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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09. 2022

밤하늘 별로 반짝이는 나의 X에게

반려교감


나의 첫 번째 반려견은 우연히 길에서 만나, 16년을 함께 살았고, 2년 전 강아지 별로 먼저 떠났다. 내가 똘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04년, 첫 미용 후
사랑하는 똘이야, 나한테 와 줘서 고마워.

지금 우리는 이별해야 해, 그래서 난 사실 많이 슬퍼. 그치만, 널 만나고, 같이 산책하고, 웃고, 울던 모든 순간이 좋았.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고 기억할게. 고마워, 사랑. 다음엔 내가 꼭 널 찾아갈게.


2004년 1월 19일, 눈 오는 밤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비릿한 냄새가 훅 방안으로 침습했다. 뒤이어 '쿡쿡쿡' 거칠게 공기를 들이마시며 냄새를 맡는 소리가, 노르스름하고 함부로 자란 털부숭이가 푸르르 연신 몸을 떨며  들어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털과 냄새가 풀썩였다. 동물의 거칠고 생경한 존재감에 차마 손을 뻗어 만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후각, 시각을 강탈하는 낯선 감각에 저절로 몸이 뒤로 물러났다.

 

-아유, 참 작고 예쁘지.


내 거부감의 눈빛을 읽은 건지, 강아지를 데리고 온 동생과 동생 친구가 너스레를 떨었다. 추운 겨울밤 지하철로 1시간, 버스를 갈아타고 40분, 도합 1시간 40분을 걸려 다녀온 길이었다. 안양천 가 횟집에서 잔반을 주워 먹으며 배회하던 유기견을 구조하여 데리고 온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추운데 고생했어. 어서 안으로 들어와' 소리를 차마 하지 못했다.


-얘 뭐야? 이제까지 했던 말이랑 다르잖아!


벌써 18년 전, 까마득한 그때, 동생과 내가 20대였던 시절,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동생은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동생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알게 된 지인의 권유로 유기견을 키우며 어떨까 나에게 물어왔다.


-언니, 개가 진짜 순하고 착하대. 크기는 요렇게 작고(주먹 3개만큼), 털도 안 빠지고, 밥도 조금 먹고, 대소변도 정해진 곳에 잘 본대. 짖지도 않고. 그리고 진짜 이쁘대.


동생은, 지인이 불러주는 대로 말했다. 동생과 나는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시골에서 자랐고, 늘 동물과 함께 했다. 우리 주변에는 특히 늘 개가 있었다. 재동이, 검둥이, 흰둥이, 그리고 그 개들의 주니어들. 개들과 같이 뛰어놀고, 쓰다듬고, 잔반을 챙겨줬지만 방에서 같이 자고, 먹는 건 아니었다.


-그, 그래? 그렇다면 괜찮겠지.


재동이, 검둥이, 흰둥이와 달리 품종견이며(먼저 밝히자면, 품종견과 비품종견의 동물권은 다르지 않다), 작고, 조용하고, 조금 먹고, 정해진 곳에 싸는 '인형' 같은 아이라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그 땐 그랬다. 당시엔 '반려동물'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애완견'이라 불렀다. 하나의 생명체이자, 종의 특징에 따른 생활습관, 욕구가 있는 개별적인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컨셉 자체가 없었다.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몰랐다.


어물쩡, 준비 없이, 아는 거 없이, 개념 없이, 그렇게 똘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만난 똘이는 지인의 묘사와는 좀 달랐다. 눈이 튀어나오고 코가 눌린 페키니즈 종인 똘이는 동종 중에서는 자이언트였다. 6~7개월령으로 추측되던 당시에 몸무게가 7킬로그램에 육박했고 그 뒤로는 더 커서 9킬로그램까지 나갔다. 털갈이 중이라 맹렬하게 털을 뿜어댔으며, 끊임없이 '킁, 훙, 쯥, 켁, 쩝, 끄아아앙' 소리를 냈다. 한동안 길거리 생활을 하며 관리가 안 되어 그런지 냄새도 심했다. 무엇보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대략 난감했다. 후회와 갈등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못 키우겠다. 데려가라고 말해야 해.


- 아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좀 있으면 지하철 끊길 거 같아서요.


우리에게 똘이를 소개해 준 지인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까지 '복실이'라 불렸던 똘이는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다인 동생과 나의 누추한 자취집을 킁킁거리며 탐색했고, 지인이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거실 바닥에 그대로 오줌을 갈겼다.


-아, 악! 얘 오줌 쌌다.


동생 지인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한 밤, 나의 비명이 층간소음을 만들어 냈고, 나는 입틀막을 하고, 눈에서는 레이저를 쏘며, 손으로는 걸레를 찾아 개의 오줌을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 가만히 팔짱을 끼고 개를 지켜보니, 1시간 정도 부산스럽게 공간을 탐색하고, 소음을 만들고, 소변을 보고, 물을 찹찹찹 마시는가 하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와 동생으로부터 대각선 거리(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낮게 웅크리고 앉아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눈은 충혈되었고 호흡은 가빴다. 저 개도 우릴 싫어하나 봐. 그러면 우리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내가 동생에게 속삭였다.


강아지의 바디랭귀지와 감정 해석도 내 멋대로. 내 중심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똘이는 많이 불안했던 거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유난히 추운 겨울밤, 길바닥에 버려져 헤맨 고단한 날들에 이어 마침내 어떤 집에 왔는데 공간도, 사람도 낯설었다. 게다가 인간들은 자기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바디랭귀지를 보이니 착잡하고 침울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똘이의 그 불안한 마음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어서 와, 널 기다렸어. 여기서 편하게 지내'라고 말해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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