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림 Jan 10. 2022

인간의 흑역사

리뷰앤토크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윌북)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은 사람에게는 쉽고 가볍게 여겨질 만한 책이다. 주제의식은 일맥상통한다. '인간이란?' '인류 진화의 역사 속 비화'들을 다루었다. 저자 톰 필립스는 캠브리지대학에서 인류학과 역사, 과학을 전공하고 언론인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위트 있고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인류 역사의 넌센스를 짚어낸다.

여기 몇 개의 챕터를 요약해 본다.


아주 고집스럽고 멍청한 진화의 과

인간의 머리는 어떻게 세상을 주름잡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해내면서도 동시에 누가 봐도 어이없는 최악의 결정을 날마다 내릴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는 어떻게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면서, 옛날 애인에게 그런 한심한 문자를 보내는 것일까? 모든 것은 우리 뇌가 진화한 방식에 기인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진화라는 과정은 영리함과 거리가 멀다.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고집스럽게 멍청하다. 진화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래저래 죽을 수 있는 수천 가지 시나리오를 피하고 유전자가 다음 세대를 잘 넘어갈 깨까지만 죽지 않고 사는 것, 그것뿐이다.

인간 역사의 기록은 대부분 인간이 한 것이기 때문에 자화자찬식인데, 이런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이 참신하다.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이 결정적인 순간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편한', '나한테 이득이 되는', '쾌락적인' 결정을 하는 것은 경험으로 익히 잘 알고 있다. 살이 찌고, 혈당이 올라갈 것을 알면서 단당류 디저트를 탐닉하니까. 성인 당뇨 유전자를 물려 받았으면서도 당장 눈앞에 놓인 농밀하고 진한 캐러멜 마키아또 한 잔에 행복해하고, 입술을 훔치니까. 마시고 나면 또 혈당 상승을 걱정하겠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런 모순적인 선택이야 뭐 그리 큰 문제이겠는가. 피해를 미치는 범위도 그 개인이나 가족에 머물 것이고, 인류사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 미치지 못하겠지만. 인류의 흑역사는 스케일이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 자신과 주변 생태계에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온 것들이다.


최근 인류 최고의 역작,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

텍사스주 정도(남한 면적의 7배_옮긴이)에 이르는 이 쓰레기 섬은 북태평양 환류에 갇혀 대양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대부분이 미세 플라스틱 입자와 어로 장비 파편으로 이루어져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해양 생물들에게는 막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 <중략> 인류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83억 톤이 넘는 플라스틱을 생산했다고 한다. 그중 63억 톤을 버렸고, 그것이 지구 표면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위엄이다.

인류가 환경에 미친 악영향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이제는 '미안해, 몰라서 그랬어'라는 변명은 안 통한다. 전지구적인 쓰레기 문제, 특히 플라스틱 과사용 문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플라스틱은 수분을 흡수하지 않고, 형태가 쉽게 변형되지 않으며, 유기물에 의한 부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인류의 발명품 중에 단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양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수명이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제 플라스틱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용하면 할수록 당연히 플라스틱 폐기물도 늘어날 텐데... 내 대가 아니면 다음 세대가 어떻게든 하겠지 인간 특유의 자포자기식 생각이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베어 나온다. 코로라로 배달음식 주문이 증가하면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용기 폐기물이 너 늘어난 것을 알지만 그 편리성과 식욕 때문에 배달을 쉽사리 끊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이다.


개가 시장이 되었다고?

1981년에 캘리포니아의 수놀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개 한 마리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주인공은 보스코 라모스라는 검은색 ㅇ래브라도 리트리버 잡종견. 주인 브래드 레버가 어느 날 저녁 동네 술집에서 말싸움 끝에 선거에 출마시켰고, 결국 2 명의 인간 후보를 누르고 압승을 이루었다.

이 챕터는 대중의 힘에 대해서 다루는데 사례가 꽤 흥미롭다. 인류 정치사에서 소소하긴 하지만 동물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인간은 동물이나 그 혼령을 신으로 숭배한 애니미즘 역사를 유전자 깊숙이 간직하고 있을 터. 동물을 주민 대표, 시민 대표로 선출한 것이 인간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은 아닌 것이다.

