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은 비용

by 김솔솔

계획대로 합정동의 빌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주거비를 낮추고, 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합정동은 제가 추구하던 생활의 방향과도 잘 맞는 동네였습니다. 좋아하는 맛집과 카페가 가까이 있었고, 한강을 따라 걷거나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릴랙스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서울 서쪽 교통의 중심지라 회사 출퇴근 시간도 이전보다 줄일 수 있었습니다. 생활의 효율을 유지하면서도 삶의 밀도를 조금 낮출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주거지의 컨디션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신축 아파트에 비하면 빌라는 불편한 점이 분명했고, 낡은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감안한 조건이었습니다. 주거비를 줄이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고, 그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 선택 자체에 대해서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같은 서울이었지만 퇴근 시간이 이전보다 30분은 줄어들었고, 그날도 그 점에 은근히 만족하며 집에 들어섰습니다. 강아지 밥을 챙겨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개수대 옆 조리대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요리도 설거지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물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바로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조리대 위쪽 그릇 수납장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납장 문을 열었을 때는, 그 안쪽까지 물이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수납장 안까지 물이 고여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당혹감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잠깐 멍해졌고, 이마가 뜨끈뜨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의 시간은 ‘왜’보다는 ‘어떻게’에 가까웠습니다. 누수는 감정적으로 대응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곧바로 임대인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해결 방안을 상의했습니다. 임대인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70대 은퇴자였고, 그 집 역시 투자 목적으로 3년 전에 매입한 터라 이런 문제가 있는지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처리 방식은 다소 황당했습니다. 당장 서울로 올라오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가 편한 수리 업체를 직접 알아봐 원인을 찾고 해결해 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상식적인 방식은 아니었고, 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제게 책임이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은 뒤에야, 감정적인 대화를 더 이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불편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 과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수는 역시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주방 수납장은 이미 썩어 있었고, 결국 모두 철거한 뒤 바닥 콘크리트까지 뜯어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나중에야 건물을 지을 때부터 하자가 있었고, 임대인 역시 그 사실을 모른 채 매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현장에서 제시된 해결책은 근본적인 방식부터 미봉책까지 다양했습니다. 완전한 해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당장 물이 새는 것은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주방 개수대와 수납장을 모두 새로 교체했고, 비용은 전부 임대인이 부담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꼬박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사를 나온 게 잘한 일이었을까.’

이사 비용에 더해 누수 해결을 위해 쏟아야 했던 에너지와 시간까지 모두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생각보다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이사를 나온 선택을 잠깐이나마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방향이 틀렸다고 결론 내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선택의 옳고 그름보다, 그 선택을 감당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일은 삶의 방향을 흔드는 균열이라기보다는 그 방향을 따라가며 겪게 되는 하나의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계획하지 않았던 복병이었고, 인생에는 늘 예외와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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