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에 대한 조언

또 다른 충고들, 장 루슬로.

by 다다리딩

고통에 찬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충고하려 들지 말라.

그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올 것이다.

너의 충고는 그를 화나거나 상처 입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어설픈 충고들은 어쩌면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을 화나거나 상처 입게 만들었을 것이다.

새벽 달빛은 상념에 빠져들게 하는 먹먹한 주술을 잘도 부린다. 먹먹하고 조금은 허무한 마음으로 잊었던 기억들이 마음의 빗장을 풀고 툭, 하고 터져 나오는,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잠은 달아나버린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어설프게 교사라는 지위로, 친구라는 자격으로 참 많은 충고들을 하며 살았었다. 상대가 필요한 것은 나의 위로라고 생각하면서, 그 위로가 결국은 내가 살아온 좁디좁은 시야와 한 줌 경험치 속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시각인 것처럼 확고하게.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면서. 엄밀히 말해 조언과 충고는 다르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하늘의 선반 위로 제자리에 있지 않은 별을 보게 되거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들, 이해받지 못할 선택들을 마주하게 될 때 늘 나는 조급했었던 것 같다. 빨리 괜찮아지고 싶었고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 여기 저기 조언을 구했고 상담을 받았다. 나보다 괜찮은 상황의 멘토들과 선배들로부터.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28살 무렵이었다. 담임을 맡고 있었던 반에서 약간의 문제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고 담임인 나도 믿지 않았다. 교실의 분위기는 실수하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살벌함이 넘쳤고 상대방을 힐끗거렸다. 조용한 반이었지만 이상하게 주먹 안의 모래알들처럼 아이들은 묘하게 나를 외면했으며 아이들 서로도 유대감의 거미줄을 교묘하게 거부했었다. 왜일까, 무엇이 잘못 됐을까.

그러다 반장이 조용히 전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 아이들끼리 같은 반이 되어 분위기가 안 좋은데 수학샘이 수학 시간에 너희 담임은 고3담임이 처음이라 너희 큰 일 났다며, 자신에게 상담하러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아이들은 동요했고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나의 말에 의심이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 일을 동료 선배에게 의논 했을 때, -그 샘 또 시작이군. 그 사람 고 3 담임 처음이야. 넌 전 학교에서 했었잖아. 인기몰이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에휴 이번엔 네가 걸렸구나.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선배샘들의 여러 조언이 이어졌고 서로 자신만의 노하우라며 시작한 조언들이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인 것처럼 강요되기 시작하자 부담이 됐다. 그런 조언들이 나는 잘 하는데 너는 왜 안되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언들 속에 묻힌 나는 참 못난 모습이었다.

그무렵 나는 괜찮은 척했었지만 참 아픈 인간이었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말라.

풀과 돌, 새와 바람, 그리고 대지 것들처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조용한 반, 가장 무난한 반이었지만 유난히 힘들었던 그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했다. 옆반 선생님의 카리스마를 배워 엄하고 단호하게, 실수는 용납하지 않고.. 나를 세우려 애썼다.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다. 그러나 정작 그 샘의 조언들은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더, 더 강하게 하면 성적이 오를거라는 그 조언은 강압에 반발부터 생기는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오자 아이들과 나는 더 가까워졌다. 수업 시간의 작은 실수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않을 정도의 너그러움과 신뢰를 아이들이 먼저 보여줬다. 그러자 실수를 먼저 인정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도 생겼다.


아이들이 나를 한 뼘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사랑으로. 그들이 먼저 나에게 소신을 가지고, 잠시 잃었던 철학을 다시 찾으라고 무언의 격려를 던졌다. 그리고 나는 '성적이 좀 떨어져도 괜찮아. 지치면 잠시 게을러져도 괜찮아. 공부 못해도 괜찮아. 일등을 놓쳐도 괜찮아... 인생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너희들이 예쁜 색으로 다양한 소망을 품고 있는지 몰랐어. 다시 시작할 용기만 잃지 않으며 시간이 걸려도 너흰 해낼 수 있으니 지금이 끝인 것처럼 좌절 하지마' 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겼다.


그 한 해가 참 행복했다. 우리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시계추에게 달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 너의 말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비교를 하는 말이나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조언을 하는 습관이 나오려고 하면 이 구절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얼굴로, 서로 다른 마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타인들이니까. 지난 날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감과 사랑이었던 것처럼. 그래도 괜찮다는 불안을 잠재우는 말 한마디였던 것처럼. 결국은 수많은 조언들 속 해결은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였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그리고 너의 문제들을 가지고

너의 개를 귀찮게 하지 말라.

그는 그들만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다짐한 것은 아이만의 생각과 문제가 있음을 잊지 말자는 것. 아이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니 다름과 주체성을 인정해야 함을 잊지 말자는 것. 아이는 아이만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만의 속도로, 그만의 얼굴로 살아갈테니까. 나의 시야로 그의 인생에 대해 단언하는 섣부른 조언이 상처가 될테니까.





- 장 루슬로의 '또 다른 충고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