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가까운 냉장고에 있다
간다. 1일차 - 누가 파리지엔을 새침떼기래?
나는 파리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프랑스는 매우 익숙한 나라지만, 파리에서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외롭다.
원래는 파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서, 4일 중 3일이나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첫 날인 오늘은 숙소만 잘 찾아가면 된다.
공항마다 그 나라의 냄새가 있다.
한국도 한국의 냄새가 있듯, 프랑스도 프랑스의 냄새가 있다.
모든 공항에서 나는 냄새가 딱히 좋은 건 아닌데, 확실히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프랑스의 냄새도 버터 냄새나 크로와상 냄새는 아니다.
비행기서 내리면서 코끝으로 ‘아 정말 내가 프랑스에 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원래는 집 근처에서 대충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 이 시간에 차를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가면 연 식당이 없을 것 같다.
공항에 내린 시간은 8시, 짐 찾고 숙소로 가면, 9시 반, 숙소는 처음 가는 동네,
비행기에서 식사에 간식까지 든든하게 챙겨먹었지만 분명히 배가고플 것 같다
내일 아침 투어는 7시 40분에 시작. 내일 아침도 챙겨 먹을 자신 없다.
그럼! 공항 슈퍼에 얼른 가서 이래 저래 먹을 것들을 챙겨서 숙소로 간다!!!
마들렌, 물, 초콜렛을 잔뜩사면서 한국에서 만들어온 트레블월렛 카드가 잘 결제가 되는 것을 확인하고 숙소로 간다.
나는 프랑스에서 1년을 살았다.
그때도 “이 나라는 도대체 왜, 길을 이 따위로 만들었을까?” 라고 까르푸에서 장을 보고 올 때 마다 짜증을 냈었다.
(이 따위 : 아주 작은 보도 블럭으로 만들어져, 길이 오돌도돌하다. 파리 시민들이 예전에는 그 돌을 뽑아다가 던지면서 시위를 했다고도 하던데 암튼 길 사정이 우리나라 만큼 매끄럽지 못하다.)
짐은 정말 최소한의 것만 쌌다고 생각했는데, 매끄럽게 굴러가지 않아 계속해서 힘을 주어서 끌어야 했다.
10월인데, 날씨는 예상한것 보다 따뜻했고, 나는 기모로 안감을 댄 후드를 입고 있었다.
공항 버스는 오페라 역 앞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나머지 이동은 지하철로 해야한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그 길도 오돌도돌한 그 보도 블럭 때문에 순탄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오래된 지하철에서 엘레베이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찾는게 쉽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왜인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온 것 외에 별로 한 것은 없는데 내 몸은 이미 지쳐서 가방을 번쩍 들어올릴 힘도, 용기도 없었다.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불어로 “도움이 필요하니?”라고 물어보았다.
“응"이라고 말하기 쑥스러워서 “너는 정말 친절하구나.”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나보다 야리야리해 보이는 그 여자는 내 가방은 번쩍들어서 계단밑으로 내려갔다.
세상에… 계단이 한 20여개는 된거 같은데, 정말 순식간이었다.
“너무 고마워, 진짜 너무 친절하다. 너무 고마워"만 반복했다.
이것이 내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받은 친절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왜인지 글로벌하게 새침떼기로 소문이 나있다.
영어로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해준다는 둥.
물건을 쿵쿵 놓는 다는 둥. 잔돈을 던진다는 둥.
우리 나라 사람들도 모두 친절할 수 없듯이, 누군가 프랑스 여행에서 만남 새침떼기에 대해 한 마디 했는데,
프랑스는 불친절한 나라래~ 하고 전세계에 헛소문이 난 것 같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계단이 엄청 더 길고 많았지만,
도와준 덕분에 힘을 내서 가방과 함께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파리 곳곳에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파리사람들이 새침떼기에 불친절하다는건 사실이 아니었다.
너무 일반화의 오류이려나?
하지만 불친절하다는 일반화의 오류보다는 이 편이 좋은 것 같다.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는 생각보다 번화가에 있었다.
지하철 역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도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에 가까워서 집 앞 레스토랑도 문은 열었지만, 주문은 끝났다.
공항 편의점에서 산 마들렌과 물, 초콜렛이 사실 버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났는데,
막상 주문을 받지 않는 식당을 보니 소중해졌다.
당이 필요했다.
숙소까지 이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배가 고파질 정도의 노동강도였다.
숙소 앞 젤라또 집이 아직 불이 훤했고, 직원들은 마감 청소를 시작 할 기색이 없었다.
소매치기와 도둑이 많다는 파리에서 가방을 가게 밖에 두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가게 문턱이 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들어올릴 기운이 없었다.
돈을 내고, 직원이 내가 주문한 초코와 쌀맛 아이스크림으로 콘 위에 장미 모양을 만드는 것을 멍때리고 쳐다보았다.
장미모양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방 옆으로 와서 한 입 낼름 혓바닥으로 핥았는데,
달달하면서 시원한데, 쫀득한 젤라또가 혀에 착! 하고 붙었다.
바로 이거지!!!!!!!
서울에선 밤 10시에 혈당 스파이크 칠거 따지면서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입에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들어가자 마음이 몹시 여유로워졌다.
지나가던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와 눈 인사도 하고, 데이트 하는 커플 앉으라고 내 짐들도 치웠다.
친절은 설탕에서 나온다더니 몸소 증명을 해버렸다.
공항에서 아이스크림 집 앞까지 올 때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면서 다 잊었다. 뿅! 레드썬! 나란 인간의 단순함이란….
지금 내 스스로가 너무 날카롭고, 내 안의 친절을 잃은 것 같다면,
그것은 가까운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거나, 내 냉동실에 있다.
멀지 않으니 꺼내오길 바란다.
계단이 많은 에어비앤비 작은 아파트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기 몇달 전부터 프랑스는 빈대와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
숙소가 아무리 깨끗해도 빈대가 어디서 어떻게 내 소지품에 침투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예전처럼 숙소에서 가방을 활짝 열고 잘 수 없다는 뜻이다.
내일 입을 옷, 잠잘 때 입을 옷만 꺼내고, 가방은 꼭꼭 다시 여민다.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이게 서울에 내 방인지, 파리인지 크게 감이 안온다.
그저 큰 문제 없이 혼자 숙소로 잘 찾아온 것만 해도, 그리고 숙소가 생각보다 교통편이 좋은 곳이라는게 감사할 뿐.
첫날은 서울 내 방보다 조금 낡은 방에서 잠만 자는 느낌이다.
아직은 휴가라는 실감이 안난다. 내일은 돈쓰는 기분이 나면 좋겠다 라는 기도를 드리며 잠을 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