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시절 가장 큰 위기였던 누수를 해결하고 나자, 생활은 빠르게 안정되었습니다. 주방을 뜯고 바닥을 확인하며 한 달 가까이 이어졌던 소동이 마무리되자, 집은 다시 집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새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생활의 리듬은 금세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회사까지 출퇴근 시간은 40분 이내였습니다. 이전에 살던 홍은동 시절보다 훨씬 안정적인 동선이었고, 그 덕분에 하루의 시작과 끝이 조금은 여유로워졌습니다. 집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불편함은 대부분 익숙해졌습니다. 무엇이 불편한지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생활은 점점 매끄러워졌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해오던 일이었고, 숙련도는 충분히 쌓여 있었습니다. 이전처럼 매번 고민하거나 오래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기능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일정에 맞춰 무리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중요한 보고가 줄어들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살려 처리할 수 있는 일들 위주로 업무가 돌아가고 있었고, 새로운 판단이나 책임이 요구되는 순간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맡고 있던 업무의 가치가 낮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연차에, 이 정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이 마음 한편에 남았습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역할이 나에게 의미 있는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나의 성장을 담보해주는지, 회사와 나의 미래를 함께 놓고 보았을 때 양측 모두에게 충분히 발전적인 선택인지 같은 질문들이었습니다. 당장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 넘길 수도 없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고, 불행하다고 말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주거비는 계획대로 줄었고, 출퇴근 시간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일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일을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시기 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장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멈춰도 된다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안정은 분명히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삶의 방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