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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01. 2022

쉽고 빠른 인스턴트 협의이혼

아이들이 조용할 때는 잠잘 때 아니면 사고를 칠 때라고 하죠. 양가 어른들에게 우리가 이제 그만 이 혼인관계를 정리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어른들의 리액션은 왜 그동안 이 아이들의 침묵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더 황당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았습니다. 달고나를 만들겠다고 주방 바닥이며, 가스레인지와 개수대 주변에 잔뜩 설탕을 흩뿌려 놓고, 냄비와 국자란 국자는 온통 숯검댕이로 태워 먹은 난장판 그 자체. 부모님의 표정은 이제 막 퇴근하고 돌아온 맞벌이 부부의 낙담한 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나와 남편 왈라비는 그렇듯 조용히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둘이서 모두를 배불리 먹일 요리를 하겠다고 잔뜩 주방을 어지럽히고 치우지 못하고 있었어요. 음식도 만들지 못했고, 주방은 난장판인 채로 둘 다 팔짱만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붐! 하고 터버렸습니다.


- 우리 노력했잖아, 왈라비. 난 더는 못하겠어

- 이제 겨우 두 번이야

- 겨우 두 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 겨우 두 번이라고 한 건 미안해. 그치만 너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 같아. 좀 쉬고, 몸을 만든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만! 왈라비 한 번으로도 난 충분해.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슬픔을 다 겪은 느낌이야. 우리 결혼에 다시 이 슬픔이 반복되는 걸 원하지 않아. 니가 포기하지 않겠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야

- 알겠어, 알겠다고. 미안해. 그렇지만 나도 이해해 줘. 톰슨가젤아. 난 너와 헤어지는 것도 싫고, 여기서 아이를 포기하는 것도 싫어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닙니다. 왈라비를 사랑했으니까, 의리도 있고 약속도 했고, 어쩌면 나도 아이를 원하는지 몰라. 스스로를 설득해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을 하고 '난임센터'에 다니며 호르몬 사를 맞으며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주사 영향으로 살이 찌고, 감정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자주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휘날렸지만, 그래도 '핑크빛 미래'를 그리며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왈라비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수입이 많진 않지만 일을 구했고, 집 안 일도 거의 도맡아 했고, 두 번의 임신 기간 동안 매일 출퇴근 길에 차로 픽업해주었으니까. 그러나 두 번의 임신은 초기에 모두 유산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윤회하지 않는 생명들, 이번 생에는 만나지 않을 인연인 모양입니다. 이제는 덤덤하게 그때를 회상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생채기에도 딱지가 않았나 봅니다.


그 뒤로 우리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대화거리가 없었습니다. 서로의 뜻은 알았지만 그 뜻이 각기 다르기에 대치 상태에서 소강상태로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잼에 빠진 파리처럼 무기력하게 날개를 파닥이다 그 마저도 멈춘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비글 은인 한 마리가 저희를 다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유산 뒤, 상심에 빠진 제가 '큐피드'라는 이름을 가진 비글을 며칠 맡아주게 되었는데 그 비글이 잼에 빠진 파리 두 마리 신세인 우리를 공중으로 날려주었습니다. 우리 집에 기거하는 동안 큐피드가 우리 침대에 오줌을 싼 날이었죠



-톰슨가젤아, 알겠어! 난 못 참겠어. 이제 그만 하자. 난 이 비글이 여기 와서 내 침대에 오줌을 싼 게 너무 싫어

-왈라비 그 개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자기 보호자와 떨어져서 불안하고 상심했을 뿐이야. 근데 넌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불안하고 상심한 영혼을!

그래 좋아. 우리 이제 소꿉놀이를 그만할 때가 된 거 같다.


물론 훨씬 많은 대화에서 고성으로 이어지는 시원한 성토의 장이 있었지만 우리는 마침내 알게 된 것입니다. 수만 가지 좋은 점이 있지만 한 가지 때문에 함께 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우리에게 주어진 배역을 감당하는 게 때로는 어렵다는 것을 <영화_결혼 이야기 중에서>. 갇혀 있던 우리의 대화의 포문을 열어 준 큐피드는 그날 아침 무사히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결혼이라는 무대 또는 공존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왔습니다.


4년의 결혼 생활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독립적이었으며, 이혼에 대한 유책 사유가 우리 둘 모두에게 없었으므로 협의 이혼은 매우 심플하고 빠르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쉽고 빠른 인스턴트 이혼이었습니다. 남편은 처음에 재산분할에 대해 '더 받아내기 위한' 소극적인 주장을 펼치려 했지만 이내 뜻을 접었고, 나에게 모든 것을 거의 다 주고 무대를 빠르게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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