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생각 #60
나는 타고난 문과생이어서 암기과목에 남들보다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고, 단지 남들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외우려고 노력하는 근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나는 내 기억력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류의 콘텐츠들을 보면 하나같이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나는 딱히 그런 말들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계속해서 메모하지 않았다.
그러다 메모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개인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일주일에 3회 이상의 글쓰기를 하기로 마음먹으니 자연스럽게 글감이 필요해졌고, 매번 글감을 머릿속에서 짜내려고 하니 금방 글감이 동났다.
나는 그래서 그때부터 내 기억력을 믿지 않기로 했다. 글감이 될만한 것들을 발견하거나 머릿속에서 떠올랐을 땐 바로바로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글쓰기의 생산성이 200% 이상 향상됐다.
컴퓨터는 비휘발성 메모리인 하드디스크(혹은 SDD)와 휘발성 메모리인 RAM으로 저장 방식이 구분된다. 이를 우리 인간에 빗대면 하드디스크는 '메모'가 되고, RAM은 '기억'이 된다. RAM은 컴퓨터가 켜져 있는 동안에 여러 프로그램들을 활용하여 작업하는데 즉각적인 도움을 준다. 마치 우리가 전화번호 7자리를 잠깐 동안 외워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다만, 컴퓨터가 꺼지면 이때 수행했던 작업내용들이 모두 사라진다.
반면에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것은 컴퓨터를 껐다 켜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전화번호 7자리를 단순히 잠깐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메모해두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컴퓨터로 작업할 때 Ctrl+C, V로 문서 편집만 하는 게 아니라 꼭 Ctrl+S를 통해 하드디스크에 저장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메모를 하기 전까지는 RAM만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재부팅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삶 말이다. 컴퓨터를 할 때는 하드디스크를 잘 이용하면서 왜 일상생활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걸까. 나는 그간의 실수를 반성하고는 그 뒤로 주욱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고 7년째 그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습관 덕분에 내 삶의 저장 메모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