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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Dec 23. 2021

나의 영원한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엄마, 이제 두 밤 자면 크리스마스지? 우리 선물 받을 수 있지?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잊지 않았겠지?"

"그럼."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잠시 떠올랐다. 산타클로스는 유난히 가난한 아이들에게 박하다는, 좀 더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이들에게는 일찍 발길을 끊는다는 구절이었다. 일찍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산타클로스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은 그리 비싸지도 않았고, 허황되지도 않은, 딱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로봇이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하지만 자신들의 선행을 인정하고 선물을 가져다주는 존재에 대해 아이들은 수없이 고마워했다. 내가 매일 그들을 돌보고 선물을 챙겨주는 아이들의 산타클로스임에도 고마움은 내색 안 하는 아이들인데. 내가 산타란 사실을 들키는  순간 아이들의 환상이 깨지니, 산타클로스에 대한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음에도 그 사실은 왠지 서운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 비밀번호 알아? 핸드폰 번호 말이야. 그거 모르면 산타할아버지가 우리가 무슨 선물 받고 싶어 하는지 모를지도 몰라. 친구들은 친구들 엄마가 산타할아버지랑 다 통화를 했다는데 엄마도 통화했어?"


"아니. 카톡 했어. 읽으시겠지."


"안 되는데. 전화해야 되는데. 내 앞에서 통화해봐."


"계속 통화 중이니까 쉬실 때 카톡 읽으실 거야."


12월 25일이 다가오는 날을 기다리며 아이는 매일매일 확인했다. 내가 산타할아버지에게 보낸 카톡을 그가 확인했는지, 크리스마스는 몇 밤 더 자면 되는지.


아이들 선물을 사면서 선물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음에 감사했다. 요즘같이 어렵고 힘든 나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일찍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지 못했을까. 자신들이 잘못한 일도 없을 텐데 작은 일도 곱씹고 자책하진 않을까. 가난하다는 이유로 너무 빨리 어른의 서늘한 세계로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집으로 오는 길, 길가에 '상가 임대'가 붙여진 빈 상가들을 지나오며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엄마, 엄마는 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줘?"


"어른이라서."


"우리 엄마는 어른이라도 착한데.

엄마는 어렸을 때 뭐 받고 싶었는데?"


"미미의 2층 집. 뭐 토끼 인형 2층 집도 좋고. 아무튼 2층 집 갖고 싶었는데 산타할아버지는 한 번도 안 사줬어."


"왜? 엄마가 어릴 땐 착한 일 안 해서?"


"그랬나? 아무튼 맨날 학용품 줬어. 필통이나 지갑 같은 거. 그래서 기대한 게 아니라서 항상 내가 얼마만큼 착해야지 2층 집을 받을 수 있을까 슬퍼지는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단다."


"아이, 엄머 어렸을 때 불쌍해. 우리가 사줄게."

"인형의 2층 집은 너무 비싸."

"우리 돈 있어."

"그 용돈으로 너무 부족해."

"그럼 우리가 만들어줄게."


아이들이 종이박스와 스티로폼을 주워오기 시작하자 괜한 말을 했나 싶어졌다. 그랬다. 언제나 어렸을 때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선물이 항상 크리스마스 선물로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지만 그 부피만 봐도 내가 원하는 선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스케치북과 물감, 붓 같은 것이었을 때, 나의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은 끝났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눈치챈 것이다. 내가 산타의 존재가 엄마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 직감은 딱 들어맞아 그 이후로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선물이었어도, 산타클로스가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왠지 너무 쓸쓸하고 재미없었다. 그러면서 소란스러운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도 않은 그저 쉬는 날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선물 뒤에 숨은 허울 좋은 자본력은 왠지 씁쓸했다.


아이들을 낳고 부모가 되고서야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왜 우리 어릴 때 맨날 신발이나, 학용품 같은 것만 선물로 줬어? 필통 같은 거 정말 싫었어."


엄마는 조금 멋쩍어하면서 답했다.


"야, 말도 마라. 애 셋 낳아서 키우느라 늘 너무 바빴어. 아빠는 워낙 사람 좋아하고 인기도 많아서  그런 날 술 약속 잡고 나가고 주야장천 나랑 너희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어.


너희는 크리스마스 때만 다가오면 왜 이리 안 자는지.

재우고 선물 사러 나가면 문 연 데가 작은 문방구 밖에 더 있니? 그 시절 이 시골에 번듯한 가게 하나 없고. 백화점도 없는데 너희가 말하는 걸 어떻게 사니.


요즘처럼 인터넷 쇼핑되는 시대도 아니고. 그래서 부랴부랴 재워놓고 추운 날 나가서 문 닫기 직전 문방구점에서 그나마 제일 이쁜 걸 사서 포장해서 너희 머리맡에 놓아두었지."


오, 나의 산타.


나는  나이 들고 가련한 엄마, 내 평생의 산타였던 엄마의 말을 듣고 조용히 뒤돌아서서  울고 말았다.  늘 아이 셋을 돌보느라, 일하느라, 종종거렸던 엄마의 모습을 나도 기억하고 있다. 충분히 사랑받을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 한없는 사랑을 줄 존재는 우리밖에 없는 듯, 그녀를 돌보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어른들의 숙명이 그러한 것처럼.


돌이켜 보면 반짝이는 보석이라던가, 쓸모없는 인형, 인형의 이층 집이나 침대 같은 것은 나에게  멀리 있는 선물인 것만큼 엄마에게도 사기에는 너무나 비싸고 멀리 있는 소모품들이었다.(게다가 실용성도 없고)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장난감들은 시골까지 잘 들어오지 않으며 들어와도 몇 개만 들어와 금방 팔리고 말았다. 늘 출퇴근하기에 급급했던 엄마는 미리 뭔가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을 터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잠든 밤 문방구점이 문을 닫지 않길 바라며 크리스마스이브에 밤 달리기를 하였을 터였다.


그렇다.

나는 기억해내고 말았다.


 어느 날의 크리스마스 아침에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선물들이 내 양말에 옹기종기 들어가 있었던 것을. 지우개. 철 필통, 연필세트, 저금통, 지갑.


또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는 어이없게, 껌이나 가나 초콜릿, 초코파이 같은 과자가 화려한 포장지 안에 옹색하게 들어 있었던 날도 있었다.  아마도 문방구점이 문 닫았던 크리스마스이브날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슈퍼에서 과자를 골랐을 것이었다.


우리는 실망하고 또 짜증도 냈겠지만 엄마는 모른 척했겠지. 우리는 산타할아버지를 탓하고, 또 그만큼 착한 일을 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내가 원하는 선물을 어엿하게 뽐내는 친구들을 질투했었다.


매일 고단했던 엄마가 크리스마스에는 더 고단했을 테지. 오 나의 엄마, 나의 영원한 산타. 추운 밤을 달려 아이들 선물을 사 와 포장했을 엄마.  오늘 밤은 엄마의 크리스마스 산타가 되어 주고 싶다.


그리하여 살면서 변변찮은 선물 하나 못 받으며 컸을 그녀 머리맡에 작은 선물 꾸러미 하나 얹어놓고 싶다.


그러면 엄마는 멋쩍게 웃겠지. 나의 영원한 산타는 내심 좋아하며 선물을 풀어보겠지. 어린 아들들처럼. 그녀에게 실용적인 선물을 해야 하나, 예쁘고 귀엽고 쓸모없는 선물을 사야 하나, 어른인 산타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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