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읽기
여행 말미에 서로가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것은 어엿한 하나의 절차가 되었다. 같은 상황, 비슷한 뷰에서 찍은 여러 사진이 30개씩 끊어져 단톡방에 올라온다. 다운, 잠시 웃음, 선별, 보정, 업로드. 이상할 것 없는 좋은 여행이다.
지금 나는 독서모임 워크숍을 가장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자라온 지역, 이미 여러번 와본 공간으로 돌아오는 게 어떻게 여행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일상을 떠나온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글쓰기 워크숍을 위한 책들 중 사라가 가져온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를 집어들었다. <플라톤에 관하여>라는 첫 파트를 읽는다. 그렇게 별다를 것 없던 나의 여행은 갑작스레 독특한 활동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진이 현대의 가장 독특한 활동, 즉 관광과 나란히 발전한 것도 그래서이다. 현대가 시작되자 평소의 생활 공간을 떠나 정기적으로 짧게 여행이 다니는 사람들이 유례 없이 많아졌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여행을 떠나면서 카메라를 갖고 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다. 사진이야말로 자신이 진짜로 여행을 떠났고, 일정대로 잘 지냈으며, 정말 즐거웠다는 점을 확실히 증명해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26p
우리는 여행 중이었고,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여행과 사진에도 무의식적으로 이런 의도가 깃들었을까? 작은 의문이 일어 워크숍의 주목적이었던 글쓰기 주제를 <워크숍 사진일기>로 정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미지 홍수의 시대, 당연해져버린 '이미지'에 주목하며 이 짧은 여행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여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아니면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보통은 이 두 순간을 여행의 시작점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시작점을 '첫 사진을 찍는 순간'으로 가정해보면 어떨까? 실제 여행은 특정한 지점 없이 어느 순간 시작되어 있지만, 시간을 돌이켜 떠나는 추억여행은 보통 '첫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
여름 휴가의 시작점을 돌이켜보자. 그래, 버스 시간 20분 전에 터미널에 모이기로 했고, 이 여정에 익숙한 나는 게으름피우다 10분을 늦었다. 무거운 짐을 든 채 버스에 타 맨 뒷자리로 갔다. 천장 짐칸에 가방을 올리려 애쓰자 버스 기사는 빈 자리가 많으니 아무 곳에나 두라고 했고 이내 버스는 출발했다. 하지만 여행의 시작은 아직이다. 나는 이동시간 동안 헤드셋을 끼고 진격의 거인을 봤는데, 그건 어젯밤에도 했던 일이었다. 여전히 일상 안. 이처럼 버스의 출발은 여행의 시작과 별 관계가 없다.
여행은 가리비 칼국수 국물을 잔뜩 튀기며 시작한다. 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먹은 뒤, 국자를 냄비에 넣어둔 채로 말이다. "아, 사진 찍는 거 깜빡했다!" 그리고 찰칵. 이때 찍은 가리비 칼국수 사진을 통해 나는 언제든지 이 여행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여행의 시작은 가리비 칼국수가 아니더라도, 기억은 가리비 칼국수 사진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한 사진 속 그 무엇인가의 침묵, 바로 그것이 사진을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47p
오늘날 사진을 말할 때 SNS 얘기는 필수다. 어딘가에 올리지 않을 거면 사진을 왜 찍느냐는 순박하고도 잔혹한 물음처럼, 우리네 사진의 종착지는 보통 자신의 SNS이기 때문이다. 단순 서비스를 넘어 사회 현상이자 이미지 신드롬의 배경이 된 인스타그램이 대표적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왜 올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진을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소위 '인스타 감성'을 내기 위해서는 가장 이미지적인 이미지를 선별해야 한다.
