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림 Jan 01. 2022

간단했던 절차

협의이혼 신청서를 내면 한 달 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한 달 뒤, 법원에서 오라는 날짜에 오라는 장소로 가면,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 모인 몇 쌍의 아직 부부인 사람들이 미팅룸 같은 곳에 모여 있다, 그 방 옆에 작은 판결을 위한 방에 순서로 불려 나간다. 그곳에서 판사가 간단한 질문을 한다. 약 5분 간격으로 부부들은 불려 들어간다. 거기서 직장 동료 부부를 만났다. 정확하게 여자 쪽과 직장 동료 사이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서로 교류하고 지냈던 터라, 청첩장을 주고받고 결혼식에도 갔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같이 식사를 한 적은 없지만 지나가며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서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다. 여기서 그녀를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우리가 이혼을 한다는 사실보다 법원에서 같은 날 그녀와 이혼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놀라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우리는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냐며 간단한 소회를 나눴다. 그리고 일상으로 복귀하면 보자고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우리 부부가 호명되었다. 왈라비가 앞서고 내가 뒤이어 들어갔다. 내부는 심플했다. 방 안 가득 긴 회의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고 문 맞은편 끝 쪽에 판사인 듯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창가 쪽으로 기록을 담당하는 법원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판사와 맞은편 쪽에 앉았다.


"왈라비님 협의 이혼에 동의하십니까?"

"네!"

'무슨 그런 뻔한 질문을 다시 하십니까?'라고 하듯 왈라비가 빠르고 약간 높은 톤으로 대답했다. 이미 결론이 난 사이인데도 왈라비의 단호함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아니요'라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어서 바로 공평하게 나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톰슨가젤님 협의 이혼에 동의하십니까?"

"네"

나는 다소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갈라지지는 않았다.

5분 만에 판결은 났고, 절차를 마친 우리는 법원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에게 잘 지내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담백한 마지막 인사였다.


4년 반 만에 혼자 살게 되었다. 고요하고 쓸쓸하고 편안했다. 아주 오랜만에 싱글로 돌아와 보니, 처음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뭐부터 하지? 그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자.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거야.


작가의 이전글 쉽고 빠른 인스턴트 협의이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