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을 한다고 하자, 동료들이 가장 먼저 건넨 말이었습니다. 퇴근 시간보다 한참 이른 오후였고, 메신저 창에는 짧은 질문들이 연달아 떠올랐습니다. 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에서 창조된 유는 이 우주의 시작일 뿐이라고들 말합니다. 제가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이미 주어진 삶 위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는 것처럼,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제게 영감을 준 사람들과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자금 유동성에 대한 고민도 컸지만, 특히 퇴사 이후의 삶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느끼게 해준 사람들의 존재가 컸습니다.
먼저 회사를 떠난 직장 동료들이 있었고,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찾은 직장 밖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제가 본격적으로 퇴사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에 먼저 회사를 떠난 동료였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사람이라 업무와 관련해 조언을 자주 구하던 사이였습니다. 전날까지도 프로젝트 절차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는 평소처럼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고 퇴직에 대한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퇴직 인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메일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그 동료는 이대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쉽다는 말도 했지만, 막상 퇴사를 한 뒤에는 자기가 좋아하던 문화해설 쪽으로 빠르게 진로를 정했습니다. 관련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시작했으며, 봉사활동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제적인 준비 역시 그동안 차근차근 해오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사람의 선택을 지켜보는 일은 제게도 분명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동료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장 밖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말차 음료를 자신만의 브랜드로 만든 S 브랜드의 대표님과 부대표님도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원래 대기업에 다니다 희망퇴직 기회를 계기로 스스로 퇴사를 선택했고, 자기가 좋아하던 ‘차의 세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는, 나름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희망퇴직을 통해 마련한 도전자금이 큰 힘이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만약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치듯 지나갔던 이 생각은 희망퇴직 공고를 마주했을 때, 스파크처럼 번뜩였습니다. 저는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인생 2막을 위한 토양을 다져오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희망퇴직은 제게 ‘끝’이라기보다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100점짜리 퇴직 준비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런 준비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돈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방향성이었습니다. 회사 밖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만의 답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100점짜리 답안지를 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인생은 그렇게 똑 떨어지는 공식이 아니잖아.”
그 말은 제게 두고두고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희망퇴직 공고를 마주하게 될 저를, 오래전부터 조금씩 준비시키고 있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