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약속을 지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의 생각 | 04
브랜딩은 약속이다. 고객들에게 나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이런 것들은 하지 않고 이런 것들은 할 것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공표하는 일이다. 그 과정이 일관성을 가지면 고객들에게 내 브랜드의 해상도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그러면 내 브랜드를 응원하는 팬이 생긴다.
반면에 일관성이 없는 브랜드에게는 팬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일관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듯이 고객들도 마찬가지로 일관성이 없는 브랜드에게는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파타고니아가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을 만든다면, 애플이 혁신적이지 않은 제품을 만든다면, 나이키가 외모만 멋지고 "Just do it"이라는 정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다면 아마 1년 내에 수많은 팬들이 안티 팬으로 전향할 것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애플, 나이키는 그러지 않았고 꾸준히 일관성 있게 약속을 지킨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파타고니아, 애플, 나이키처럼 담대한 가치를 약속하는 것만이 브랜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펌 지속력은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미용실, "재료 가격이 저렴해지면 음식값도 저렴해져야 한다"면서 손님에게 투명한 가격 책정을 약속하는 음식점, "매월 놀라움이 가득한 스페셜 음료를 새롭게 선보이겠다"는 동네 카페의 약속도 충분히 위대한 브랜딩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약속이 얼마나 '있어 보이는 가치'를 내포하는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약속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ESG경영이니,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니 하는 멋들어진 용어가 아니다. 약속의 가치는 진정성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그 진정성은 결국 일관성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딩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내 브랜드가 고객에게 한 약속이 무엇인지부터 확실하게 알아야 하며(없다면 꼭 만들어야 한다. 이 약속이 곧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이 되므로) 그 약속을 꾸준히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대부분의 개구리들은 자신의 브랜드가 고객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 잘 모르고 있다. 아니 그냥 약속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관성이라 할 것도 없이 매출의 등락에 따라 물 흐르듯 운영된다. 내가 브랜드마케터로 일할 때 만났던 대부분의 브랜드가 그랬고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그다지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고? 그렇게 해도 매출이 괜찮게 나오니까. 그들은 그렇게 당장의 매출에 취한 탓에 자신이 '냄비 속 개구리'처럼 삶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못챘다.
브랜딩은 '비상금'을 모으는 일이다.
모든 브랜드는 결국 사업체이고, 사업체는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매일 당면하는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다 보면 브랜드를 만들면서 고객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무너뜨리는 악마의 유혹이 이따금 손을 내민다.
브랜드의 컨셉과 맞지 않지만 트렌드에는 맞는 디자인,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파격적인 특가, 공정하진 못하지만 원가 절감에는 도움이 되는 생산방식 등 하나씩 당면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서 악마의 유혹을 받아들이다 보면 브랜드의 약속이 가진 해상도는 점점 옅어진다.
그런 와중에 그런 결정을 내린 개구리들은 하나같이 얘기한다. "그래서 뭐 브랜딩이 밥 먹여주나요? 이번 달에 이런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 월급도 주고 회사도 유지되는 겁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브랜드 담당자들은 매월 실적 압박에 시달렸고 그러다 보니 실적 개선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실적에 대한 집착 덕분인지 매출은 나름 괜찮은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약간의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그런데 그 브랜드들이 지금도 매출이 잘 나올까? 예상했겠지만 개중에 없어진 브랜드가 반, 위기에 처한 브랜드가 나머지다. 그동안 고객들과 더 나은 약속을 하는 브랜드들이 탄생했고 고객들은 그 브랜드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매출이 잘 나올 때는 다들 자기 브랜드가 브랜딩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단기적인 마케팅에만 열을 올린다. 하지만 브랜딩이 진면모를 발휘하는 순간은 시장이 불황이거나 아니면 브랜드가 위기에 빠졌을 때다.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되거나 경제가 불황이어서 소비가 줄어드는 등의 외부요인이 있을 때 고객들은 더욱 심사숙고하여 제품을 고르게 되는데 이때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브랜드는 이미 팬이 된 고객들이 꾸준히 선택해 주기 때문에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반면에 마케팅에만 열을 올렸던 브랜드들은 이런 위기의 순간에 대응력이 떨어진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가격을 더 내리거나 트렌드에 맞춰서 디자인을 바꾸는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격을 내리면 더 낮은 가격으로 파는 경쟁사가 등장하고, 트렌드에 맞춰 디자인하면 그보다 더 트렌드에 맞춘 디자인의 경쟁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이니 믿어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브랜딩이 밥 먹여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마케팅과 차이점이 있다면 마케팅은 당장에 먹을 밥을 살 수 있는 '생활비'인 반면에 브랜딩은 나중에 먹을 밥값을 모아두는 '비상금'의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브랜딩에 투자하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장에는 밥값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정말 배가 고플 때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든든한 비상금이 되기 때문이다.
