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브랜딩한다는 착각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의 생각 | 05
디자인과 브랜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물, 사람, 브랜드 그게 무엇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처음 본 것의 성격이나 인상을 눈에 보이는 정보로만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가 처음 만나는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려면 디자인적으로 다른 브랜드와 차별성이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 브랜드 관계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에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디자인에 많은 품을 들이는 편이다.
그리고 첫인상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고객과 신뢰를 쌓기 위해서도 디자인은 중요하다. 브랜드에게 디자인은 일종의 옷차림이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수트를 입고, 음악 프로듀서들이 나이를 먹어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힙한 옷을 입듯이 브랜드도 자신의 속성에 맞는 디자인을 꾸준히 입음으로써 고객에게 일관성과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인이 브랜딩을 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가끔은 그게 브랜딩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디자인만 잘해도 고객들이 사줄 것이란 착각으로 번진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디자인은 브랜딩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브랜딩의 수단일 뿐이다.
디자인으로 브랜딩 한다는 착각
내가 브랜드를 만들고 나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은 디자인이었다. 일단 뭐라도 빨리 만들자는 마음에 급하게 브랜드를 론칭했던 터라 여기저기 디자인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브랜드마케터로 일할 때 자주 디자인 툴을 다뤘었기 때문에 디자인 소스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일을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브랜드 컬러, 브랜드 폰트 등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모든 디자인 요소들의 톤 앤 매너를 맞추고 나니 내 브랜드가 나름 퀄리티 있는 브랜드처럼 보였고 그러자 내 안에서 브랜드뽕(?)과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창업한 카테고리의 플레이어들은 유난히 디자인을 못했다. 제품 디자인, 상세페이지, 웹사이트 등 각 디자인 요소들의 톤 앤 매너가 중구난방이었고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이에서 내 브랜드가 '군계일학'처럼 돋보일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내 브랜드는 2년을 못 가 폐업했지만 그 브랜드들은 현재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돌이켜보니 그들은 디자인을 못하는 게 아니라 덜 신경 쓰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판매하는 제품의 카테고리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보다 기능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용할 수 있는 리소스를 기능성을 업그레이드하는데 더 집중적으로 투여하고 있었을 뿐 디자인을 뜯어고칠 역량이 안 돼서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었다.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먹거리 골목에서 식당을 창업하려고 경쟁사들을 둘러봤더니 다들 노후화된 인테리어에 SNS 마케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 골목에서 멋진 인테리어와 전문적인 SNS 마케팅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핵심은 '음식의 맛'이니까. 그럼에도 누군가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골목에 식당을 열고는 장사가 안되자 음식 맛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인테리어만 리모델링하고 있으면 어떻겠는가. 눈치챘는가? 맞다. 내가 딱 그런 꼴이었다.
디자인으로 브랜딩 한다는 착각이 이렇게나 무섭다. 그리고 망하고 나서 찬찬히 둘러보니 다소 구려 보였던 경쟁사들의 디자인이 사실은 그들 나름대로의 브랜드 철학이 담겨있는 결과물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후화'라고 내가 속단했던 것도 고객의 측면에서는 브랜드 헤리티지처럼 느껴질 것 같기도 했고.
오래된 음식점이 인테리어 리모델링 후에 전통성을 잃은 느낌으로 인해 장사가 오히려 안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들 브랜드도 어쩌면 그런 이유로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디자인 덕분에 뜰 수는 있어도
디자인만으로 뜰 수는 없다
시장에서는 종종 눈에 띄는 디자인과 함께 슈퍼 플레이어들이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젠틀몬스터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독특한 디자인의 아이웨어, 전시회를 방불케 하는 쇼룸 디자인 등 젠틀몬스터의 행보는 항상 독특한 아웃룩과 함께 이슈가 됐다.
디자인이 브랜딩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례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이런 사례를 들이대며 이렇게 얘기한다. "거봐, 디자인만 잘해도 대박날 수 있다니까!" 그런데 젠틀몬스터가 과연 눈에 띄는 디자인만으로 성공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절대' 아니다.
젠틀몬스터가 제품과 쇼룸의 디자인을 독특하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이웨어라는 제품 카테고리를 독특하게 비틀어버린 발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틀몬스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웨어는 '시력교정', '안구보호'의 목적성이 강한 아이템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웨어 브랜드를 론칭하면 안경원에 자신들의 제품을 입점시켜서 파는 것이 국룰이었다.
젠틀몬스터의 김한국 대표도 창업 초기에는 자신의 제품을 안경원에 입점시키려 노력했으나 인지도가 없는 젠틀몬스터의 제품을 안경원들은 전부 입점 거부하였고 이에 분개한 김한국 대표는 자신이 직접 게임의 룰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는 곧 아이웨어를 '패션 아이템'으로 재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파격적인 리프레이밍 덕분에 젠틀몬스터의 안경, 선글라스는 시력교정이나 안구보호의 목적성이 없는 사람들도 쓰고 싶은 아이템이 되었고 그 결과, 젠틀몬스터는 굳이 안경원에 입점할 필요 없이 패션 브랜드처럼 독자적인 쇼룸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제품과 쇼룸의 디자인은 그들의 독특한 발상(아이웨어는 패션 아이템이다)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 된 것이다. 즉, 그들은 디자인만으로 뜬 것이 아니라 디자인 덕분에 뜬 것이다.
어디 젠틀몬스터뿐이겠는가? 디자인만으로 뜬 것처럼 보이는 브랜드들의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결코 디자인만으로 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이 곧 브랜딩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명심하자. 디자인이 브랜딩을 거들어야지 브랜딩이 디자인을 거드는 꼴이 되면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