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나'가 아닌 '남'이 좋아해야 한다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의 생각 | 02
"나도 브랜드나 하나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자연스럽게 "뭘 팔아볼까?"를 고민하게 됐다. 그렇게 이틀 정도 고민한 끝에 나는 내 취미와 맞닿아있는 아이템을 팔기로 결정했다. 가령, 내 취미가 골프라면 골프용품 브랜드를 만들어서 팔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브랜드마케터로 일하면서 쌓아온 내 안목과 취향을 믿는 편이었고 이를 브랜드의 형태로 잘 녹이면 어떤 아이템이든 잘 팔릴 것이라고 확신했다(원래 아는 게 없으면 용감하다).
그렇게 아이템 선정부터 브랜드 네이밍 그리고 제품 제작까지 내 취향을 꾹꾹 눌러 담아 브랜드를 일사천리로 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래도 브랜드마케터로 먹은 짬밥이 있어서 그럴싸해 보이는 브랜드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졌다.
브랜드를 론칭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소액으로 광고를 집행했는데 웬걸,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첫 주문이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일 주문건수가 10건을 넘어가더니 점점 혼자서 택배를 포장하기 버거울 정도로 주문량이 늘어났다.
장사가 잘 되니 초도물량이 금방 동이 났고 재고량을 늘려도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서 주문 예약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한마디로 대박이 난 것이다. 그렇게 첫 제품이 잘 되자 나는 자신감이 생겼고 사업자 대출을 받아서 마련한 자본으로 유사한 디자인의 시리즈 제품을 연달아 출시했다. 그리고 다행히 추가로 출시한 제품들도 첫 제품만큼 잘 팔렸다.
그렇게 브랜드를 론칭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연매출 3억 원을 달성했다. 직장인일 때는 감히 생각조차 못했던 액수였다. 물론 제품 원가랑 세금을 떼고 나면 그 돈이 오롯이 내 몫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걸 감안하고 순수익만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레드오션 = 블루오션의 증거
기대 이상의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연매출 3억 원을 빠르게 달성하고 나니 6억 원은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기대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연매출 3억 원을 달성한 지 불과 1개월이 지나자 주문량이 점점 줄어들었고 신제품을 출시해도 하향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경제 탓, 날씨 탓을 하며 외부 요인에서 문제를 찾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게 경쟁사는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왜 갑자기 제품이 팔리지 않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내 브랜드 제품의 컨셉이 타깃 하는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내가 앞서 얘기했던 장사가 여전히 잘 되는 경쟁사는 대부분 내 브랜드와 컨셉이 다른 브랜드였다. 반면에 내 브랜드와 유사한 컨셉의 경쟁사들은 똑같이 매출이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 클래식 컨셉 - 전체 소비자 중 75% 규모
B. 모던 컨셉 - 전체 소비자 중 10% 규모 (내 브랜드가 포함된 시장)
C. 하이엔드 컨셉 - 전체 소비자 중 10% 규모
D. 초럭셔리 컨셉 - 전체 소비자 중 5% 규모
창업 초기에 내가 유난히 자신이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 취향에 맞는 B 컨셉의 아이템을 만드는 브랜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시장이 블루오션이라 여겼던 점도 컸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B 컨셉에 브랜드가 많이 없는 것은 B 컨셉이 블루오션이 아니라 레드오션이라는 것의 방증이었다. B 컨셉을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사줄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다들 뛰어들지 않았던 것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블루오션이라고 자신 있게 뛰어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경쟁사가 없으면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블루냐 레드냐는 경쟁사의 수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경쟁사의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수였다. 경쟁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장의 소비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다는 것은 그 시장이 오히려 블루오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의 방증인 것이다.
나는 여러모로 큰 충격을 받았다. 블루오션이냐 레드오션이냐를 떠나서 어쨌든 창업을 하기 전에도 자주 즐겼던 취미였기에 누구보다 이 카테고리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대중의 취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나는 고작 이 카테고리에서 10%의 소비자가 가진 취향밖에 몰랐던 것이다. 그게 마치 100%의 취향이라고 여기면서.
