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판매'가 아닌 '관계'다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의 생각 | 03
마케팅을 하다 보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용어가 타깃, 타기팅이다. 내 물건을 구매해 줄 만한 사람을 표적(Target)으로 삼고 그 표적을 대상으로 광고를 하는 것(Targeting)을 의미하는데 용어의 어감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마케팅 방법론은 고객을 철저히 '내 물건을 구매해 줄 소비자'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때문에 오늘날 타기팅 기법은 고객에게 외면받기 좋은 마케팅 방식이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우선, 이 마케팅 방법론에 대해서 더 설명하자면 타기팅 기법을 활용할 때 마케터는 타기팅 할만한 소비자 그룹을 정의하는데 "24~34세의 사무직 여성이며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마시고 퇴근 후에는 요가로 건강 관리를 한다. 그리고..."와 같이 우리 제품을 사줄 만한 고객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지를 연령, 직업, 좋아하는 브랜드, 취미 등을 통해 표현한다.
마케터들이 이처럼 타깃 그룹을 세부적으로 정의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마케팅 예산 효율화'를 위해서다. 타깃 그룹을 설정하면 그들이 주로 어디에 모여있는지가 보이고 그럼 그 공간 혹은 온라인 플랫폼을 대상으로만 광고를 집행하면 되기 때문에 예산을 크게 절약할 수 있게 된다.
가령, 내가 고급 분유를 판매하고 있다면 고급 분유가 필요한 타깃(만 1세 미만의 아기가 있는 집의 부모 중 연소득이 8000만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설정하고 그들을 대상으로만 광고가 노출되도록 비용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때 만약 타깃을 설정하지 않고 광고를 집행하게 되면 어떨까? 아기가 없는 사람들 즉, 분유를 살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사람들에게도 광고가 노출되어서 비용 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타기팅 기법은 마케팅 예산을 효율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나 역시도 브랜드를 만들고 제일 먼저 했던 고민이 "누구에게 팔아야 잘 팔릴까?"였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타기팅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 브랜드가 브랜드로서 오랜 기간 존속하지 못하고 망하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이 바로 이 '타기팅 기법'이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서론에서 얘기했던 '타기팅 기법이 오늘날 고객들에게 외면받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그 누구도 '타깃'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타기팅 기법이 고객들에게 외면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타깃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누군가의 표적이 된다는 것인데 대체 이 세상 사람 중 누가 스스로 타깃이 되고 싶어 하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소비자는 VIP가 되길 원하지, 타깃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타기팅 기법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고객은 결국 자신을 VIP처럼 생각해 주는 브랜드로 발길을 옮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객을 타깃으로 생각한다고 누가 소문을 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고객들은 그런 브랜드를 귀신같이 알고 외면할 수 있는 것일까?
타기팅 기법을 베이스로 마케팅을 하게 되면 광고 카피를 비롯한 브랜드의 모든 전반적인 메시지가 "당신이 원할만한 물건을 준비했으니 내 물건을 사주세요"가 되는데 이와 같은 브랜드의 속내가 고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내 브랜드도 그랬다. 항상 제품의 특장점을 내세우거나(이 제품은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욱 튼튼한 소재가 사용됐습니다) 가격적 메리트를 강조(다시는 없을 특가)하는 등 모든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판매'에 집중됐다. 그렇다 보니 판매가 끝나면 그 관계는 대부분 끝났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만날 때마다 자기 물건을 사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과 오랜 기간 알고 지내고 싶겠는가? 이게 바로 타기팅 기법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필패하는 이유다. 몇 번은 내가 필요한 물건이니 사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는 필요가 없어지면 가장 먼저 정리하는 관계가 된다.
내 브랜드가 연매출 3억 원을 달성하는 동안 무려 1만 명이 넘는 고객을 만났는데 그중 단 10명의 팬도 만들지 못했던 것은 애초에 내가 그들에게 '판매'를 목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 팔아야 잘 팔릴까?"라는 고민으로 접근한 브랜드인 것을 그들도 잘 알기에 철저히 "어떤 물건을 사야 가성비가 좋을까?"로만 응답해 준 것이다.
