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게 뭐 어때서
간다. 2일차 - 인상 안쓰고 하는 인상파 투어
시차적응 때문인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내가 파리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파리는 빈대와의 전쟁중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에 바글바글한 빈대 사진으로 관광객들에게 사전에 혐오와 공포를 안겨주는 기사가 여기저기 파리라는 검색어와 함께 등장했었다.
나는 평소에도 다리가 없거나, 많은 것(4개 이상) 인 것들은 너무 무서워한다.
그런데 나의 숙소에서 새끼 손톱만한 벌레가 나왔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고, 숙소에 비치된 슬리퍼로 작은 벌레를 때려잡고 얼른 사진을 찍어서 집 주인에게 보냈다.
집주인은 너무 놀라며 미안하다고, 내일 다시 청소를 해주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고 말하고 채팅을 중단했다.
여행의 첫날 밤, 작은 벌레가 있다면, 빈대도 있을 수 있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숙소 근처에 크로와상 맛집이 있을지 구글 지도로 검색을 해봤다.
별 네개를 받은 곳이 있었는데 심지어 내가 내일 투어를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방향에 있었다.
내일 아침에 가야지, 아니 언젠가는 먹으러가지 뭐~
이 나라 크로와상 맛집이 얼마나 많을텐데 거기에 목 맬 필요는 없어.
이렇게 여유롭게 굴었던 이유는 나의 느린 걸음 때문이다.
출근 할 때, 내가 걸어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초딩 들이 쉭쉭 나를 앞질러서 걸어간다.
걸음도 느린데, 엄청난 길치라 분명 처음 가는 길은 구글이 찍어준 예상 소요시간보다 더 걸릴 것이다.
크로와상보다는 일단 투어 버스를 제시간에 타야한다.
예전에는 나는 걸음만 느린게 아니라 인생의 행보도 남보다 늦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엄청 자책했다.
왜… 나는 더 잘하지 못 할까? 왜 나는 안되지??
친구들이 좋은 대학교에 척척 붙을 때, 그리고 졸업도 하기 전에 좋은 회사에 취업할 때,
나는 먼 발치에서 나는 왜… 라며 나를 자책했다.
아빠는 줄곧 아기였을 때 발달이 유독 빠른 나를 보시고 우리 첫째 딸은 천재일 줄 알았다고 하셨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운동도 가르치면 줄곧 잘했는데,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왜인지 남보다 계속 늦어지는 걸까?
사실 돌아보면 엄청 늦은것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것으로 남과 비교를 하며
나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고 있었다.
30대가 되고서야 비로소 모두가 각자 인생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알고나니까 내가 별로 밉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재수를 하지도 않았고, 회사 생활은 졸업한 해에 시작을 했다.
그렇게 늦지 않았는데 주변이 워낙 뛰어났을 뿐이다.
상향평준화된 주변 상황에 쭈굴어들 필요도, 그렇다고 잘났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나의 속도가 있고, 그 페이스에 맞춰서 잘 살고, 걷고 있다.
암튼 걸음이 느린 나는 구글이 찍어준 예상 소요시간 보다 30분 일찍나왔다. 내 페이스를 알기 때문에.
맛집으로 소문난 크로와상 집도 들르지 않았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 문을 연 빵집에서 크로와상만 하나 냉큼 샀다.
30분 일찍 나왔지만 커피도 살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정확히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다.
투어에 지각하지 않은 것이 어딘가??
버스에 앉자마자, 새벽에 구글로 찾은 별 네개 빵집은 아니지만
아침에 일찍 문을 연 덕에 나를 손님으로 맞이 할 수 있었던 빵집의 크로와상을 와앙! 하고 먹었다.
입을 크게 벌린것이 무색하게 빵이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납작하게 내 입으로 들어왔다.
그냥 동네 빵집의 빵도 이렇게 맛있으니 맛집으로 소문난곳의 크로와상은 얼마나 더 맛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버스는 무사히 약속한 사람을 모두 태우고 한 사람의 시각자도 없이 지베르니로 출발했다.
오늘의 여정은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상파 거장 두 명, 모네와 반 고흐가 살던 마을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살던 베르사유에 간다.
베르사유는 예전에도 가봤지만, 앞 사람 머리통만 보였고, 공사중이었던 기억만 난다.
