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아니었다

by 김솔솔

그 무렵을 떠올려보면, 사실 은퇴에 대한 고민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부터, 저는 은퇴라는 단어를 이전보다 자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을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솔직한 고민으로는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개인적으로 이뤄놓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고, 이대로 직장인으로만 끝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남아 있는데,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며 하루의 3분의 1을 회사에 매여 보내는 삶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대신, 일을 조금 줄이고 제 삶을 더 써보는 방식은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벌지 않더라도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취미생활도 하면서 지낼 수는 없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세미은퇴(Semi-retirement, 半退休)’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이 반드시 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점점 더 중요한 질문처럼 다가왔습니다. 삶의 방향이 조금씩 선명해지자, 자연스럽게 현재의 제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그러했습니다.


그동안 브런치 글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서울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분양을 하나 받았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입주한 뒤 실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청약받은 신축 아파트는 서울에 있기는 했지만, 소위 말하는 한강벨트의 ‘상급지’는 아니었고 교통 여건도 편리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출퇴근과 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동차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30대 후반에 서울자가, 외제차, 대기업 차장의 허울좋은 삶에 취해 있었습니다. 실상은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에 외제차 유지비,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들여놓은 가전과 가구의 할부까지 겹쳐 매달 고정 지출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습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치듯 빠져나갔습니다.

이대로라면 남아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 30년을, 지금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해도 계속 빠듯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월급은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 돈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현재의 소비와 자금 흐름이 더 위기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유동성 자금(liquidity)’을 중요하게 말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부동산에 돈을 묶어두기보다는 대출을 정리하고, 투자 자금이나 현금 흐름을 보다 원활하게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자율도가 있어야 세미은퇴든, 잠깐 쉬는 것이든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거비를 줄여 이사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는 당장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앞으로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준비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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