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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Aug 11. 2023

나는야 진상 고객 처리 담당

 나는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 처리 담당이다. 담당이라고 해서 내가 엄청나게 고객 응대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다른 직원들에 비해 그런 고객들의 민원을 잘 처리하는 편이다. 여러 종류의 진상 고객들이 있는데 주로 소리 지르고 화내는 고객들의 민원을 잘 해결한다. 주위 직원들도 나의 그런 점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보면 내가 그런 쪽으로 능력이 있나 보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고객, 혹은 쉽게 화를 내는 고객을 응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고객들을 응대할 때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일종의 노하우랄까. 그중에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듣기"다. 혹자들은 경청이라는 말을 쓰던데 미안하지만 나는 고객의 말을 듣는 것이지 경청까지 할 생각은 없다. 무슨 성현의 말씀도 아니고 경청까지야. 또 누군가는 '들어주기'라고 하던데, 내가 무슨 엄청난 아량을 베푸는 것도 아니고 들어주긴 뭘 들어주는가. 그냥 듣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 친구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듣듯이 마음을 비우고 듣는 . 생각보다 이 방법은 효과가 좋다.


 "130번 고객님!"

 중년의 여성분이 오셨다.

 "나 이것 좀 봐줘요. 아니, 이런 문자를 나한테 왜 보내는 거예요?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대체!"

주름진 흰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 오른손에는 엄지손가락보다 큰 보석이 박힌 반지를 하고 있었다. 귀에는 링 귀걸이가 걸려있었는데, 흥분해서 고개를 크게 흔들 때마다 귀걸이도 같이 연신 흔들거렸다. 내가 번호를 불러 자리로 걸어올 때부터 이미 그녀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고객은 격적으로 언성을 높여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나도 사기당한 거라 돈이 없는데 뭘 더 어쩌라는 거냐고! 돈이 있는데 내가 안 갚겠어? 어?"

 아니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화가 난 것은 표정만 봐도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앞뒤 설명을 다 생략하고 저렇게만 말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실제로 말했다간 일이 더 커질 뿐이다.

 "아~ 고객님, 문자를 받으셨구나. 제가 혹시 무슨 문자를 받으신 건지 볼 수 있을까요? 무슨 내용인지 확인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것 봐봐요. 이 문자. 내가 이거 보내지 말라고 저번에도 얘기했잖아요!"

 나는 태어나서 이 고객을 그날 처음 봤다. 저번에도 얘기를 했다니? 무슨 말인지..... 고객은 이야기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내게 보여줬다.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는 중에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이 다가왔다.

 "고객님, 저 기억하시죠? 제가 그때 말씀 다 드렸는데 또 이렇게 소리 지르시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옆의 동료가 그 고객을 일전에 응대를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나도 사기당한 거라 돈이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자꾸 이렇게 보내면 어쩌자는 거냐고! 사람 신경 쓰이게!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뭐야!!"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저희도 저희가 할 일 하는 거라고요. 그게 저희 일이에요."

 "그래서 보내지 말라고 했잖아 이런 문자! 아니면 은행에서 해결을 해주든가!"

 "아니 그걸 저희가 왜 해줘요! 은행에서 고객님이 사기당하신 걸 배상을 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해결도 안 해줄 거면서 왜 자꾸 이런 거 보내냐는 말이야! 나보고 어쩌라고!"

 동료 직원의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당장 고객을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고객이 사기를 당했었고 이 때문에 돈이 없어 카드값을 연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행에서는 보통 카드가 연체되면 고객에게 연체 사실을 문자로 알려주는데 그걸 받은 고객이 불쾌해한 것이다. 사기당한 것도 속상하고 연체된 것도 짜증 나는데 자꾸 연체됐다고 문자까지 오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얼른 중간에 끼어들어 말했다.

 "아! 고객님, 이 카드 연체됐다고 문자 간 것 때문에 그러신 거였군요? 이거 신경 안 쓰셔도 되는 건데. 연체를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계속 문자를 보내니 기분이 나쁘셨겠어요."

 "그렇죠! 기분 나쁘지. 내가 분명히 상황도 얘기했는데 계속 이러면 사람이 짜증 나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한두 번도 아니고. 짜증 날 법도 하죠."

 "그니까요! 아니 내 상황을 다 얘기했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네 맞아요."

 "안 갚겠다는 게 아니라 못 갚는다는 건데 이렇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해요?"

 "그러게요. 그 문자가 고객님을 그렇게 만들었네요."

 "맞아요! 내가 이것 때문에 오죽 신경 쓰이고 화가 나면 이렇게 찾아왔겠어요."

 "그렇죠. 신경이 엄청 쓰이셨으니까 오신 거죠."

 이쯤 되니 고객의 화도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았다. 언성이 낮아졌고 표정도 많이 풀어졌다. 그때 이야기했다.

 "고객님, 많이 신경이 쓰이셨죠? 죄송합니다. 이 문자 뭐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냥 지워버리셔도 됩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연체된 내용을 꼭 고객님께 알려드리게 돼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낸 거니까 기분 푸세요. 다음부터는 그런 문자 가더라도 알고 계신 거면 무시하셔도 돼요. 돈 생기시면 카드값 바로 내실 거잖아요?"

 "그럼, 당연하지. 내가 생기면 갚지 그럼 일부러 안 갚겠어요?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고객은 오해를 풀돌아갔다. 그러자 조금 전에 옆에서 고객을 응대했던 동료가 와서 이야기했다.

 "아니 왜 내가 얘기하면 화내고 네가 얘기하는 건 듣냐?"


 감정적으로 흥분한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두 가지 조건이 수반돼야 한다.

 첫째, 고객의 말을 평가하지 말 것.

고객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객이 잘못 행동했거나 고객이 알고 있는 정보가 틀린 경우가 있다. 그걸 듣고 있노라면 말하는 중간에라도 얼른 잘못된 부분을 정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고객의 말을 평가해 잘잘못을 따지거나 중간에 고객의 말을 정정해서는 안된다. 말이 다 끝나고 나서라도 "그것은 고객님께서 잘못하셔서 그렇다." 혹은 "고객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거다. "라고 평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고객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직원에게 얘기하는 것이지,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평가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이 자신의 요구를 얘기했는데 직원이 그렇게 응대하면 화를 돋우는 꼴이 돼 외려 더 큰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성적으로 대화를 풀어나가고 싶다면 고객의 말에 수긍해 화를 내는 고객의 감정을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다.


 둘째, 적절한 리액션을 해라.

 들으라고 했다고 입 꾹 닫고 돌부처처럼 가만히 듣기만 하면 고객으로 하여금 직원이 고객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아무 반응 없이 듣기만 하는 것은 격한 상대방의 감정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절한 리액션을 통해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소리 내어 답변하는 등 겉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만약에 위에서 언급한 고객에게 '우리가 문자 보낸 것은 정당한 것이니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여기 와서 화를 내느냐.'라고 계속 말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객의 민원은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기는 고객의 말을 듣고 있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말을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속으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직에 종사한다면 한 번쯤 해볼 것을 추천한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친구가 최근 겪은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앞에 있는 고객의 말을 들어보자. 그리고 중간중간 그 사연에 공감하는 리액션 첨가해 주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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