생각보다 많은 창업자가 이처럼 "내가 좋아하니까 남들도 좋아하겠지?"의 오류를 범한 탓에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그 끝에 폐업을 한다. 창업을 하면 내가 대표이니까 브랜드가 오롯이 내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브랜드는 '나'가 아닌 '소비자'의 것이 되어야 성공한다. 소비자가 "My Brand"라고 얘기해 줘야 성공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지 대표가 자기 스스로 "My Brand"라고 백날 외쳐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가 되려면 항상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 소비자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좋다.
날아다니는 천재도 시장(Market)은 이길 수 없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밈인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시장(Market)에게 처맞기 전까지는"은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회자되는 말이다. 주식 시장에서는 시장의 변동성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마케팅 사이드에서는 아무리 그럴싸한 기획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마케팅을 해도 결국 시장의 소비자들은 마케터의 예상을 비껴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말이 창업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구나 창업을 하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마치 자신이 이 시장의 전부를 알고 있는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다. 그래서 내가 창업하면 모든 소비자가 나의 제품을 사줄 것만 같다.
하지만 창업 후에 시장에게 두들겨 맞으면(소비자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면) 얼마 안 가 자신이 정말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모든 창업자는 시장(Market)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특히 "내가 다 안다"는 생각은 가장 위험하다. 시장은 그런 생각을 하는 개구리부터 골라서 혼내준다. 그래서 아마 나를 가장 먼저 혼냈....
천재 + 작은 시장 or 작아지는 시장 = 실패
바보 + 큰 시장 or 성장하는 시장 = 성공
천재 + 큰 시장 or 성장하는 시장 = 대박
단언하건대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브랜드는 없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선택받고 그들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숙명을 가진 채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선택해 줄 소비자가 없는 시장에서 태어나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애플,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도 이런 숙명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타깃하고 있는 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때 단순히 내 주변에서 자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내가 내 취향이 대중의 취향과 동일하다고 여겼던 것은 내 인스타 피드에 알고리즘에 따라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노출이 됐었기 때문이다(이런 어리석은...).
꼭 알고리즘의 영향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는 편향성을 가지기 때문에 단순히 정성적으로 "요즘 많이 보여서"와 같은 생각으로 시장 규모를 예측하면 절대 안 된다(무인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으면 거리에 있는 무인카페만 보이고 그러면 무인카페가 대세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시장 규모는 항상 정성적인 예측이 아닌 정량적인 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파악할 것!" 이를 명심하자. 아니 그보다 "시장을 다 안다고 절대 생각하지 말고 항상 겸손할 것"을 더 명심하자.
소비자 수가 적다고 안 좋은 시장일까?
시장 규모를 파악할 때 소비자 수가 적다고 무조건 안 좋은 시장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앞서 내 브랜드의 컨셉이 전체 소비자 중 10% 규모의 카테고리에 속했다고 얘기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됐던 것은 전체 매출의 규모로 봐도 10%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 클래식 컨셉 - 전체 매출 중 40% 규모 (전체 소비자 중 75% 규모)
B. 모던 컨셉 - 전체 매출 중 10% 규모 (전체 소비자 중 10% 규모)
C. 하이엔드 컨셉 - 전체 매출 중 20% 규모 (전체 소비자 중 10% 규모)
D. 초럭셔리 컨셉 - 전체 매출 중 30% 규모 (전체 소비자 중 5% 규모)
즉, 내 브랜드의 컨셉이 속한 시장은 소비자 규모만 적은 게 아니라 제품의 가격대도 낮은 편이어서 매출 규모까지 작다는 게 치명타였던 것이다. 하지만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D 컨셉의 경우 소비자 규모는 5% 이지만 제품 가격대가 높아서 전체 매출 비중은 30%나 차지하기 때문에 이 시장은 레드오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처럼 객단가가 높은 시장에 진출해서 자리만 잘 잡으면 남들이 10개 팔 때 1개만 팔아도 되기 때문에 매출 대비 품이 덜 들어가서 사업체로 운영하기에 더욱 수월한 장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규모를 파악할 때는 단순히 소비자 수만 파악하지 않고 해당 시장의 소비자들이 객단가로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 그들의 구매 주기(1년에 몇 회 구매하는지)는 어느 정도 인지 등을 유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