대중의 힘을 보여주는 민주주의는 누가 되었던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 권력을 위임받게 되는데, 이때 대중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시사점이 된다. 동물을 대표로 선출한 당시의 대중은 '인간 대표'에게 염증이 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는 주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친인척과 지인의 이권을 챙겨준다거나, 특정 기업 또는 인물로부터 로비를 받아 대중에게 부당한 정책을 펼쳤다거나. 평소에 개인은 힘없이 그 정책의 피해를 보거나, 일부가 시위를 통해 저항하지만 그들은 공권력 앞에 쉽게 제압당한다. 대신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공식적으로 '선거'를 통해서 다수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



인류의 대참사, 히틀러

하지만 실제로 히틀러는 무능하고 게으르고 병적으로 자기 중심주의적인 사람이었고 그의 정부는 완전히 코미디였다는 사실을 알아둘 만하지 않을까. 사실 오히려 그 덕분에 그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독일 지도층은 그를 시종일관 과소평가했다. (p.122)


사실 작가는 동물을 시장이나 마을대표로 선출한 사례를 통해서 민주주의 맹점을 꼬집으려 했는지 모른다. 다수가 늘 옳은 건 아니다. 다수의 선택이 합리적일 거라고? 꿈 깨!라는 식이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독일 의회 최대 정당, 나치당의 수장이 되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히틀러가 카리스마 넘치고 스마트한 정치가라서 뽑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한다. 히틀러는 허세에 찬 바보이고 호구처럼 보였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에게 쉽게 휘둘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히틀러는 일단 총리로 등극한 뒤, 두 달만에 나라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가 유능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무능하지만 야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히틀러만큼이나 당시 독일 사회의 지도층들, 정치인들, 지식인들의 안일함이 그의 무능한 야욕 위험한 전체주의로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히틀러의 뒤에서 세계대전 발발에 부역한 것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안일함'이 가장 위험하다. '괜찮을 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어'

 

과거에 했던 실수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반복하고 있는 인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최초'가 끝없이 쏟아지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가 예견하지 못했거나, 예견한 사람들을 무시한 결과들이다. 그 '최초'들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메리 워드가 겪은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p.252)


메리 위드는 1827년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가족은 물론 친인척, 친구, 지인들도 대부분이 과학자였다. 주변 분위기 덕분에 그녀도 과학 상식에 능했고, 그림을 잘 그려 자기가 직접 삽화를 그리고 책을 출판하여 10년 간 8쇄를 찍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오늘날 대중과학서로 분류될 거의 최초의 책이라고 한다. 그 뒤로도 대중 과학 분야에서 그녀의 경력은 승승장구했고, 당시 여성의 학위 취득이 허락되지 않아, 학위는 없었지만 왕립천문학회의 회원 명단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마흔두 살에 그녀의 사촌오빠가 만든 증기자동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 비명횡사했다. 메리 워드는 자동차를 처음 탄 0.000000... 001%의 사람이었고, 최초의 자동차 사고 사망자가 되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그녀의 명복을 빈다. 최초의 기술을 체험하는 영광을 얻고 비명횡사한 사람이 어디 메리 위드뿐이겠는가 하고 작가는 말한다. 윌리엄 허스킨슨이라는 영국 국회의원이 최초의 증기기관차 개통식에 참여했다가 열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하니...... 최초의 기술은 그 기술의 효용성에 열광하는 인간들을 아주 간단하게 배신하고 만다. 그 당시에는 모르다가 시일이 지나 안개에 걷혔던 효용성의 이면, 부작용과 위험요소가 그 거대한 얼굴을 내미는 식으로. 그러나 미래를 지배하고 영속하고 싶은 인류의 도전은 계속되고, 그것이 실수로 밝혀지지만 그 반복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몇 가지 책 속 사례를 언급해 본다.


1932년 아인슈타인 " (핵에너지를) 장차 획득할 수 있으리라고 볼만한 근거는 조금도 없다"

1938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아돌프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그 이듬해 전쟁이 발발했다.

1979년 포드 자동차 미시간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로버트 윌리엄스는 로봇에 의해 죽는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2007년 금융분석가 래리 커들로는 '경기 침체는 오지 않는다. 비관론자들은 틀렸다..' 2008년 전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2016년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순록을 모는 유목민들 사이에서 탄저병이 돌았다. 7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1941년 탄저병 유행 때 죽은 순록들의 사체가 노출된 것이다.


책은 2018년 석유발전소가 재가동된다는 소식을 의아해하며 마무리 짓고 있다. 이 후속편을 우리는 지금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바보짓의 역사를. 2019년 코비드 19의 등장과 2021년  임상 1상 조차 하지 않은 백신의 등장, 그 백신을 차선이지만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현실, 코로나는 다시 다양한 변이로 종식의 앞 날이 보이지 않는 이 안갯속을 우리는 계속 걷고 있다.

주제가 다소 암울하다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과거사와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가지고 유쾌하게 쓰였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읽을거리로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밤하늘 별로 반짝이는 나의 X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