수십 번의 셔터음, 몇 번의 선별 끝에 택하는 마지막 사진은 나의 하루를 증명하는 사진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사진이다. 그를 위해선 흐트러진 이미지, 무의미한 이미지, 확대된 이미지 등이 적합하다. SNS에는 너무 많은 정보를 드러내면 안 된다. 너무 많은 정보, Too Much Information은 사생활 노출의 위험이 있을 뿐더러, 조금도 힙하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지만 그렇기에 정보가 아닌 '이미지'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사진. 나는 이것이 수전 손택이 말한 '침묵'하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가볍게 생각할 때, 이미지와 텍스트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표현 양식으로 여겨진다. 텍스트의 시대가 있었고, 이미지의 시대가 이어졌다는 전후관계를 파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볼 때면, 우리 시대의 텍스트란 이미지에 잡아먹혀버린 게 아닐까 싶다. 독서는 그자체로 거대한 이미지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에는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도서의 내지 사진이 난무하지만, 그들이 찍어 올리는 건 '책을 읽고 있다'라는 사실인 듯하다. 그때 텍스트는 그림문자로써 기능한다. 읽지 않고 읽히지 않는다.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잉크일 뿐.
'독서모임' 멤버들끼리 떠난 우리의 여름 휴가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진 책상 사진은 우리가 단순한 휴가를 떠난 게 아님을 증언한다. 나는 이처럼 내가 '진짜' 독자처럼 보이는 사진을 좋아한다. 음울한 서적 내지를 플래시 터뜨려 찍어 올리는 '가짜'들과는 달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책상 위의 모습은 막 찍었는데 멋지다는 이미지를 자아낸다. (그렇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혹은 정성들여 찍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세상에 '노력했는데 구림'만큼 힙하지 않은 것도 없으니까.
SNS에 올릴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건 아무래도 얼굴이 나온 사진이다. 우리가 의도하는 모든 이미지들은 결국 셀프-브랜딩을 위해서이니까. 특히나 여럿이 나온 인물 사진을 올릴 때는 보다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서로의 손에 돌아가며 카메라가 쥐어지기도, 하나의 손에 여러 개의 카메라가 돌아가며 쥐어지기도 한다. 찰칵. 선정. 보정. "올려도 돼?", “내 얼굴은 내가 할래.” “내 얼굴은 크롭해줘.” “됐어?” "응". 업로드. 이처럼 사물을 찍을 때보다 몇 배는 귀찮고 곤란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꼭 여행에서 단체샷을 남긴다.
그 이유는 결속력에 있다. 여행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를 뛰어넘어 '누구와'라는 대목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단체사진은 '누구'와의 결속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그때 그들과 어땠건, 지금 그들과 어떻든 간에 함께 모여 웃음짓는 우리들의 사진은 과거를 '좋았던 것'으로 만들어준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주는 마력을 알기에, 우리는 과거가 그다지 좋지는 않음을 알면서도 언제나 사진의 유혹에 속아 넘어간다.
이런 사진은 일단 찍히고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 안에 어떤 모습이 찍혀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25p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여행 둘쨋날 밤이다. 같은 책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각자의 글을 완성하는 중이다. 2박 3일 간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다. 첫째 날은 밖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둘째 날은 책을 읽으며 글을 썼다. 이제는 맺음글만이 남았다.
말하기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글을 쓰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미지도 사진도 아니고 '지금의 우리'였다. 우리의 여행은 어떤 기록으로 남게 될까, 훗날의 나에게 지금의 기억을 넘겨주고 싶었다. 나는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사진 촬영 또한 구슬을 모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소실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조각내어 구슬을 붙잡는 것이다.
고작 네 장의 사진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추억을, 감정을 붙잡았을지는 모르겠다. 왜곡하거나 과장해 미화된 부분도 분명히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순간의 좋음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신, 다음 워크숍이자 여행을 기약하려 한다. 겨울이 올 것이고, 그때도 사진을 찍고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밤이 깊었다. 꼭 이 문장으로 끝을 맺어보고 싶었다.
여름이었다.
2021.08.21. pm11:10
『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 이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