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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Oct 21. 2023

로컬을 이해하기 위하여, 경북 소도시 여행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양질의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다. 원래 내 성향이 여행을 좋아해서도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경험의 누적이 주는 감각과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서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켜켜이 쌓이면 사사로운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인생의 중요한 때에.


경북 상주로 아이들과 시골살이를 오면서 다짐한 것은 로컬만이 가지는 혜택을 누리자였다. 굳이 도시를 떠나왔는데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지향하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소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사투리, 삶의 색을 본다는 것은 특별함 그 이상이기 때문에 충분이 지역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고 가기에도 숨 가쁘다고 판단했다.

로컬에 살면서 좋은 점은 경북 지역 소도시의 특색을 활용한 문화체험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상주에서는 도남서원에서 동화작가님의 북토크가 있었고 안동에서는 도산서원 야간개장을 해, 테마극과 경전 성독을 선보였다.


 나는 영주 원도심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찰나여서 아이들과 '관사골에 비친 달빛'을 주제로 한 체험을 신청했다. 비교적 가까운 소도시지만 상주와 비슷한 분위기의 도시기에 시간을 들여 갈 이유가 별로 없었던 영주. 그러나 상주에 살면서 비슷비슷하지만 다른 소도시를 걸어보고 로컬이 가지는 특색을 찾아보고 싶었기에.


토요일 저녁, 영주 도착하자마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금방 그칠 비였지만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내렸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임박했는데 비는 쏟아지지, 영주 중앙시장 입구에서 집결해야 하는데 길을 잘 몰라 헤매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난 소나기에 신나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기 바빴다.

가까스로 집결지에 갔는데 비로 한 시간 지연된 행사일정 덕에 어묵도 사 먹고 고구마도 얻어먹고, 구제샵에서 스카프도 하고 비옷도 하나씩 입고 무장했다. 35명 정도 모인 사람들과 함께 비 내린, 이내 비가 그친 영주의 야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질펀하게 젖어 찝찝해진 신발을 끌고 영주의 근대역사 문화거리를 누비고 딱지치기 같은 추억 놀이도 하고 한우한쌈도 얻어먹고, 떡 만들기 체험도 했다. 1시간 반 정도 걸릴 거라던 행사는 3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끝이 났다. 늦은 밤 아이들은 차 안에서 재밌었던 점을 재잘거리다 잠이 들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재밌었다는 것들은 가령 이런 것들이었다. 집결지를 찾아 헤매는 동안 물 웅덩이에 발이 빠진 것, 어묵을 사 먹는 것, 마지막 버스킹을 본 것. 그런 것들이 너무 즐거웠다고 하는 아이들의 말에 빠진 것이 있었다. 아이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소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설. 아이들은 관심도 없었겠지.

 100년 된 풍국정미소에서 60여 년을 일한 사장님의 정미소 역사와 가난한 시절에 대한 설명. 그 설명에 남아 있는 자부심과 추억에 깃든 애상.
 초가삼간이었던 1900년대 교회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45년 신도들의 노역봉사로 건축된 영주 제일교회에 앉아서 들었던 파이프오르간 연주.
100여 년 동안 가업을 이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영광이발관에 들어서자 낯설면서 강렬했던 소독약 냄새.
청력이 좋지 않아 실수하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이종수 이발관님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업을 계속하고 계셨는데 성실한 노동으로 가업을 이은 사람만이 가지는 자부심과 관성의 무게.
일제건축물 양식이 그대로 담긴 5호 관사를 들어가 주인에게 건축물 양식에 대한 설명에 깃든  짧은 시간 급속도로 발전하느라 어느 정도 획일화 되어버린 우리의 문화. 당시 화장실이 집 안에 있어서 획기적이었다는 말에 아이들은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왜 그게 당시 혁신이었냐는 질문.
관사골을 지나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영주시내의 잔잔한 불빛.

일정이 끝났다. 고단함을 안고 밤안개를 가르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 국도 위, 차를 거의  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드렁드렁 옅은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로컬, 시골, 사라져서 지켜야 할 문화재가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한때 번성했으나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은 늘 애잔한 마음이 되고 그래서 특별하다. 나는 이 애잔함이 흔적도 없이 묻히기 전에, 유물로 갇히기 전에 아이들에게 보고  듣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비슷비슷해 보이더라도 그것들만이 가진 색을 구분하는 안목이 생기길 바랐다.


우리는 시골살이를 하면서 틈만 나면 인근 경북의 소도시를 쏘다녔다. 특별히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비슷비슷해 보여도 결이 다른 소도시를 누볐다. 김천 구도심의 벽화마을과 한식당이 즐비한 직지사, 순대국밥집이 즐비하고 동네이름이 용궁이라 토끼 간 빵을 파는 예천 용궁역, 굽이도는 낙동강 물줄기에 여름 내내 몸을 담그고 물소리를 들었던 회룡포, 현대화한 한옥에서 커피와 밥을 파는 곳에서 별다른 멋을 못 느끼다가 대릉원을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던 경주, 봄부터 겨울까지 걷기 좋은 새재길과 신나는 사과축제를 하는 문경.  


시간과 힘을 들여 자주 소도시 여행을 가도 아이들은 여전히 그런 애잔한 것들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설명을 흘려들으면서 어디든 뛰어놀기 바빴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시절 열심히 듣지 않아도, 흘려보고 들어도, 이런 시간의 누적이 그들의 삶에서 로컬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깊이 있게 해 줄 것이란 것을.

내가 소도시에 살면서 흘려듣고 보고 느꼈던 것들의 총합이 도시의 총체적 문화와 일류지향적으로 향해 일관되게 달려가는 삶 속에서도 남들의 삶, 세계가 지향하는 바와 거리를 둘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밑바탕이 되었기에. 타자의 삶이 아닌 나의 삶과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힘은 비슷하지만 결코 획일화되지 않은 것들을 보고 자란 환경에서 나오기도 하니까.


 인구소멸직전이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각자의 색을 살려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로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소소한 도전과 성취를 격려한다고. 내가 거대한 자본과 배경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나의 것을 잘 살리려는 점 같은 노력이 나를 나로 결국 살게 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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