'딱 한 번만'이 브랜드를 변하게 만든다.
나는 브랜드마케터로 일하면서 숱한 사례들을 봐왔기 때문에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 브랜드를 만들면서 고객에게 공유할 선언문과도 같은 브랜드 브리프를 작성했었다. 여기에는 브랜드가 탄생한 이유부터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상세 내용이 포함됐다.
그리고 초반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들을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약속들이 유명무실한 것이 되었고 종국에는 내 브랜드의 팬이라 할만한 고객이 단 10명도 되지 않았다. 무려 1만 명 이상의 고객들을 만났음에도 말이다. 그들은 그저 내 브랜드의 제품을 다른 브랜드 보다 조금 더 저렴해서, 조금 더 트렌디해서 구매했을 뿐 내 브랜드의 어떤 약속이 특별하게 느껴져서 구매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약속이라 느껴질 만한 무언가가 내 브랜드엔 없었다. 창업 초기에 만든 유명무실한 브랜드 브리프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도 지켜지는 것이 없어서 어디에 내놓기도 부끄러운 문서가 되었다. 아마 누가 그 문서를 봤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혹시 지금 운영 중인 브랜드 말고 다음에 창업하실 브랜드의 브리프인가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주인공 박새로이는 이런 말을 한다. "지금 한번! 지금만 한번! 마지막으로 한번! 또 또 한 번! 순간은 편하겠지. 근데 말이야. 그 한 번들로 사람은 변하는 거야."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뼈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 대사에서 '사람'을 '브랜드'로 바꾸면 딱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브랜드도 '딱 한 번만'의 순간들로 인해 변한다. 조금만 바꾸는 건 괜찮겠지, 어차피 고객들은 모를 거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원상 복구하면 되잖아와 같은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서 고객과의 약속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변화들을 눈치채는 고객은 실제로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고객이 몰라도 내가 알고, 내 회사의 구성원들이 안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렇게 내부에서 '딱 한 번만'이 용인되기 시작하면 한 번이 수백 번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고 그렇게 되면 팬이 아니더라도 눈치챌 만큼 브랜드는 완전히 다른 브랜드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브랜드는 애초에 고객이 별로 없어서 자주 바꿔도 상관없어요." 그렇지 않다. 고객이 없을수록 더욱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일관성이 없으면 고객들이 당신의 브랜드를 여러 번 마주쳐도 매번 다른 브랜드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일관성을 가지면 "저번에 봤던 그 브랜드네!"라고 생각하게 되고 당신의 브랜드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또 마주치면 "이번엔 구매해 볼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쌓이는 것이 브랜드의 무형자산이고 이것이 곧 브랜딩이다.
브랜딩은 '약속을 지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나는 브랜드마케터였으면서 결국 내 브랜드의 브랜딩에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내가 만약 과거의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브랜딩에 대해서 알려줄 기회가 생긴다면 '브랜딩은 약속을 지키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뼈에 박히도록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다. "제발 처음에 고객이랑 했던 약속 좀 꾸준히 지켜 이 개구리야!"라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있으니 과거의 나보다는 좀 더 유리한 입장일 것 같다. 그러니 부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당신께도 뼈에 박히도록 확실히 알려드리겠다.
"브랜딩은 약속을 지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브랜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브랜드 비전, 브랜드 미션, 브랜드 철학, 브랜드 캠페인과 같은 용어들을 들어봤을 텐데 이 모든 것이 결국 고객과 약속하고, 약속을 이행하고, 이행한 것을 보여주는 활동들이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당신의 브랜드가 고객과 한 약속은 무엇인가? (브랜드 비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임무를 완수할 것인가? (브랜드 미션)
당신은 그 약속을 어떤 생각과 태도로 지킬 것인가? (브랜드 철학)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브랜드 캠페인)
그러니 정말로 잊지 말자. 브랜딩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의 연속이다.