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순간

by 김솔솔


12월이 되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도, 일도 아닌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회사였습니다. 바로 희망퇴직이라는 선택지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1월 신제품 출시 프로젝트에 합류해 있었고, 업무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과격하다고 느껴질 만큼 빠듯한 일정 속에서 지쳐 있었고, 그 무렵부터 ‘퇴사’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소문은 블라인드에서 먼저 돌기 시작했습니다.


“희퇴 한다는데.”

“패키지 조건이 파격적이라던데.”


몇 년 전 회사의 선례와 다른 회사들의 희망퇴직 뉴스가 연달아 게시글로 올라왔습니다.


“에이, 설마.”

“연말 매출 실적에 찬물 끼얹는 거 아니야?”

“사기 떨어진다.”

“나도 쓰고 싶다.”


격앙된 반응과 농담 섞인 바람이 댓글로 이어졌습니다. 블라인드는 ‘카더라’가 난무하는 공간이고, 공식 루트로 말하기 어려운 감정과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평소라면 그저 누군가의 푸념이나 희망사항쯤으로 넘겼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습니다. 글 하나하나를 무심히 넘기지 못한 채, 상황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일주일 뒤, 금요일 회사 게시판에 ‘희망퇴직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신청을 받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변화하는 고객과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 효율화. 짧고 분명한 문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빠르게 갈렸습니다. 이번을 변화의 돌파구로 받아들이는 사람, 내가 대상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사람, 자격 요건에 들지 않아 아쉽다는 사람, 이번 달 카드값을 떠올리며 다시 일에 집중하겠다는 사람, 바쁜 시기에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 그리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반응을 보고 있으면서도, 제 마음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변화의 돌파구로 받아들였습니다. 다행히 대상자 요건에도 해당되었습니다.

공고가 올라온 첫날, 희망퇴직을 신청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날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오래달리기를 마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한동안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막판 스퍼트를 다하듯 인수인계를 마쳤습니다.


인수인계가 끝나면 퇴직원에 대한 조직장의 승인이 나고, 그동안 한 몸처럼 써 왔던 노트북과 사무기기를 반납합니다. 마지막 퇴근과 함께 NFC와 얼굴 사진이 박힌 사원증도 반납합니다. 그 과정에서 간단한 서류 하나를 작성했습니다. 어느 팀 아무개, 몇 월 며칠 퇴사. 칸에 맞춰 한 줄씩 적어 내려갑니다.


마지막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퇴사’

회사 문을 나서기 직전에 도착하도록 예약해 두었던 퇴직 인사 메일이, 문자와 이메일로 동료들에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연락을 준 분들께 답을 드리고 나니, 비로소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났습니다. 그제야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 앞에는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보낸 퇴직 선물과 감사 카드였습니다. 우리는 '굳 굿바이'인 걸까? 분명한 건, 그 과정에는 절차와 격식, 그리고 진심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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