그럼 대체 사람들은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줬을 때 자신이 타깃이 아니라 VIP가 됐다고 느낄까? 그것은 바로 '소속감'이다.
좋은 브랜드의 조건은 '좋은 제품'만이 아니다.
과거에 제품의 품질 편차가 심하고 브랜드의 수가 적을 때는 '좋은 제품을 필요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브랜드로서의 역할이 충족되었다. 이 시절에 고객들은 좋은 제품을 판매하기만 하면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타기팅 기법이 오랜 기간 꽤 좋은 마케팅 전략으로 인정받아온 것도 바로 이러한 시장 환경 덕분이었다. 이때는 판매가 곧 브랜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웬만한 브랜드의 제품 품질이 상향평준화되고 선택지도 너무 많아진 요즘에는 단순히 좋은 품질과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브랜드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이 가치가 바로 '소속감'이다.
마크 W. 셰퍼는 자신의 저서 <인간적인 브랜드가 살아남는다>에서 오늘날 브랜드가 고객에게 소속감을 느끼도록 해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관계의 질이 수십 년 동안 꾸준히 하락해 왔다는 증거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1980년대에는 미국인 중에서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20%였다. 그러나 지금은 40%가 그렇다고 답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은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인간의 욕구와 현실 사이에는 충족되지 않는 격차가 존재하며 그 격차는 심각한 수준으로 더욱 벌어지고 있다. (중략) 소속감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요소이다. 최고라고 하는 브랜드는 고객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간을 소유하면서 그 속에서 고객이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위대한 기업은 기꺼이 자사를 좋아하는 팬들의 팬이 되어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고객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역할은 '제조자&판매자'가 아니라 '커뮤니티 운영자'에 가깝다. 예컨대, 할리 데이비슨은 터프가이 커뮤니티의 운영자이고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주의자 커뮤니티의 운영자인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같은 가격에 더 좋은 성능의 오토바이가 시장에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이유는 할리 오너스 그룹(Harley Owners Group, HOG)이라는 커뮤니티에 소속될 수 있고 그곳에서 나와 유사한 취향의 터프가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오로지 할리 데이비슨의 오너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파타고니아의 옷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서 비싼 편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파타고니아를 입는 이유는 파타고니아를 단순히 패션 아이템으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를 입는다는 것은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이고 나는 이 브랜드의 옷을 입을 때마다 친환경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만약 할리 데이비슨과 파타고니아가 고객을 타깃으로 생각하면서 가격, 성능, 혜택만 주야장천 얘기했다면 이 브랜드들은 내 브랜드가 그랬듯 2년 만에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객들이 VIP로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가치를 공유했고 그 덕분에 2년이 아닌 2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브랜딩은 '판매'가 아닌 '관계'다.
사람들은 종종 마케팅과 브랜딩을 혼동하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격언 중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를 간결하게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케팅은 파는 것이고 브랜딩은 남기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마케팅은 파는 것이다. 마케팅을 잘한다는 것은 최소 비용의 마케팅으로 최대의 매출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브랜딩을 잘한다는 것은 고객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를 의미한다. 그것은 브랜드의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브랜드 철학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브랜드의 무언가가 고객에게 각인된다면 그것은 브랜드의 무형 자산이 쌓이는 것을 의미하고 이렇게 무형 자산이 쌓인 브랜드들은 그렇지 않은 브랜드들보다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가 수월해진다.
앞서 할리 데이비슨과 파타고니아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좋은 브랜드는 마케팅보다 브랜딩을 잘한다. 그들은 고객에게 얼마나 팔릴지보다 고객에게 무엇을 남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진심 덕분에 고객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판매에만 집중한 브랜드들보다 더 판매가 잘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나처럼 냄비 속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누구에게 팔아야 잘 팔릴까?"가 아니라 "누가 우리 브랜드에게 공감해 주고 커뮤니티에 참여해 줄까?"를 고민해 보길 바란다. 브랜딩은 '판매'가 아닌 '관계'이니까.
오늘 당장 제품을 1000개 팔아도 1명의 고객과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브랜드보단 제품을 10개밖에 못 팔아도 1명의 고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지향해야 한다. 결국 10년 뒤에 살아남는 것은 후자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