낯빛을 가진 애가 없는데 혼자 저리 젊고 생생하니 자식들 보다 더 오래 살면 우리 아버지 마지막은 누가 챙길까. 돌봐주는 자식도 없으니 아무도 모르고 그렇게 한참 지나 발견되면 어쩌누. 우리 가족들이 좀 별나야지."


  외할아버지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자식들에게 소리를 질렀었다.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먼 길을 달려온 엄마는 담을 넘거나 새벽부터 와서 문 밖에서 외할아버지가 나오실 때까지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렵게 외할아버지를 만나도 그동안 쌓여온 이야기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쫒겨나다시피 집을 나왔다. 엄마는 혼자 외할아버지를 만나기 두려워했다. 외할아버지와의 사이에 흐르는 시간과 감정을 감당 못하는 사람처럼 우리를 항상 대동해서 가길 원했다. 나와 동생은 주말이면 엄마 대신 외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제법 따뜻한 날에도 외할아버지 집엔 냉골에 흐르는 곰팡이 냄새가 스며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야하며 소식해야하며....그런 것들을 이야기해주셨다. 왜 엄마는 같이 오지 않았냐며 서운해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하기 전에 외할아버지를 찾아갔었다. 한참을 문을 두드리고서야 외할아버지는 문을 열어 주셨다.

 "저 결혼해요."

 "그래?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냐?"

 "네."

 "잘 됐다. 내가 참석하고 싶지만 나이가 들어 가기가 힘들어 못간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라."

 외할아버지는 서랍을 열었다. 오만원권 지폐가 한그득 쌓여 있었다. 축의금이라고 쥐어준 오만원 지폐가 가슴 아팠었다. 그게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근근이 살아가느라 아들 딸 노릇도 제대로 못한 자식들을 둔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자식들은 울지 않았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현금으로 발견된 수 억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 논하기 바빴다. 상주는 늦게 나타나 왜 일회용품을 샀냐며 구박하며 사소한 것에 분노했고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던 큰 이모는 곧 재기할 계획이 있다며 큰 소리로 이것저것 이야기 했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모습이 쓸쓸했다. 사람이 없는 것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그 모습이 더 슬펐다.


 부검 결과, 외할아버지는 당일 새벽에 작고 하신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엄마는 자식들 중 유일하게 울었다. 외할아버지를 떠나 따로 살던 외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자꾸 우셨다. 우리들에 대한 기억이 잘 안난다며.


 나는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어떠셨을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셨을까. 누가 보고 싶었을까. 며칠 동네에 보이지 않았다면 집 안에서 가만히 오늘 아침까지 누워계셨을 터인데. 외할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조금은 후회하셨을까, 미련이 남으셨을까.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마음을 유산으로 받은 남은 자식들 각각의 사연은 접어두고 이제는 담담하게 이별을. 각자의 방법으로 안녕을 고할 때 아닌 강풍이 불고 지독하게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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