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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07. 2016

지금의 삶, 이젠 묻지 않을 것.

엄마와 여행 2

"어머니, 무슨 일 있으셨니?"

"응? 왜?"


"아니...  그냥 뭔가 달라지셨어. 눈빛이, 무슨 큰 일이 지나간 것 같은.. 달관이랄까 암튼 그런 느낌이 들어서."


 내 옆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가 그 말을 던졌을 때 마음 속에 수 만가지 동그라마들이 요동쳤었다.




 렌트를 하고 숙소로 들어오니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 어스름만큼 마음이 눅눅해지는 것도 없다. 나에게 새벽 빛은 밤샘 작업과 불면증으로 고달팠던 기억으로만 물들어 있으니.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마주 했던 어스름한 빛.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자 방안에 뜨거운 이국적인 햇살이 웰컴 인사를 건내러 와 있었다.

엄마는 하얀 침대 시트에 햇살을 등지고 누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나갈까? 해변 산책해요. 안 피곤하다면."


 엄마는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썬크림을 잔득 바르기 시작했다. 허얘진 얼굴로 씨익 웃으며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누워 있으려니 잠이 안 온다."



 아침의 휴양지 해변가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물고기 잡는 사람. 그리고 낯선 곳에서만 부지런해지는 나같은 사람.


 아침부터 뜨거운 괌의 태양은 엄마와 나 사이에 말을 아끼게 만들었다. 밤 사이 부지런했던 게들의 흔적을 툭툭 없애며 느릿느릿 걷는데 엄마는 물고기 잡는 사람들의 수확이 궁금했나보다.


해변가에서 손쉽게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툭툭 던지던 아저씨는 기웃거리는 엄마에게 물고기를 보여준다. 단 두 번의 그물질로 이만큼 잡았다면서  자랑스럽게. 어떻게 먹냐는 엄마의 물음에 레몬즙과 후추를 뿌려 먹는다는 아저씨의 답변이 오간 후에도 엄만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 물고기를 본다. 발걸음을 옮기며 갸우뚱 갸우뚱 고개를 흔든다.

"구워 먹냐는 말이 영어로 뭐였지? 기억이 안나네."

"그거 생각하느라 물고기를 그리 한참 본 게로군요. 난 또 엄마가 생선 먹고 싶어하는 줄 알았지."


엄마는 웃었다.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요근래 엄마의 웃음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크게 말 그대로 하.하.하. 웃는다. 목에서 나오는 웃음소리, 가슴이 아니라.


 그래서 엄마의 웃음소리가 요즘, 슬프다. 일부러 웃는 것 같아서. 그게 엄마 삶인 것 같아서.



휴양지에서의 여행이 그러하듯 물놀이와 먹고 자기의 무한 반복의 패턴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이 곳에 온 이유가 새파란 바다와 하늘을 보러 온 것인듯 우리는 파랑에 젖어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그 와중에 손자를 꼭 안고 태울까 추울까 배고플까 쉴 새 없이 돌보고 있었다. 내가 볼테니 수영하고 오라고 해도 아기를 안고 보듬으며  말했다.

"이러는 게, 내겐 휴식이야."


 아들은 고달프고 배고플 때 나에게 오지 않고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의 등으로 가 업어 달라고 매달렸고 등에 업혀서는 자신의 모든 걸 외할머니에게 일임한다는 얼굴로  기대고 있었다.


 내가 신나게 놀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엄마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고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어쩌면 엄만 수 없이, 수시로 쓰다듬어 주고 보듬어 주기 위해 삶을 사시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안겼던 포근했던 엄마 품이 더이상 안기기엔 어색한 것이 되어버렸을 때 엄마는 외로웠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엄마가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했다.


외갓집 식구들이 힘들 때마다 아빠 몰래 보내줬던 돈은 결국 우리 집 한 채를 뺀 전 재산이 되었고, 무엇이 두려웠는지 엄마는 그 사실을 함구하고 비밀로 하려했다가 아빠의 마음도 멀어지게 했다.  엄마가 가장 두려워해 외면 했던 행동이 결론적으로는 그 결말을 부추기게 했다. 불신, 외면, 소외. 


"엄마 왜 그랬어?"

그때 엄마는 말이 없었다. 변명도 없었다.


 2000년.  지구 ㅣㅣ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우리집에는  그 비스무리한 슬픔과 갈등이 닥쳐왔다.


  이모의  빚보증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빚을 막았다. 남는 돈은 외삼촌에게 주었다. 우리가 주는 용돈으로 외할머니네 낡은 냉장고, 티비를 바꿔 주었다. 내가 보내는 돈이..

 적다고 했다. 막 사회 생활 시작한 나에게 대출 받아 내 명의로 하고 외갓집을 사주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러고도 누구도 모시지 않으려 한다며 결국 외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외할머니가 어느날 쓰러졌다. 선거날이어서 응급실로 간 외할머니는 약간의 치매증상이 왔다. 외갓집 식구들은 나몰라라,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라 하더니 엄마가 잘못 모셔 이런 사단이 났다고 엄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억울해서 가슴을 쳤다. 말 잘하던 똑똑한 엄마는 버벅버벅거라다 진정하고 말을 했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는 소줏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네 엄마가 젤 불쌍하다.


 우리는 불쌍한 엄마 옆에서 위로가 되고 싶었지만 위로가 정작 됐는지는 미지수다. 엄만 웃음을 잃었다. 맑고 경쾌하던 웃음이 허공을 지를 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간혹 그 비스무리한 경쾌한 웃음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엄만 항상 아기를 보며 있었다. 내  아들만이 엄마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었다.

아들이 엄마 품에 안겨 득의양양하게 행복한 웃음으로 날 바라볼 때 나는 부질 없는 물음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던졌다. 그리고 이젠 미련한 이 물음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엄마, 왜 그랬어? 그때 우리도 아직 어렸는데. 늘 잘 산다고 우리 무시했던 사람들인데. 결국 엄마 고맙단 말도 못 듣고 아예 왕래도 없어지고 다 다시 잘 살지만 우리 돈은 받지 못하고. 이렇게 될 걸 왜 그랬어? 그냥 고맙단 말만 들었어도 좋았을걸."


 엄마는 오랜만에 현실의 복닥함을 떠나온 사람의 얼굴로 공항에 발을 디뎠다. 기껏 4일 떠나왔던 여행인데 김치가 먹고 싶다하셨다.


전화 벨이 울렸다.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나에게 다가 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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