현지투어를 신청하니 버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모네의 정원, 반 고흐의 마을, 베르사유 궁전 앞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
현지투어는 게으르고, 무계획적이며, 길치인데 자유롭게 여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딱 맞는 여행이었다.
나는 그림을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사진을 좋아하는 편이다. 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그 찰나의 미학.
가끔 그림을 보러다니기도 하는데, 그림을 보러다니는 이유는 화려한 색깔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모네와 고흐의 그림의 색들은 내눈을 아주 강렬하게 현혹시킨다. 그래서 화가는 잘 모르지만 인상파 화가 두명의 그림을 너무 좋아한다.
사실 모네와 고흐의 그림은 파리 오르세에 가면 다 있다.
이번에는 그림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런 그림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두 화가의 삶이 너무 궁금해서 살던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같은 인상파 화가이면서 모네는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고,
고흐는 죽음마저 처절하고 고독하고 슬픈 삶을 살았다.
그냥 지베르니와 오베르쉬우아즈를 따로 방문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둘의 인생을 비교하게 되었다.
모네는 빛의 화가이지만 정원사라는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다.
대가족과 함께 파리 근교에서 정원을 일구며 사는 모습이라니, 상상만해도 너무 멋있고 따뜻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10월은 가을의 중턱이라 정원의 꽃들도 오그라 들어 있었다.
그러나 원래의 따뜻한 그 색을 잃지는 않았다.
모네의 집은 크지는 않지만 엄청 따뜻한 분위기다.
내가 그의 그림에서 느낀 파스텔 톤의 솜사탕 같은 느낌이 그 오래된 집과 정원에 가득차 있었다.
해를 바라보고 난 커다란 창도, 1층의 대가족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오붓한 노오란 식당도 너무 따뜻했다.
봄이나 여름에 또 파리에 갈 일이 있다면 다시와서 그 푸르름을 느끼고 싶다.
지베르니에서 슝 다시 버스를 타고 인상파 거장 반 고흐의 동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갔다.
프랑스에 가면 고흐의 마을이 여기 저기 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생을 마감한 곳이고,
프랑스 남부에 반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 [카페 아를]을 그린 아를에 가본 적이 있다.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금은 모두가 아는 화가이지만, 죽기전까지 제대로 그림 한 점을 팔아본 적이 없는 화가였던 고흐는 나처럼 인생의 행보가 엄청 느린 사람이었는데, 본인의 느린 속도를 인정할 수 없어서 너무 슬펐던 것 같기도 하다.
우습지만 30대 중반이라도 나의 속도를 받아들이고 살아생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흐의 마을을 떠나 베르사유 궁전에 갔다.
사실 베르사유도 돈 없던 20대 초반 친구들과 배낭여행으로 갔던 곳인데,
그때는 거울의 방은 공사중이어서, 이게 거울의 방인지, 파티션의 방인지 알 수 없게 다 가려져 있었고
무료로 입장 가능 한 곳들만 보고 나오면서 “뭐야~ 별거 없네…” 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정원은.. 무슨 남의 정원을 돈주고 까지 봐~ 라고 하면서 안갔었는데
우리는 그때 빚을 내서라도 정원에 갔어야 했다. 애들한테 카톡을 보냈다. 우리 여기 왜 그때 안갔니? ㅠㅠㅠ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ㅠㅠㅠ
돌아가는 길에 혼자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심심했다.
고흐의 쓸쓸한 일생을 몸으로 느낀 오늘 같은 날은 북적북적 어울리고 싶었다.
그래서 가이드가 추천해준 식당 하나를 꼽아서, 단체 카톡방에 오늘 여기서 식사하실 분! 손들어 주세요!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원래 이런 여행은 또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는 묘미인데,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투어를 신청해서 그런지 아무도 나와 밥친구를 해주지 않았다.
시무룩해서, 파리에 출장을 자주오는 친구가 소개해준 힙쟁이들이 모인다는 식당에 혼자 갔다.
피곤한데, 와인까지 한잔 마셨더니 알쓰인 내 얼굴은 감당못하게 빨갛게 되었고웨이터가 계속 괜찮냐고 세번 물어봤다.
안괜찮은데! 괜찮다! 팁도 빵빵하게 카드로 긁고 왔다
알딸딸하게 느린 걸음으로 또 천천히 숙소로 돌아간다.
나는 나의 느린 걸음을 이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